나의 환상 이미지 (1)

By | 2009-10-06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몽롱한 상태에 빠지면서 오묘한 환상 따위가 머리에 떠오르는 일은 나 혼자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자주 데자뷰를 계속 봐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백일몽같은 의식의 흐름을 자주 느낀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는가보다 싶다. 사람마다 각자 나름대로의 환상을 가지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것도 정신병적으로 해석할만한 일은 아니리라. 나로서는, 그냥 살아가면서 가끔씩 잠깐동안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가진 환상은 어떤 첨예한 감각이 느껴지는 상황의 세가지 이미지들인데  각각 햇볕에 관한 영상, 달빛의 이미지, 그리고 눈내리는 벌판의 모습 등이다.

우선 햇볕의 이미지는 이렇다. 언젠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빌딩의 10 층에서 내가 혼자 쓰던 사무실의 한쪽 벽은 전체가 코팅된 유리창였다. 그때 처음 느꼈던 것은 어느 오후 시간에 한참 업무에 열중하다 잠시 창 밖을 내다봤을 때였다. 사무실 안의 침묵을 비집고 들어온 늦은 오후 햇살이었다. 그때 느낀 것은 “저것은 햇빛 조각일거야”라는 것이었다. 그때 일어나 창가로 향해 밖을 내다봤을 때 내 시야에는 온통 이른 저녁의 햇살이 한산한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저렇게 밖에는 햇볕으로 꽉 차있는데.. 지금 밖에서는 나를 위해 태양이 보낸 빛의 파편이 눈앞에서 부서지고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때 난 도저히 견뎌내질 못하고 사무실로부터 거리로 튀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햇볕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겨울의 햇빛이다. 여름과 겨울의 햇볕은 그 색온도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차가운 겨울날 파란 하늘 한복판의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전해오는 햇살의 냉정한 따사로움은 문자 그대로 눈물 날만큼 좋다. 하지만 겨울 하늘은 그 추위만큼 단순한 감각을 가져다 준다. 내 몸의 신진대사가 더욱 왕성해져서인지 추우면 추울수록 내 정신은 더 예리하게 살아나서 난 추운 공기를 마시면서 더욱 살아있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의 태양은 나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의 변화가 아닌 더욱 단순한 진실의 순간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난 비록 더위엔 약하지만 여름 한낮의 작렬하는 햇살의 강렬함도 좋아한다. 그런 강렬함은 일종의 불쾌감과 함께 몽롱한 의식의 변화무쌍함을 가져다 준다. 내 환상의 몽롱함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적인 요소가 많다. 도저히 유쾌나 불쾌로 구분지을 수 없는, 그냥 그대로 주어진 그 상황에서의 생과 사의 원초적 느낌이랄까.. 그런 상황에서의 느낌은 온몸의 감각이 최대한 곤두서 있는 상태인데 어쩌면 그건 내 몸의 무척이나 예민한 감각 때문일 것이다.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런 쨍쨍한 햇빛 아래에 원시적인 생활의 환상을 갖곤 했다. 태초의 햇빛 아래 맨몸으로, 문명의 흔적이 전혀없이 생존해가는 나의 모습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환상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가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런 환상 이미지의 기억은 언제 돌이켜봐도 선명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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