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문턱

By | 2009-10-08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 모습은 차분하고 안정되고 또 낙관적인 것인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원래의 내 기질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본래 감정적으로 적지 않게 급하고 가끔씩 화를 내면 이성을 잃기도 할 정도의 불안정한 면이 다분히 있었다. 그런 기질이 표출되던 정점은 건강면에서도 불안정했던 중학교 시절인 것 같았는데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만큼 이유없이 화가 폭발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평소에는 무척 침착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생활을 했지만 그런 조용히 있는 상태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내 표정을 보면서 그 속에 내재된 쌓여가는 화를 눈치채곤 했었다. 난 어쩌면 기회를 노리는 들짐승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내 스스로 받기도 했다. 아마 감정적인 측면을 그렇게 속으로만 쌓아가다보니 내 몸이 견디지 못해서 그당시 신체적으로 병들었던 것도 같다.

이런 성격은 화를 내는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뭔가 하고픈 일이 뇌리에 강하게 꽂혔을 때, 혹은 한가지 일에 푹 파뭍혀 들어갈 때에도, 그리고 정말 가끔씩 있는 일이었지만 절실하게 갖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의 내 모습은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한채로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하는 전형적인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곤 했었다. 초등학생 때처럼 어릴 때에는 해야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그런 불안감을 느끼곤 했지만 그 이후에 나이가 들면서는 하고픈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걸 보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는 것도 거의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다. 어쩌면 난 정말 운이 좋았나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그리고 결혼하고 애를 키우고 살면서 30대를 넘어 40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나는 이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씩 화가 나는 것을 참기 힘들게 되는 경우가 있음은 어쩔 수 없이 느끼곤 했지만 난 그런 상황에서도 겉으로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또 충분히 그렇게 해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도를 닦는 것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나는 그렇게 스스로 인내를 하는 상황에서의 내 정신과 몸이 놓여있는 주변의 느낌이 마치 어떤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그림 속에서 나는 어느 집의 방안에 앉았거나 서 있고 그 앞에 문이 열린 채 바깥 풍경이 보이는데, 문 밖으로는 예쁜 꽃들이 잔뜩 피어있는 꽃밭이 있는 것이다.

내 모습, 열린 문, 그리고 꽃밭. 그 세가지 요소가 나란히 있는 그림이 머리 속에 그려지면, 어떤 시점의 나는 차분히 방안에 앉아 있다. 또 다른 때는 벌떡 일어선 채로 방안을 두리번거리지만 문지방을 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문지방을 막 넘어가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문제는 바로 그때 생긴다. 내가 나가면서 넘어서려는 문지방 건너의 바닥은 낭떠러지인 것이다. 방안에선 보이지 않는다. 오직 넘어가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될 뿐이다. 다행히 나머지 한발을 방바닥에서 떼기 전에 그 사실을 알았기에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조금만 감정적으로 행동했어도 난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상상의 장면에서 낭떠러지일 뿐이고 현실에선 그저 내 감정의 표출이 되고 치명적인 추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 결과는 심리적인 자폭이 된다. 다행히 그런 식으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 추락한 일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런 식으로 나의 감정을 확실히, 자신있게 조절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겨우 석달밖에 안 됐다. 그 전까지는 확신을 못하면서 어렴풋이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가족을 먼 곳에 두고 혼자 한국에 들어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척이나 불안정한 부모와 함께 지내면서 생긴 현상이다. 처음에 두 분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서, 두 분의 언어와 행동은 참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인내심을 요구했다. 대화에서의 논리성은 배제되었고 행동에서도 합리성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다. 말이 되건 안되건 나는 함께 살며 두분을 돌봐드려야 했고 귀가 어두운 아버지에게 몇번씩 똑같은 얘기를 거듭해서 소리쳐 말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말이 어눌하고 발음이 불명확한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또 몇번씩 다시 말씀해 달라고 말을 하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두분 사이에서의 의견 조율도 수반됐다. 이런 생활이 처음엔 물론 무척이나 치밀고 화가 날만한 일이었지만 뜻밖에도 난 금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행동해야할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한달도 안되어서 감정조절의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모든 원인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 가능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그런걸 몸소 체험하고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래 태어난 본질이 느긋하고 뒤끗없는 사람이라면 나같은 과정이 필요없이 더 어린 나이에 그런 감정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을테지만 내 원래의 성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나는 또 다른 문지방이 훨씬 어릴 적에 만든적이 있던 것도 같다. 어린 시절의 나의 실패 원인은 그 문턱을 너무 일찍부터 만들어놓아서였다. 문턱을 일찍부터 만들어 놓은 사람은 너무 쓸쓸해지기도 한 것이다. 정렬적인 맛이 없는 그저 밋밋한 어린시절, 내가 조절하지도 못하고 그저 방문을 닫아놓고 이불 속에 숨어있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서는 그런 문턱을 없애버렸고 이제 와서 내가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문짝을 달아놓은 셈이다. 이게 바로 내 마음 속의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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