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도 보낼 준비가 필요하다

By | 2021-12-21

몇년전에 내 회사 직원과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데리고 사는 강아지 얘기가 나왔을 때 그 직원의 개가 병이 들어 좀 큰 수술을 했다고 하기에 수술비가 궁금해서 물었다가 입이 딱 벌어졌는데, 자그마치 6천불 정도였다고… 그 당시에 이미 우리집에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는 상태였지만 병원갈 일이 없이 건강했고 그저 광견병 예방주사 맞추면서 그때마다 간단한 체크업만 하는 정도여서 병원비가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겠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역시 세월엔 장사가 없는가 보다. 개 나이 열살을 넘으면서 결국 그때가 오는구나 깨닫는 일이 생겨버렸다.

열흘전쯤 갑자기 개의 호흡이 빨라짐을 느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구석의 멍멍이 침대에 누워 자는 녀석의 숨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다른 날들처럼 잠꼬대하면서 일시적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가보다 했다. 아침이 되어도 이 녀석 상태는 여전했고 점차 먹는 것과 활동하는 양상이 이틀만에 금격히 나빠졌다. 이제 먹지도 걸으려고도 하지 않고 숨만 헐떡이며 엎드려 있었다. 병원에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려고 보니 바로 예약이 되지 않았고 런던에 한 곳 있는 24시간 동물 응급 병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되어 이전과는 달리 수의사가 레퍼럴하는 동물만 진료하게 되었다고 안내가 나왔다.

전부터 예방주사 맞을 때마다 갔던 Animal Hospital 에 몇번 전화를 한 끝에 통화가 되었고 다행히 당일 저녁 문닫기 조금 전에 진료를 볼 수 있게 배려해줬다. 그곳에서 수의사가 진료를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서 살펴보고 이것저것 체크를 한 뒤에 심장 판막 이상으로 인해 심장이 커지고 복수가 찼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때부터 주사와 약을 먹이고 상태를 봤다가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한번 되풀이하면서 밤 11 시까지 그곳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수의사는 집이 병원 바로 뒤에 붙어있어서 내가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혼자 진료실 바닥에 눞혀진 강아지를 지키고 앉아있는 동안 퇴근해서 집에 가 있다가 다시 와서 잠시 살펴보고 주사를 놔주고 또 다시 갔다 오기를 반복했다.

이때 내게 주어진 옵션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이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해 보는 것, 둘째는 내가 처음 고려했던 그 동물 응급 병원으로 가는 것, 세번째는 Euthanize 안락사 시키는 것이었고 나는 첫번째를 선택했다. 응급실에 가도 이 병원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겪을 것인데 이미 이 병원에서 의사가 정규 시간을 지난 시점까지 치료를 하고 있으므로 그럴 필요는 없었고 응급병원에서 이곳보다 더 좋은 대처를 하여 생존한다는 보장도 없을뿐 아니라 치료 비용이 몇배로 확 불어날 것이고 또 안락사는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밤이 늦었고 상태가 좀 호전된 듯해서 일단 집으로 철수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병원문 열자마다 데려가서 다시 주사 맞추고 약을 먹이고 앞으로 집에서 복용시킬 약을 몇가지 받아왔다. 이제 병원 방문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보면 예전과 거의 비슷한 정도가 되었다.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단다. 수의사에게 언제까지 먹이느냐 물었더니 Entire Lifetime 이라는 대답이다. 죽을때까지..

병원비와 약값은 다 합쳐서 1천불 정도가 청구됐다. 처음에 병원에 가서 예상한 게, 여차하면 천불쯤 나가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렇게 나왔다. 그게 이번 한번뿐일까? 앞으로 똑같은 증세로, 더 심한 상태에서 다시 병원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늙어가는 개라서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녀석을 데려왔을 때는 나이가 한살도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다른 가정들에서 개가 늙어가면서 생기는 일들일 보면서도 공감이 쉽게 되진 않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면 아 그런 사연들이 있었구나 기억들이 떠오른다. 호흡에 문제가 생긴 주둥이 짧은 견종들, 유전적으로 뒷다리 고관절이 약해서 고생하는 대형견들, 10살 넘어 살기 힘든 대형견인데 그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 치매에 걸린 녀석들, 늙어서 냄새를 못 맡거나 소리를 못드는 개들까지 본 적이 있다. 그 주인들은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차마 최종 결정을 못 내리는 모습은 한결같았다.

인간들의 인생에서처럼 반려견, 또는 고양이나 기타 다른 동물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인간보다 훨씬 수명이 짧은 것을 감안하면 결정해야할 때가 온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다행히 잘 지내다가 자연사하면 좋겠지만 주변에서 봤던 경험으로는 그게 쉽지 않다. 인간 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반려동물들 수명도 늘어서 진짜 치매 걸릴 때까지 살게 되기 쉽다. 혹은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에서 산소공급기 달린 격리 장치까지 동원해서 생존시키는 것도 보인다. 각자 선택할 일이지만 나로서는 이번 경험을 한 뒤에 합당한 상황이 되면 고통을 덜어주고 보내는게 필요하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녀석이 겪고 있는 병은 소형견들에게 매우 흔한, 유전적으로 타고난 운명의 결과다. 다시 또 이런 증상이 생기면 그 정도가 심할 것 같다. 나이로 봐서도 더 힘들어할 것 같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만약 보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야할 수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일단 안락사에 대해 검색을 했다. 일반 동물병원에서 이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되면 도와준다. 그리고 동물 화장 업체에 연결도 해준단다. 런던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의 동물 보호 협회인 SPCA 에도 인도적인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걸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원한다면 화장을 안 하고 자기 소유 집 마당에 묻는 것도 한 옵션인데 이건 불법이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개나 고양이가 죽었을 때 집 마당에 묻었다는 경험담을 꽤 많이 들었다. 내 경우에 한국에서 살고있던 시절에 개를 여럿 키우면서 죽은 개를 내 땅에 직접 묻은 적은 있지만 여기서는 그걸 다시 하고 싶진 않다. 암튼 이렇게 미리 마음의 정리를 미리 해 보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을 보내고 난 뒤에도 또 다시 멍멍이를 키우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