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 under Attack’ 그리고 우리는

By | 2001-09-13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밤 사이에 도착한 메일을 읽는 것은 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면서 생긴 오랜 습관이다. 가능한 메일을 일찍 확인하고 그 대답을 보내야만, 미국 본사에서 퇴근전에 메일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액션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워낙 피로해서 오래간만에 일찍 눈을 붙였기 때문에 오늘 아침은 비교적 좋은 컨디션임을 느끼며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별다른 메시지가 보이지 않고 회사 전체에 배포되는 메시지가 와있는 것이 아닌가.

그 내용은 “여러분이 다 알고 있듯이 이번 비행기 추락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로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서 사용된 ‘Crash’라는 단어는 평상시 비행기가 홀로 추락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므로 별다른 생각없이 읽어내려 갔는데 그 밑에는 어제 하루 비행기 4대가 Crash했다는 내용이 있는 게 아닌가.

문득 다른 때와는 뭔가 크게 다르다고 느끼고 CNN의 웹페이지에 접속한 순간, 그때 느낀 황당함은 필자를 잠시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제목 아래 사진 속의 뉴욕 맨하탄은 불타고 있었다.

독자들도 이미 이번 참사에 대해서는 TV 또는 신문, 그리고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태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들에 대해서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는 바이며, 아무쪼록 더 나쁜 쪽으로 치닫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편,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서는 벌써 이것이 무슨 제3차 대전의 시작임을 뜻하는 예언이 있었다는 등 어수선한 말들이 유포되고 있지만, 그에 혹하지 말고 우리는 차분하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경제적인 파급효과는 이미 우리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사건 다음 날 열린 우리 주식시장의 폭락한 주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 소비자 구매심리 위축에 따라 경기가 침체될 것이고, 그에 따라 이미 추락한 미국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은 곳 바로 IT 산업을 비롯한 하이테크 업계에 큰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고,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일터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입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미국이 기침하면 우리는 독감에 걸린다는 말대로 해석해 보면,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를 상상하게 될 따름이다.

한 가지 예로서, 이미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삼성전자와 존폐 위기에 놓여있는 현대 하이닉스 중에 우선적으로 타격을 입을 곳은 당연히 하이닉스일 것이다. 경기가 더 하강하면 하이닉스의 향후 회생 기회도 더 줄어들 것인데다가, 그렇지 않아도 미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우리 정부의 하이닉스 지원을 강력히 반대해 왔던 미국으로서는 이번 참사때문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삼성전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입을 것이다. 이미 전체 직원 가운데 10% 이상을 줄이겠다고 한 상태에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대형 IT 업체들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벤처 기업들도 거의 직격탄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IT 산업이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까지 벌어지니 설상가상이다. 좁디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던 업체들은 우선적으로 그 충격파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입은 타격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지 모른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돼있는 IT 산업이었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결국은 올 일이 좀더 일찍 오는 셈이 아닐까 하는 반응까지도 여기저기서 보이곤 한다.

혹시 필자에게 너무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 독자가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필자가 미국 시장에서의 경기침체 여파를 몸소 체험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한 디지털 가전 업체의 한국 지사로서 예전에는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했던 곳이다. 그것이 작년 이맘 때는 9명으로 줄었고, 석 달 전에는 본사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5명을 내보낸후 4명이 남게 됐다. 그리고 이번 주에 내려진 결정이 결정타였다. 한국 조직의 문을 닫는 게 최종 결론이었다. 이달말로서 필자는 당당히 실업수당을 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매주 계속 본 컬럼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도, 벤처 기업도, IT 산업도 마찬가지로 어려움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난국을 타개하고 더 큰 발전을 이룩하리라 믿는다. 그 어려웠던 IMF 시절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 충분한 맷집을 키우지 않았던가. 다음 주 컬럼부터는 새로운 신분으로,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독자들을 만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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