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번째 직장에서 만난 그 사람은 세칭 명문대라고 하는 곳을 나와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해서 대기업 연구소에 다니게 된 이른바 유학파였다. 집안도 좀 괜찮아서 아버지가 의사였던가.. 아내의 집안도 비교적 유복하여 요즘 표현으로 금수저 가정이라고 할만 했다.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 집들이를 한다고 연구실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가서 보니 식탁 위에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손님들은 접시를 들고 가서 뷔페식으로 음식을 가져와 먹는, 거의 30여년전의 시각으로 볼 때는 상당히 서구적인 ‘파티’ 형식을 띠었고 부인도 무척 미인, 두 아이들도 귀티가 잔뜩 흐르는, 그런 매우 이상적인 가정이었다. 전혀 부족할 것 없는, 남부러울 일 없는, 다른 생각할 이유가 생각날 수 없어보이는 그런 완벽한 패밀리…
그뒤로 세월은 흐르고 나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 상태였는데 오랫만에 예전 직장동료를 만날 일이 생겼다. 5년인가 6년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옛 동료들의 근황을 묻다가 위에서 소개한 그 완벽한 가정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그 대답이 “그 친구 이혼하고 바로 재혼해서 미국으로 떠났어”였다. 아니 왜? 그 완벽해 보였던 부부가, 그 사랑으로 충만해 보였던 가정이 어떻게…?
그 남자도 얘전 직장을 떠나서 벤처 창업을 했는데 믿고 쓸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오는 학습지 교사로 젊은 여선생이 하나 있었고 그 남자의 부인은 그 여자가 너무 똑쪽하고 능력이 있는데 학습지 교사 일을 하고 있는게 아까워 보였던지 남편에게 얘기해서 그 회사에 취직을 시켰고 한동안은 그렇게 일이 잘 풀려나가는가 싶었는데… 사장과 직원 사이의 그 인연이 너무도 끈끈하게 얽혀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단다. 그래서 이혼, 재혼, 한국생활정리, 미국으로 탈출..
그 사람이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에 이 직장 동료와 만났다고 한다. 거기서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니”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나도 그렇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 가는 것은 전혀 막을 수 없었다. 남녀 사이의 일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더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완벽한 아내, 완벽한 자녀들, 자신의 기반과 사업.. 그런걸 다 팽개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치사해 보이는가?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원래의 가족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면? 나는 그때에도 충분히 그 심정이 이해가 갔고 지금은 더 그렇다. 남녀 사이의 일은 일단 시작되고나면 기관사없이 폭주하는 기관차와 비슷하다는 그 느낌…
내가 본 다른 경우들이 더 있다.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처제랑 바람이 나서 또 모든걸 포기하고 미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로 도피해 가서 주유소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나의 대학 동기 중 한명도 자기보다 훨씬 연상의 여자와 바람나서 가족도 다 포기하고 재산도 아내에게 넘기고 떠난 것도 봤다. 그들 모두 원래의 아내랑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사람들일텐데 그때도 자신의 선택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그 안쪽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모르고 또 그들 머리속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연예계에 대해선 별 관심도 없고 또 알려고도 안하는 나도 요즘 일반 신문이나 포털 사이트에 워낙 그 두사람 얘기가 쌓여 넘치니 그 두 이름을 알게 되었다. 홍상수과 김민희. 그들의 관계에 대한 표현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단어 ‘불륜’인듯하다. 나도 한 10년전쯤엔 이 일에 대해 ‘불륜’ 혹은 ‘간통’이라는 인식을 먼저 갖게 되었을까? 아니면 20년전쯤에? 홍상수씨의 아내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한다는 기사가 보이고, 사람들은 대개 ‘그 말이 옳소’라는 반응을 보이나보다. 그런데 만약 홍씨가 부인에게 돌아간다고 하면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해 할까? 두 사람중에 최소한 한명이라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원한다기보다는 ‘괘씸’해서 저 두 인간을 함께 있게할 수 없다.. 라는 감정때문에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홍상수, 김민희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라고 보면 홍상수, 아내 두사람의 관계는 사랑은 별로 없을텐데? 홍상수씨도 꽤나 금수저 집안이고 돈도 많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두 여인들의 입장도 그 재산과 적지 않는 연관이 있으련가?
앞서 언급한 내 옛 직장 동료건 내 동기건 또 홍상수, 김민희 두사람이건.. 나로서는 그저 어느 ‘사랑’ 얘기라고 본다. 진짜 사랑이건 가짜 사랑이건 돈이 관련됐건 남들이 불륜이고 간통이라고 보건 어쨌건간에 성인 남녀들 사이의 애정 관계 일은 남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사회적인 책임 발생과 가정의 붕괴 같은 문제들과 함께 자신이 잃을 것이 무척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좇아서 간다고 하면 그건 흘러가는대로 놓아둘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사안에 대한 사회 통념이라고 하는 것은 금새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말로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 간통죄가 폐기되기까지 했으니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시도를 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뜨거운 사랑으로 나와 결혼했던 그 사람이 다시 뜨거운 사랑을 느낀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나에게서 느낄 수 없는 그걸 다른 사람과 느꼈다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나랑 비슷한 연령대의 그 남자, 그 에너지와 열정과 심지어는 경제적 능력까지 차라리 부러워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나도 돌 맞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