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나 뽑는게 뭐 대수라고…
치과에서는 어금니에에 crack 이 생겼고 그 때문에 잇몸에 끝없이 염증이 생겼다 아물고 또 다시 감염이 되는 것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단순히 한국에서 했던 신경치료가 잘못 되었기 때문인줄 알았다. 그래서 이곳 캐나다에서 비싼 돈 들여서 금니 크라운에 구멍을 내고 신경치료를 다시 했는데 크랙이 있어서 뽑아야 된다는게 아닌가. 그렇게 얘기할꺼라면 왜 신경치료를 하고 그 비용까지 다 받느냔 말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지, 영 속는 기분이었다. 캐나다에서 치과 보험 없이 치과를 가게 되면 치료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비싼 치료비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할 때가 많은 것 같다. 하긴 치과 보험도 보험 나름이다. 별로 득이 되어보이진 않으니 말이다.
몇달 간을 할까말까 망서리며 뜸을 들이다가 결국 뽑아버리기로 결정을 내리고 오늘로 예약 날자를 받아서 치과에 갔는데, 이 하나 뽑는게 뭐 큰 일이겠냐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생니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뽑히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크랙이 생겼기 때문에 한번에 번쩍 들어내지 못 하고 몇 조각으로 쪼갠 다음 빼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수술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힘든 시술이었다. 너무 아프고 피도 많이 나고 지금까지 입 안에서는 피맛이 느껴진다.
수십년 동안 몸에 붙어있던 한 부분이 빠져 나갔다가 생각하니 맘이 안 좋다. 그러다 지금은 듬성듬성 겨우 남아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이를 생각하니 난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라며 위안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입 속의 공허함이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려야할 것 같다.
발치가 끝난 뒤에 금쪼가리를 받았다. 뽑은 이를 씌우고 있던 크라운. 어차피 네꺼고 팔면 돈이 좀 될테니 가져가란다. 한국에서 크라운을 빼고 다시 씌웠을 때에는 돌려주지 않던데, 그런 금만 모아도 치과는 돈을 적잖이 벌겠다.
나중에 이를 뽑은 자리에서 피가 너무 흘러서 다시 치과를 가야하나 고민했는데 거즈를 끼우고 한시간 정도 입을 닫고 꽉 깨물고 있었더니 그제서야 멈췄다. 슬슬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타이레놀도 한 알 깨물어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 매장 두 곳을 들르는데 운전하면서 너무 졸렸다. 점심시간대가 이를 뽑은 직후라서 아무 것도 못 먹었는데 왠 춘곤증인가 싶었는데 두번 째 매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운전석에서 뻗어버렸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얘기를 했다. “직원들에게 Jake 가 발치를 하고 매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더니, 어떻게 직접 운전을 할 수 있냐고, 다른 사람이 대신 운전했어야 했다고 하더라”는 얘기였다. 내가 “마취를 한건 이빨 주변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했더니 그 마취약이 다 뇌까지 간단다. 아하..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졸렸구나..
이는 뽑고 금쪼가리 한쪽이 남았다. “앓던 이가 빠진듯 시원하다”는 표현이 있지만 난 서운하다. 다른쪽 이에도 크랙이 갔다고 하는데 나중에 또 그쪽도 뽑아야할 때가 올 수도 있겠다. 빈 자리에 임플랜트를 하는 일은 뼈에 구멍을 뚫고 철물을 박는 것이라 더 힘든일인텐데 그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