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개론

By | 2013-01-10

불을 끄고 함께 침대에 누웠는데 아내가 잠이 안 오는가 보다. 워낙 잠이 많은 마누라래도 이렇게 가끔은 잠이 안 올때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그런데 오늘은 괜시리 그런게 아니다. 나와 같은 이유일게다. 나도 이렇게 누워 있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르니 말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잠이 잘 안 와?”
“응”
“방금 본 영화 생각이 나서 그래?”
“응”

영화와 TV 시리즈물을 적지않게 시청하지만 그게 다 헐리웃 영화, 미국 TV  드라마, 간혹 일본 애니메이션 정도일뿐,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가뭄에 콩 나듯, 일년에 한 두편 보는게 다인데 작년에 봤던 “써니”와 “최종병기 활” 이후로 올해 들어 처음 본 영화가 이 “건축학개론”이었다. 자기 전에 그걸 보고 머리속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꽉 차 있다. 결코 영상미가 화려하거나 줄거리가 탄탄하거나 연기력이 엄청 뛰어난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영화 속 인물의 나이때에 경험했던 비슷한 기억들 때문에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누라도 생각이 많은가 보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누구에 대한 기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겠지만, 난 마누라가 누구에 대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영화에서 대학 1학년 시절의 남자 주인공이 내 그 시절과 똑같지 않아? 완전 아무것도 모르고 말야..”
“응…”
“게다가 서로 맘이 있었는데 겉으로 표시하지 못하고 세월만 가고…”
“…응”
“영화 속에서처럼, 우연히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됐고.. 그리고 또…”
“…..”
“그런데 이건 좀 불공평하다. 당신은 내가 뭔 생각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난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 모르잖아.”
“왜?”
“나는 어차피 한 여자랑만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지만, 당신은 중학교 때부터 남자친구 있었다며?”
“이넘 저넘들이 같이 놀자고 해서 함께 놀러 다닌게 뭐 남자친구야?”
“손도 잡고 다녔다며.. 난 당신과 결혼할 때까지 손잡고 다닌 여자 하나 없었는데…”
“그건 자기가 촌사람이라 그런거지. 서울과 지방은 문화적으로 10년 차이가 난다고 봐야하고, 게다가 당신은 나보다 7살이나 더 나이가 많잖아. 우리때 서울에선 그런건 별일 아니었어.”
“암만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부러우니까 괜히 또 이러는 거지..?”

물론 부러워 죽겠다 싶다. 난 그 좋은 시절에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랑 손 한번 못 잡아보고 마누라가 손 잡고 다니고 뽀뽀도 한 첫 여자인데 그게 거의 서른살이나 되어서였으니.. 그러고보면 요즘 애들은 아마도 물고빨고 난리도 아녔을 터인데… 하긴 나라는 인물은 요즘에 스무살이었어도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을 테지만…

이제 마누라는 한 술 더 뜬다.
“그런데 영화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전람회 노래 CD를 줬잖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남자애들이 카세트 테잎에 음악을 녹음해서 주곤 했었어. 그런데 난 전혀 관심 없었고. 무슨 하드락 같은 것들만 시끄럽게 나오고 들을 것도 없더구만.”
“그런데 대학때는 잘 알던 언 넘이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걔랑 사귀다가 어차피 오래 갈 것도 아닌 것 같고, 차라리 이렇게 친구로 친하게 오래 남아있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했더니 걔도 그러자고 하더라.”

그 얘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고 그넘 얼굴은 나도 안다. 한번 만난 적도 있었으니. 무슨 방송국 PD를 한다고 했는데 나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뺀질뺀질하게 생겼더군. 그런데 나는 그렇게 잘 놀던 기억이 없다. 그럴 나이, 그럴 시절은 있었는데 다 허송세월한 느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으로 세월만 잡아먹다가 마누라를 만나 결혼했으니…이 얘기를 꺼냈더니 마누라가 반박하듯 말한다.
“회사 다닐 때 미니스커트만 입고 다닌다는 여자랑 한동안 사귀었다며?

글쎄, 정확히 말해서 그건 사귄건 아니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한번 친구들 단체 미팅에 대타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파트너로 짝 지어진 서울여대 졸업반 여자가 거의 1년이 다 지닌 뒤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난 서울 우면동에 있는 금성사 연구소 다니던 시절인데 자기는 졸업해서 양재동에 취직했다고, 예전에 내가 준 명함을 우연히 발견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나더러 한번 만나자 했다. 만났다. 그 이후엔, 자기 대학 동기들끼리의 모임에 데려가기도 했고, 일요일 조조 영화를 보자고 해서 만나기도 했고, 몇번 만났다. 덩치가 제법 있는 마누라에 비하면 그 여자는 비교적 아담한 체구였는데 무릎 위를 한참 상회하는 미니스커트를 즐겨입었다. 제법 귀엽고 행동거지도 괜찮았다. 충분히 호감이 갔고 또 더 사귈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난 그때까지도 여전히 쑥맥이었는지 그 다음 액션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내가 직접 전화하지도 안않고 만나서도 손을 잡는다거나 하는 진도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가 버렸다. 그때까지도 난 스스로가 연애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나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그 뒤로 2년쯤 뒤의 일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훨씬 이전에 전화선 모뎀을 사용한 PC 통신이 한창 활발하던 시절, 나는 어쩌다보니 데이컴에서 운영하는 천리안 서비스에서 영화동호회의 시삽이 되어 있었고 나를 보고 몰려온 것인지는 잘 몰라도 적지않은 여대생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가입 당시에 3학년이던 아내랑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듬해 봄에 충주호변의 어느 콘도로 회원들끼리 주말을 이용해서 1박2일 여행을 간 것이 트리거 역할을 했다. 그날 밤이 늦도록 잠들지 않고 있었던 두 사람은 나와 그녀였는데 처녀 총각이 밤늦게 먼 곳에서 잠 안 자고 뭐 달리 할 것 있었겠는가. 더욱 친해지는 것 밖에… 엠티를 다녀온지 보름도 안 되어서 결혼을 결정하고 각자 부모님께 통보하고, 서로 상대방 집안을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나중에 양가 부모님들 다 모시고 상견례하고… 일사천리였는데 마누라는 학교 다니면서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처가에서 허락할 가능성은 없었기에 졸업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몇 달간은 거의 매일 만나서 연애란걸 했는데 역시나 쑥맥인 나는 연애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그래도 타고난 재질이 있어서인지 금세 따라잡을 수 있어서 아내에게서 우수학생이라는 칭찬도 들었고…

아내가 4학년 2학기를 시작한 직후에 나는 회사 일로 미국 시애틀로 파견을 나가서 6개월간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 동안 한국에 남은 아내는 학교를 다니는 상태에서 결혼준비를 혼자 다 마쳤다. LG그룹에서 직원들에게 저렴하게 대여해주었던 역삼역 옆의 (지금은 없어진) 반도 유스호스텔도 예약하기 위해 여의도 본사도 가고 연구소에 가서 서류도 떼고 미국 생활을 위한 배우자 동반 비자를 만들기 위해 아예 혼인신고도 미리 하기 위해 예비 시아버지와 함께 동사무소도 방문했다. 웨딩드레스니 예복이니 뭐니도 다 혼자 준비해서 이듬해 봄에 한국에 온 나는 아무런 준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임시 귀국한 다음날에 아내의 졸업식에 참석했고 그날 저녁에 함을 메고 온 친구들을 처가에서 맞이했고 일주일 뒤에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가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결혼한 아내가 나와 함께 한지가 올해 3월이면 꼭 20 년이 된다. 만 22 살때 데려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벌써 42살이란다. 결혼 전엔 어떻게 한 여자랑 지겹게 10년, 20년씩 살 수가 있을까나 싶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다. 별다른 불상사가 없으면 앞으로 한참 더 함께 살아야 한다. 뭐가 어찌됐든 20년동안 함께 잘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도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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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 얘기로 시작한 얘기가 나도 모르게 아내와의 결혼 스토리로 빠져버렸는데, 내 버전의 “건축학 개론” 얘기는 아예 시작도 못한 것은 무의식 속에서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그게 꼭 30년전의 일이다. 한편으로는 풋풋하다고나 할까, 지금 회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같았다고나 할까, 지금은 허허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그때 가슴앓이는 정말 징하게 했었구나 싶었던 그 오래전의 일이 지금까지 머리 속에 기록되어있다.

참, 나는 추억이니 기억이 정확성은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머리 속에 떠올리는 영상이 반드시 그 당시와 일치한다고 단정하진 않는다. 뇌세포 속의 내용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계속 새로운 세포에 복제되고 오래된 세포는 소멸되어 가는 것일텐데 이게 무슨 순수 디지털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 무의식은 나의 심리적인 영향 아래에서 그런 기억들을 더 내가 바라는 쪽으로 변형시켜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당시의 실제 있었던 일들이 상당히 실제와 일치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내가 계속 써 왔던 일기를 토대로 그 이야기를 소설처럼 적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기장은 결혼 후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깨끗이 태워 없앴기 때문에 내용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따로 썼던 첫사랑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컴퓨터에 남아있어서 이렇게 가끔씩 세상에 머리는 내밀기도 하고 있다.

아무튼.. 나에게도 ‘건축학개론’ 수업, 아니 내게는 그게 이공계 전공자들의 필수과목이었던 ‘화학” 수업이었던가 “물리” 였던가.. 암튼 그런게 있었다우. 강의실에서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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