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온날 멍멍이 일기

By | 20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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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나에게 집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지 않던 아저씨가 씩 웃으며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이게 웬 일? 결국은 개과천선해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려는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이 저렇게 쌓여서 어차피 못 나갈걸 알면서, 혹은 눈 때문에 너를 산책 못 시킨다라고 핑계를 대려고 문을 열어서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어차피 집 밖 산책은 가뭄에 콩 나듯 있는 행사라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정말 이 아저씨 뒤통수를 꽉 깨물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땐 난 영영 집에서 쫓겨날 신세라서 차마 그러진 못한다. 그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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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층으로 내려가서 내 장난감들 가지고 놀아야겠다. 그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둥근 고리 모양의 개뼈다귀다. 아저씨는 이걸 자꾸 개 도너츠라고 우긴다. 내가 진짜 도너츠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걸 그거라고 우기는지.. 그래도 이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전에는 달러라마에서 사온 싸구려 개뼈다귀를 줬길래 그건 건들지도 않고 몰래 사과를 훔쳐 먹었는데 그만 현장에서 들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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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혼나고는 마음이 상해서 밥도 안 먹고 단식투쟁을 했더니 은근히 맘 약한 아저씨가 이번엔 Pet Smart 에서 다시 10불 넘는 것을 사왔다. 성의를 생각해서 내가 가지고 놀아준다. 물론 1불샵에서 산 것보다는 훨씬 물어뜯을만 하니까 노는 것이지. 모양도 내가 좋아하는 팀호튼스 도너츠처럼 생겼고 말이야. 그나저나 도너츠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제였나. 여러달 전에 몰래 훔쳐먹고 혼났던 것이 마지막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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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따라갔더니 뒷마당에서 딸내미가 놀고있다. 원래 난 이 집에서 내 서열이 이 꼬맹이보다는 높은 줄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 얘가 귀찮게 굴기에 으르렁대고 이빨을 들어냈다가 아저씨에게 되지게 맞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론 얘가 내 귀를 잡아당겨 뾰족하게 만들며 “너는 시츄-테리어”라고 하며 괴롭히거나 맞지도 않는 강아지 옷을 입히려고 해도 그냥 포기하고 내 몸을 맡겨버린다. 그나마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려면 뭔 짓을 못하겠나. 그래도 난 시츄 가문 출신임은 바뀌지 않는 진리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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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뒷마당에선 딸내미가 눈 속에서 놀고 있어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아저씨 따라 나도 밖으로 나가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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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눈 위를 걸으면 내 배까지 눈에 파뭍혀 버린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뒷마당에서 응아를 할 때면 차가운 뱃가죽을 감수해가면서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이때 똥꼬까지 눈 속에 묻혀서 차가와지는 바람에 고생하고 있는데 지금 뭔 호강을 하겠다고 눈에서 뛰어놀겠는가. 그냥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문을 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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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역시 동정표가 제일이다. 얼굴에 눈을 잔뜩 묻히고 아저씨를 향해 춥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맘 약한 아저씨는 항상 바로 문을 열어준다. 짜식, 순진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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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아저씨, 아줌마, 딸내미, 아들내미 넷이서 식탁에서 보드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들은 허구한날 보드 게임을 하고 앉아있다. 어디 밖에 나가는 꼴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책꽂이에는 책보다 보드 게임이 더 많이 꽂혀있다. 보드 게임 사는 돈만 아껴도 집 한채 사겠구먼.. (고급 양옥식 개집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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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끼고 싶은데 도대체 끼워주진 않는다. 이것들 보셔요, 나도 알만큼 알고 똑똑할만큼 똑똑하다구요. 나도 좀 끼워 달라고… 이 게임 제목도 읽을 수 있다구.. 자 들어보셔요 “멍멍 멍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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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자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아저씨에게 발로 맞았다. 살살 건드리기만 한 것이라 전혀 아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개의 마음이 아프다. 암만 개라고 해도 발로 때리다니.. 슬픈 표정을 짓고 아저씨를 노려보지만 이젠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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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보드게임을 하더니 이 인간들이 이제는 거실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서 직소퍼즐을 가지고 놀고 있다. 따라 갔지만 여전히 찬밥, 개밥의 도톨이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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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세가 정말 슬프다. 이제 모든걸 포기하고 최후의 선택을 해야겠다… “무시당한 강아지 결국 충격적 선택을..” 이라고 네이버 뉴스란에 나올만한 결정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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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정이란… 그냥 엎어져 자는 일이다. 그래 개팔자 상팔자지. 허구한날 잠 자는게 내 일이지. 저녁이 되면 밥 한그릇 또 얻어먹고 뒷마당에 나가서 배 차갑고 똥꼬 차가운 눈 속에서 응아하고 들어와서 또 자면 되지. 이 인간들은 저녁 먹고는 꼭 영화 한 두 편씩 보고서야 이층 침실로 가더구만. 어차피 나랑 놀아줄 것 같지도 않으니 나도 계속 잠이나 자야겠다. 오늘 일기 끝. 깨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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