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잠이 부족했다고는 하지만 지난 밤에 멜라토닌을 씹어먹고 잠이 들었던 것은 큰 실수였나보다. 오늘 새벽에 멜라토닌을 한알 먹고 새벽 3시쯤 잠이 들어서 아침 8시 경까지 잤다는 점은 좋지만, 잠이 깬 뒤의 몸과 정신의 상태는 이제까지 별로 잠을 잘 수 없었던 다른 날들보다 안 좋았다. 몸의 리듬과 밸런스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되도록이면 수면제나 멜라토닌 같은 것에는 기대지 않으려 했는데, 내가 방심한 것 같다. 잠을 몇 시간 잤는지는 결과적으로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나는 계속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기상 시간도 매일 똑같이, 각 끼니의 식사 시간도 매일 똑같이, 운동하는 습관도 계속 동일하게 유지했어야 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잠도 훨씬 더 못 자고 심신의 상태도 훨씬 안 좋았으면서도 매일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식사까지 다 마치고 오전 10시에 운동 30분, 오후 3~4시 경에 또다시 운동 30분씩 했다. 입맛이 없어도 규칙적으로 밥을 물에 말아서 몇 수저만이라도 먹었다. 그래서 지옥같은 상태로 들어간지 열흘도 안 되어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영양이 많은 음식들을 듬뿍 먹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좋아보이지만은 같다. 정신이 좀 빠진 상태다. 이를 악물고 악전고투하던 것이 바로 지난주까지였다. 지금은 그 헝그리 정신이 없어졌나보다. 오랜만에 캐나다에 와서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 재롱을 보고, 아내가 나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 자세가 흐트러진 것 같다. 난 고행처럼 계속 몸과 마음을 추스려나가야 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 때문인지 오늘 위장에까지 문제가 생겼다. 오늘 아침에 밸런스가 깨진 상태에서 세끼 식사를 했고, 저녁을 먹은 뒤에 완전히 체해 버렸다.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달 초의 열흘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동안 소화불량이나 설사 같은 위장장애가 없었던 덕분인데, 이렇게 뱃속이 불편해 지면 상당히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벌써 밤 10시쯤 되니까 한국의 집안일 처리하는 문제에 신경을 쏟으며 통화를 하다가 그만 당황해 버렸다. 혈압도 올라가고 맥박도 분당 60~70 회 사이에 있던 것이 80 회 정도까지 올라가면서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다른 날에도 똑 같은 일들을 처리하고 신경을 썼지만 감정 상태를 내가 주도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위장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멜라토닌으로 인해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서인지 내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공황상태까지는 가지 않았고 심호흡을 하면서 사태 수습을 했지만, 그래도 3주전에 몸이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이런 상황을 맞이해서 나 자신에게도 다소 실망스럽다.
내일부터는 아이들이 방학이 끝나면서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해서 나도 애들 챙기려면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나도 거기에 편승하여 생활의 리듬, 내 활동의 밸런스를 다시 찾아야겠다. 몸이 편하면 정신도 늘어진다. 내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통해 약간의 긴장을 해 주면, 그것은 마치 바이러스에 대비한 백신 예방주사처럼 더 큰 긴장이나 불안을 방지할 수 있다. 정신끈을 놓지 말고, 마치 도 닦는 기분을 계속 유지하면서 균형을 찾아야겠다. 어차피 내 정신 세계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어차피, 내 DNA에 새겨져 있는 내 무의식과 교감신경의 행태는 평생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