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에 대하여 (1)

By | 2009-09-17

먼 옛날, 오늘의 인간 남성의 조상이었을 수컷들의 가슴은 사냥을 생존의 수단을 하면서 이미 호흡장치로서의 용도를 위해서 개량되었다. 폐는 더욱 커져서 폐활량을 충분하게 해 주었고 이때문에 등뼈와 갈비뼈와 그리고 가슴뼈로 이루어진 골곽이 원통 모양을 이룬 형태로 진화하게되었다. 여자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거친 산야를 달려야 하는 사냥대신에 작물 경작이나 육아 등의 일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폐활량의 확대는 필요없었고 따라서 남자와 같은 식의 진화는 필요없었다. 그대신 발달이 멈추어진 흉곽과 근육 위로 부드러운 살덩어리가 둥그렇게 솟아올랐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곡선미의 시작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임신과 수유기능을 맡게되는 숙명적인 여성이란 존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처럼 확대된 여성의 젖가슴은 생물학적으로는 두가지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모성기능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성적기능이었다.

모성 기능은 간단히 말해 낳은 아기를 위해 젖을 만들고 먹이는 일이다. 젖을 만드는 원리는 마치 땀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데 땀이 만들어지는 곳을 땀샘이라고 하는데 반해 젖이 만들어지는 곳을 젖샘, 혹은 유선이라고 부른다. 이 유선은 임신중에는 더욱 여자의 가슴을 확장시키는 중심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해부학적으로 볼때는 유방의 극히 일부만이 젖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즉 크게 부풀어 있는 유방은 수유기능을 위한 것 이외의 또 다른 기능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유 기능의 정도는 임신했을 때 확장되는 만큼의 크기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부피, 즉 수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기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물론 수유기능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어떤 다른 보조기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젖먹이 아기에게 있어서 손잡이가 전혀없이 가슴에 젖꼭지만 나와 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식생활의 조건은 되지 못한다. 눈을 아직 뜨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손으로 더듬어 혹은 입으로 찾아내어서 먹기에는 두드러지게 솟아난 가슴이 훨씬 편리한 잇점을 제공해준다. 목표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와 함께 이미 만들어진 모유를 보관하고 따듯하게 유지시키는 용기로서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앞서 언급한 성적기능에 있다고 하겠다. 어떤 이유에서건, 남성은 여성의 젖가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의해서 흥분이 고조되기도 하며 남자들끼리의 화제의 대상에 그것이 쉽게 올라가곤 한다. 남성들의 이런 성향에 대해 유아적이거나 퇴행적이라고 간주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성적인 감성에 충실한 그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영장류에 있어서 그들의 암컷들은 주로 네발을 모두 사용하여 돌아다닌다. 그들이 발정기가 되어 수컷들에게 교미를 하자며 보내는 신호는 바로 궁둥이 쪽에서 발생된다. 이것은 영장류가 아닌 다른 포유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를 보고 자신들에 견주어서 여자가 남자에게 꼬리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인간에게는 꼬리가 없다. 더구나 곧게 서서 다니기 때문에 서로의 뒷쪽을 향해 있을 기회는 없다. 인간은 서로가 마주보고 다닌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성적인 신호는 꼬리가 아닌 몸의 앞쪽에 있어야한다. 그런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찾아보면 두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얼굴에서 입술이 되고, 몸통에선 젖가슴이 된다. 여기서 여성의 입술은 남성에게 어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실제로 성적인 기능의 수행에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인 반면, 유혹을 위한 단계, 즉 꼬리치는 기능의 수행은 젖가슴이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입술의 기능에 대한 고찰은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가슴의 기능 즉 “인간 여자는 가슴으로 꼬리친다” 라는 점에 대해서 우선 생각을 해보겠다.

가슴으로 수행하는 유혹의 행위를 생각할 때 우선 눈앞에 연상되는 것은 근세 서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장면들이다. 거기서 보면 가령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행사가 열릴 때 여성들의 의상은 크게 두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마치 새장처럼 부풀린 콜셋으로 만든 치마이고 다른 하나는 젖가슴을 한데 모이게 만들어 꽉 죄고 가슴을 깊이 판 옷을 입어서 그부분을 풍만하게 강조한 모습이다. 말하자면 히프와 가슴을 동시에 강조한 것인데 히프는 전체적인 위 아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고 보다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살이 내보이는 과장된 젖가슴이 된다. 짐승들보다는 좀 더 우아한 유혹이 된다고나 할까.

이런것을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의 기록들에서는 그리 쉽게 볼 수는 없지만 그건 유교를 중심으로 한 양반 문화에서나 그런 것일뿐, 김홍도나 신윤복의 민화를 보면 일반 평민들은 우리의 최근 모습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고려시대나 더 옛날인 삼국시대에는 이조시대보다 더 여성의 복장이 더 자유분방했다고는 하는데 기록이 부족해서 제대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중국의 예전 복식을 참고해보면 우리도 그리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전에 봤던 중국 장이모 감독의 ‘황후화’라는 영화는 당나라 말기를 그린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였는데 그 속에 보이는 귀족들과 궁녀들의 복식의 상의 부분은 마치 위에서 언급한 베르사이유 왕궁의 귀부인들의 그것들과 비슷한 정도의 노출과 가슴 강조가 들어가 있었다. 이제까지 알았던 중국복식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 검색을 해보니 그게 실제로 그당시에 그려졌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 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까지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젖가슴도 결코 숨기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아무도 동조하지 않을테지만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여성의 젖가슴은 꽁꽁 동여맨채 성적인 요소로서의 기능을 철저히 배재해야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또 그게 올바른 행위라고 간주되기도 했었다. 가령 작가 김기석과 같은 이는 자신의 수상록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하기도 했다.

  젖은 여성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일 것이다.
어여쁜 꽃봉오리처럼 부르터 오른 젖은 미와 생명의 신비요, 상징이요,
또 관면일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아들 아닌 자가 껴안고 만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거기에서 나온 어린 생명이 그 첫 입술을 거기에 대고
그 어여쁜 뺨을 거기에 부비기 위해서 장차 어머니 되기를 기다리면서
가슴에 붙어 있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긴 하지만 좌우 두 개 있는 젖가슴에서 한쪽만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생각이다. 이런 의식은 동양적인 사상의 발현이고, 젖가슴의 소유권에 있어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덮어두고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 글은 여성의 젖가슴을 두가지 역할이 아닌 오직 한가지로 국한시키고 싶어하는 닫혀있는 사고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창녀촌에서 일생을 보내다시피한 프랑스의 보들레르는 자신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에로스적인 유방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다사로운 가을 저녁, 두눈을 감고
훗훗한 그대 젖가슴 내음 맡고 있노라면
한결같은 태양볕 눈부시게 타오르는
낙원의 강 언덕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대는 찾아보리, 두개의 커다란 청동 메달
두 묵직한 젖가슴 끝

  나 그대 젖가슴 그늘에서 편안한 잠을 즐기기도 하였으리
평화로운 마음 산기슭에서 고이 잠들 듯

유방의 성애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그런 시이긴 하지만 포르노그래픽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여성의 가슴을, 다사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그런 희망적이고 낙원의 느낌을 주는 동기로 보고 있다. 아마도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보들레르는 어릴적에 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어떤 장애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긴 그럴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좀 지위가 있는 집안에서 애가 태어나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 아이들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파리 근교에 있는 다른 가정에 맡겨서 키워졌던 관습이 있었다. 입주 유모를 두는게 아니라 유모의 집에 아기를 맡기는 것으로 영어 표현으로 이런 유모를 Wet Mother 라고 불렀다고 한다. 결국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들의 편의와 호사를 위해 아이들의 유아기가 희생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전래의 민요나 속담을 살펴보자면 성애적인 면에서 그리 끈끈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그러면서도 웃고 넘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젖가슴과 관련된 것으로는 민요에 가령 이런 것들이 있다.

  모시야 적삼 모시 적삼에
분통같은 저 젖 봐라
많이 보면 병 난다네
살금살금 보고 가자.

누가 탓할만큼 억센 남성의 욕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순박한 시골 총각의 마음을 엿보는 듯 하다. 여기서 젖가슴을 분통으로 표현한 것은 누구라도 그 대상을 머리에 선명히 떠올리게 할 만큼 참신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속담 중에는 “처녀 젖가슴 만지듯” 이란 것이 있다. 어떤 물건을 주물럭거리며 놓지 않는 행동을 말하는 것인데 막 성숙해 버린 처녀 가슴의 촉감과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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