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침

By | 2009-08-09

바람은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기 싫을만큼 뜨거웠다. 혹시나하고 시동을 걸어봤다. 시동은 걸렸지만 에어컨은 동작하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대는 바람속을 뚫고 운전해가다보니 후드 속에서 연기를 뿜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곤 곧 엔진이 멈춰버렸다. 다시 시동을 걸어보려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갈 길이 멀지 않았고 이걸 고친다며 시간만 잡아먹을 것 같았다. 이젠 바람 속을 달려나갔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 볼 겨를도 없었다. 눈을 뜨기도 어려웠지만 내 본능은 정확히 어디로 가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미친듯이 그녀의 집앞까지 내달았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하얀 목덜미 밖에는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코 초인종을 눌러댔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자 이것이 의미없는 행동임을 알아차렸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차피 뻔한 일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열기를 뿜고 있는 담장을 넘었다. 현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녀만 빼고 모두 쓰러진 채로 있었다.

그녀 혼자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눈물은 볼을 타고 내가 계속 머리 속에서 기억하며 왔던 그 턱과 목에서 그녀의 무릎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부들  부들  떨고 있는 손 위에는 알약 세알이 놓여 있었다.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그녀는 다음말을 채 잇지 못했다. 내가 부둥켜 않았기 때문이다. 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설령 몰랐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벅차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껴 안은 채로 서 있었다. 몇 초 동안 이었는지, 몇 분 동안 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순간과 영원이 뒤섞여서 시간의 개념이 상실한 듯 했다.

지나간 세월이 어쨌든 이제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미래가 존재할 수 없는 이 현실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느낌을 가져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한가지 회한은 가졌다. 우리의 만남은 왜 이렇게 비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먼 훗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함께 추억으로 회상하지도 못할 이 만남이..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창문의 유리창들이 일제히 깨져  버렸다.  반사적으로 그녀를 내 몸으로 막아서면서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등과 목 뒤로 섬찡한 느낌이 스쳤다. 곧바로 쓰라림이 온몸을 후볐다. 더운 피가 흘러내렸.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마지막 태양이 오는 것이다. 그녀에게 소리쳤다.

“우린 함께 영원으로 가자”

거실 스탠드의 전기코드를 잡아당겨 끊어냈다. 그녀를 뒤에 업고 전기코드를  몇바퀴고 돌려서 단단히 잡아 맸다. 그녀의 팔이 내 목을 힘껏 안았다. 집밖으로 뛰어 나갔다. 밖은 급격히 밝아오고 있었다. 거센 바람은  일정한 방향이 없이 휘몰아쳤고 여기 저기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녀를 없고 정신없이 뒷산쪽으로 달려갔다.

뒷산에 오르기 무섭게 눈부신 빛이 비쳐왔다. 믿을 수 없을만큼 크고  밝은 태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태양은 내가 미처 그를 바라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강한 햇살이 뻗기 시작한 순간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우리 주위의 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뽑히는가 싶었는데 그순간 우리의 몸도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그래도 폭발음은 머리를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온몸이 음파의 진동으로 떨려왔다. 그 뒤론 귀가 멍해지면서 마치 물속에 머리를 넣은 것처럼 웅얼거리는 느낌만 났다. 뒤에 매달린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제 함께 가는거야!”

내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지 내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두팔이 더 꽉 조여왔다. 나도 뒤로 향해 깍지를 낀 손에 힘을 더했다. 문득 내려다 보이는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었다. 햇볕 때문에  살이  너무도 따가웠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우리 아직도 살아있어!”

등 뒤에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돌아볼 수도 없었지만 희연이의 손에서는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내 목에 감겼던 팔이 스쳐나가면서 피부가 밀려 분리되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내 의식도 희미해져갔다. 감고있는 눈앞이 빨갛게 비껴흐르더니 이제 어스럼한 빛으로 가득찼고 곧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를 잡고 있던 두손에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그녀를 느끼던 내 몸의 감각도 사라진 것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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