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가 결코 공짜가 아닌 이유

By | 2001-08-30

지난 주는 필자에게 있어서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정리하는 대청소 기간이 돼버렸다. 그 전까지는 계획에도 없던 회원 탈퇴 작업은 프리챌에서 비롯됐는데, 그곳이 필자로 하여금 갑작스런 회의를 느끼게 만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프리챌에 가입했던 이유는 이전에 다니던 직장 출신 사람들끼리 한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만든 모임이 바로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곳의 다른 서비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오직 그곳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서 그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만 확인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별 생각없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프리챌 주소를 쳐넣고 모니터를 쳐다본 순간, 그 속에서는 웬 여성(?)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전체 화면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이름은 바로 ‘하리수’. 좀체 TV를 보지도 않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 신문을 곁눈질로도 볼 일이 거의 없는 필자가 그 이름과 얼굴이 낯익은 이유는 최근 그 이름과 얼굴이 온갖 미디어를 도배하다시피 한 덕분이었다. 그 화면을 건너뛰어 갈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초간 그 얼굴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필자는 하리수라는 인물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좋거나 나쁘다는 감정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정체 모를 성적인 미묘한 상황을 상업적으로, 그것도 무척이나 지나치게 이용하는 미디어에 대해서 적지않은 역겨움을 느껴왔다.

일전에는 잘 보지 않는 공중파 TV를 오랜만에 켜고 채널을 돌렸더니 하리수의 얼굴이 서세원쇼에서 보였다. 서세원의 주문대로 열심히 허리를 돌려대며 춤을 추고 있는 그 장면을 피하고자 돌려버린 옆 채널에서 보인 것은 똑같은 그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겨운 것을 인터넷에서까지 강제로 보게끔 하는 것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프리챌을 탈퇴해 버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TV처럼 내가 선택해서 보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더라도 무조건 그걸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굴욕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리챌이란 곳 또한 이상하기 그지없다. 얼마전에는 사용자 아바타의 옷을 홀랑 벗겨놓고 옷을 입히고 싶으면 하나에 얼마씩 돈을 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사이트를 하리수라는 이미지로 도배를 했으니 말이다. 아니면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날뛰는 필자가 이상한 것일까?

어쨌든 프리챌 사건을 계기로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공짜’ 서비스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들은 공짜가 아니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거나 혹은 미래에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의도가 전혀 없는 헌신적인 ‘공짜’라고 하면 정말 ‘공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분히 상업적이다.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든, 아바타 옷을 팔아서 한몫 잡든, 향후에 주식 시장에 상장하거나 M&A를 통해서 대목을 잡든 어떤 종류라도 수익 창출의 의도가 있는 행동들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이 누리고 있는 서비스들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최소한 화면에 떠 있는 광고를 봐주는 것만 해도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가입을 위해 그곳에서 요구하는 나의 정보를 그 곳에 알려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인터넷에서 보기 싫은 것들을 보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졌다. 스팸 메일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엔 어느 사이트를 가보든지 내용을 보려고 하면 가입 신청을 해서 무료 아이디를 받은 다음 이용하라고 한다. 이번주 초에 가봤던 씨네21 사이트에서는 아예 기사 제목 빼고는 무조건 회원만 볼 수 있게 돼 있었다. 어제 접속해 봤던 이소룡 팬 사이트 역시 그것이 설치돼 있는 싸이월드에 가입을 해야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 가장 싫어하게 된 일은 내 주민등록번호를 웹 문서 안에 쳐 넣는 일이 됐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꺼려하는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생년월일, 양력 음력 여부 등을 다 건네 준다는 것은 아무리 공인된 웹사이트라고 해도 정말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과연 이것이 공짜 서비스를 위해 내가 지불하는 최소한의 비용인가?

내친 김에 아이러브스쿨과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 여러 개와 신문이나 잡지 사이트같은 것들의 사용자 계정도 모두 해지해 버렸다. 모두 내가 별로 사용하지도 않거나 또는 없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도대체 이제까지 필자가 가입한 서비스들이 몇 개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곳에 내 이름과 신상정보가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곤해진다. 어떤 서비스의 경우에는 어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했는지 몰라서 취소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사람이 필자와 같을리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인터넷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서 인터넷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든다고 반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 사이트의 경우 그것이 별 문제가 안된다. 그곳이 유료 사이트가 아닌 이상은 내 메일 주소만 넣으면 되고, 추가적으로는 기껏해야 주소를 대충 적어주거나 몇 가지 설문조사에 답하면 되기 때문이다. 공짜 웹메일도 서서히 사용을 그칠 작정이다. 내가 누구에게 보낸 메일 끝에 달린 광고성 문구는 메일 자체를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렇듯 내가 이제껏 공짜라고 생각했던 것들. 이제 그것들이 결코 공짜가 아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보니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졌다. 앞으로 인터넷 웹서핑을 하거나 정보를 수집함에 있어서 예전보다 다소 불편함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자신이 선택할 권리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온갖 광고의 홍수 속에서 필자의 정신이 미치지 않고 제대로 생존해 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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