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음란한 사진을 보여줘

By | 2001-06-20

1973년 미 대법원 판례에 의해 정의된 ‘Obscenity’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음란’ 혹은 ‘외설’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의에 의해 일단 ‘음란’이라고 규정된 행위 또는 창작물은 표현의 자유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데, 이것이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음란물’의 판정 기준이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항목이 모두 만족되면 ‘음란’하다고 간주된다.

첫째, 일반인들이 현재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 행위가 인간의 욕정을 자극할 때
둘째, 일반인들이 현재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 행위 또는 작품이 명백히 불쾌감을 주는 성적인 내용일 때
셋째, 분별력있는 사람이 봤을 때 그 행위나 작품이 문학성과 예술성, 그리고 정치적이고 과학적인 가치가 없을 때

상당히 모호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외설에 대한 시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또 그에 대한 판정 기준도 위에서 보인 것처럼 항상 막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소설 역사를 봐도 ‘자유부인’이나 ‘반노’ 등으로부터 그런 논란이 있어왔고, 최근에 와서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까지 이르렀다.

영화도 이와 마찬가지의 파동을 겪어왔는데, 흥미로운 점은 한번씩 외설 시비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난 다음에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성적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하게 되고 세상도 그걸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요즘 비디오 대여점에 합법적으로 진열돼 있는 에로 비디오의 수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음란성 시비는 작가 장정일의 패배로 끝났는데,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였다.

소설은 그렇다 치고 그것의 영화 버전인 ‘거짓말’은 음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무혐의 처리됐고,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는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어느 영화업자는 에로 비디오에 18세 여자를 출연시켰다고 해서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구속됐는가 하면, 그보다 유명한 영화업자인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에 그보다 더 어린 16세짜리 여배우를 출연시켜서 신혼 첫날밤을 연출했어도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다.

판정은 왔다갔다하고 기준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결국은 법적으로 구분을 지어서 그에 따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어느 미술교사가 임신한 아내와 함께 나체로 찍은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연일 신문 지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그냥 잠깐 얘기꺼리가 됐다가 금새 잊혀질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교사를 기소하고 두 번씩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계속 그 사진이 ‘음란’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 때문에 매스컴을 계속 타게 되고, 이로인해 필요 이상의 화제거리가 돼버린 것이다.

만약 이렇게 이슈화되지 않았다면 그 사진을 음란하다고 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자식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가 그런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고 해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몇몇 학부형을 빼고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그 사진을 보고 ‘성적으로 흥분’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일이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 교사의 홈페이지가 강제 철거된 것이다.

고속 인터넷 회선 가입자의 수가 많다고 해서 진정한 정보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일종의 개인 지적 사유재산이랄 수 있는 홈페이지까지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임의로 철거된다면 이는 실로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 홈페이지가 음란하다고 판단하고 삭제 명령을 내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나 그 명령에 군말없이 따른 한국통신 모두 이 사안의 심각성을 눈꼽만큼이나 느끼고 있을까?

아마도 이른바 음란스러워 보이는 홈페이지가 존재하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사실만을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교사의 홈페이지는 조건부로 복구됐다고 한다. 물론 예의 그 사진이 철거된 채 말이다.

문제의 그 홈페이지가 음란하든 음란하지 않든, 또 그걸 만든 교사가 유죄든 아니든, 모든 것은 법정에서 판단될 일이다. 그런데 실제 재판이 있기도 전에, 몇몇 사람들의 작위적인 판단에 따라 그런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은 앞으로 제2, 제3의 이와 유사한 임의 삭제 사건이 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옷을 벗었기 때문에 음란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만큼 그런 식으로 판단한 사람들의 시각이 그쪽으로만 고정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음란한 내용의 인터넷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런 의식이라고 생각된다.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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