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조금 손해를 보는 것이 더 이익일 수 있다

By | 2010-05-31

이건 퍼온글이지만 살면서 필요한 중요한 점 한가지를 실감케 해준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 더 실감하게 되는 사는 필수적인 사는 방법들 가운데 한가지…

중국에서는 과거에 돈이 있는 집안에서 생일을 맞으면 집으로 경극 배우들을 불러 큰 잔치(堂會)를 열었다. 특히 당(唐)나라 장군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소재로 한 연극 공연은 단골 메뉴였다. 이 형님이 유달리 사랑받은 이유는 단순히 관직이 높고, 오래 살았으며, 자손이 많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곽장군은 그뿐 아니라 당나라 황제들이 아주 공손하게 받들고 모셨으며, 시기도 받지 않았고, 사후에 자손들 역시 오래동안 부귀를 누렸기 때문이다. 임금 모시기가 마치 호랑이모시는 것과 같은 마당에, 무장이자 공신으로 일찍이 수십만 대군을 호령한 바 있는 곽자의가 이렇게 대접받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곽자의의 처세비법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가운데서도 비록 일개 무장이었음에도 황제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그 오묘한 이치에 정통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곽자의는 줄곧 황제에게 자신의 부하들의 승진을 요청하는 상주문을 올리곤 했다. 가끔 황제는 아무 거리낌없이 툇자를 놓곤 했다. 수하들은 크게 분노했다. 곽자의 일파가 생명을 무릅쓰고 싸우지 않았다면 현재의 당나라 황제는 그자리를 보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곽장군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곽장군은 이에 대해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도리어 매우 즐거워했다. 왜 그랬을까?

황제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군부의 반란이다. 만일 누가 딴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가 천거한 사람은 어떠한 반대 없이 모두 승진시켜 줄 것이다. 지금 곽장군이 천거한 사람을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역으로 황제가 곽장군을 믿는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내다본 곽장군은 황제의 비토권 행사에 도리어 즐거워했던 것이다.

황제는 권력이 가장 크지만 담력은 작디 작은 인간이다. 그는 이미 거의 무한의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주위에 무수한 야심가와 음모가들이 자신의 권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가 무르익으면 자신을 노리는 반란이 일어나 자신의 목을 노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있다. 때문에 능력있고 공로가 큰 공신무장이 옆에 있으면 어리석은 황제가 아닌 이상 그가 심중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끊임없이 시험해본다. 곽자의 같이 총명한 노장이 누굴 천거하면 황상이 받아들이고 누굴 추천하면 No라고 말할지 모를리 없었다. 황상을 테스트할 기회를 찾던 곽장군이 도리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럼에도 황제는 “천하의 곽장군도 날 능가하진 못하지, 난 그의 천거도 거부할 수 있다”며 흡족해한 것이다. 황상은 별것 아닌 곳에서 위세를 떨고 중요한 곳에선 함께 공생한 것이다.

당대의 혼감(渾瑊, 750~799)이란 또 다른 대장군이 있다. 그는 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의 결제가 내려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는 문서에 칭찬이 적혀 있으면 우울해 하고, 꾸중이 적혀 있으면 “황상이 나를 의심하지 않는구나”라며 즐거워했다. 그 역시 곽자의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가끔은 손해보는 것이 복인 셈이다. 당신을 혼낸다는 것은 당신을 남처럼 경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몇 마디의 꾸중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 없다. 어느 순간 보스가 당신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면서 이야기해 줄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도리어 조심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이치를 이해하지 못해 낭패를 당했다. 자기의 공로만 믿고 조그만 손해도 감내하지 않았던 사례들이 많다. 진(陳)나라의 개국공신 후안도(侯安都, 519~563)는 자기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황궁을 빌려 집안 잔치를 벌렸다. 이를 못마땅해하던 황제는 호시탐탐 기회를 찾아 홍문연(鴻門宴, 항우가 유방을 죽이기 위해 초대한 잔치로 초청객을 모해할 목적으로 차린 주연을 일컬음)을 열어 후안도를 제거했다. 당 현종(唐玄宗)의 심복이었던 고구려 노비출신 장군 왕모중(王毛仲, ?~730)은 자기의 공로와 황제의 총애를 믿고 조그만 손해도 참으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의 작은 부인이 아들을 낳자 백일이 채 안된 아이를 안고 조정에 나가 분봉을 요구했다. 황상은 아이를 5품에 봉해줬으나 만족하지 못한 왕모중은 “내 아이가 3품에 봉할 가치도 없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한 아첨꾼이 황제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3품 자색 관복을 벗어 아이에게 덮어줬다. 황제는 이 기회를 틈타 “이 아이가 관복을 입고 있으니 멋지구나”라며 푸념했다. 이 체면 다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몇 달 지나지 않아 왕모중은 모든 가산을 빼았기고 자살을 강요받았다. 가련한 왕모중은 반란을 꿈꾸지 않았고, 변심한 것도 아니었다. 체면만 중시하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은 것이다.

이치는 분명하다. 당신이 대신이나 장군이라면 체면을 세우기 위해 황제와 다툴 것인가? 하늘아래 가장 중요한 것이 체면이다. 체면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은 바로 황제다. 황제 앞에서 체면을 깎였다면 그것이 불행한 것일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 명심할 것. 최고 보스 앞에서는 한순간 손해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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