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인증서 – 나는 선택하고 싶다.

By | 2004-04-13

http://zdnet.co.kr/news/column/hjkim/article.jsp?id=68044&forum=1

오는 5월이면 산 속에 집을 짓고 들어앉은지 만으로 꼭 2년이 된다. 시골 생활은 이런 저런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내미를 꼬박꼬박 차를 태워 데려다 주고 또 데려와야 하고, 시장을 보기 위해서도 차를 이용해서 양수리나 양평읍으로 나가야 하니 말이다.

지난 1월에는 둘째를 낳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딸내미의 임신 기간 동안에도 병원 검진을 위해 계속 하남에 소재한 병원까지 오가야 했고 출산시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여러가지 불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보다 이곳에 사는 게 훨씬 더 좋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를 이곳에서도 여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ADSL 방식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필자가 재택근무 하는 일의 특성 자체가 인터넷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다가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이곳의 특성상 인터넷 뉴스가 그 공백을 메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인터넷을 통해 수행하는 중요한 일은 바로 온라인 뱅킹이다. 은행 창구를 일일이 찾아다니기 힘든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여러가지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인터넷에 대해 충분히 감사를 표할만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간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이다. 물론 차를 타고 인근 농협 지점에 가서 현금자동지급기를 이용하는 일은 가끔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며칠전 인터넷 상의 신문 사이트에서 본 뉴스는 필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바로 온라인 뱅킹을 사용할 때 보안용으로 이용하는 공인인증서의 발급을 유료화한다는 소식이었다. 그것은 정통부와 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의 합작품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 공인인증서 발급에 돈을 받겠다는 것일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일까. 정부기관은 자선기관이 아니므로 무료로 그런 종류의 일을 해주기 싫다는 이유에서일까?

한번 솔직히 얘기해 보자. 온라인 뱅킹의 활성화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그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공짜로 얻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현금 재산을 은행에 보관하며 융자니 뭐니 하는 여러가지 거래를 은행과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은 우리같은 소비자의 유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러 은행들이 서로 자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쟁의 일환으로 여러 해 전에 은행들이 하나 둘 온라인 뱅킹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수수료를 감면해 주는 것은 물론 오히려 다른 혜택까지 제공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진정한 수혜자인가. 은행이 아니던가?

하긴 이제 또 다른 수혜자가 생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업용 공인 인증서는 차치하고, 일반인용 공인 인증서의 사용자를 보면 벌써 700만을 넘었으니 일년에 4000원의 사용료를 부과하면 자그마치 280억원의 매출을 정부 기관에서 가져가는 셈이니 말이다. 왜 그 돈을 당신들이 가져가는가. 정부기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인 인증서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데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라고. 아예 인증서 한 장당 2만원을 받아야 된다는 주장도 내부적으로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럽지 않도록 4000원으로 줄였다고.

좋다. 1년에 4000원, 아니 부가가치세까지 합해 4400원이란 비용을 들여서 온라인 뱅킹의 편리함을 누리고자 한다면 개인들에게는 그리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이 진행돼온 경과를 보면 분명히 제대로 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은행은 두 가지 큰 목적을 가지고 온라인 뱅킹을 시작했다. 첫째는 내부적인 비용절감 차원에서, 그리고 둘째는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 제공을 통한 타 은행과의 경쟁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온라인 뱅킹 인증서 시스템을 도입해 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것까진 좋았다. 은행도 기분 좋았고 사용자들도 만족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은행의 온라인 뱅킹 페이지에는 두 가지 인증 버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은행 자체적인 인증서로 로긴하는 것과 공인 인증서로 로긴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얼마후부터는 아예 공인 인증서만 사용할 수 있게 바뀌어버렸다. 물론 그로 인해 훨씬 편리해졌다. 예전에는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두 곳을 이용하려면 서로 다른 인증서 프로그램을 따로 이용해야 했는데 이제부터는 한 가지 인증서로 두 곳을, 혹은 더 많은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갑자기 인증서 사용을 하려면 매년 4400원을 부담하라고 한다. 정작 그 부담을 져야 할 은행이 아니라 사용자더러 돈을 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매년 그 비용은 더 비싸질 것같아 보인다. 도대체 사용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애초 공인 인증서 체계를 도입할 때부터 이처럼 유료화를 염두에 둔 것일까. 혹은 이런 식으로 사용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할 량이었던가? 어쩌면 은행들도 공모자일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에게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혹은 어쩌면 은행들도 선의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정부 주도의 공인 인증서 사용중에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은행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증한 것도 아닌데 내가 책임지라고…?

이제 필자는 정부기관이 다음 세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해라고 주장하겠다. 첫째, 공인인증서의 발급 비용은 은행이 부담한다. 국민은행에서 부담한 공인 인증서를 외환은행에서 사용하는게 맘에 안 든다면 보완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것이다. 즉 국민은행에서 100% 부담한 공인 인증서는 국민은행에서만 쓸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외환은행에서도 쓰고 싶다면 사용자는 외환은행에 그걸 요구하거나 외환은행에 비용을 납부하도록 한다. 은행에서 우수고객들에게 무료로 공인 인증서를 제공하건 돈을 받고 제공하건 정부기관에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당신들은 그저 은행에서 받을 돈만 받아가면 된다. 은행에서 나왔든 소비자 호주머니에서 나왔든 돈만 받으면 매출은 오르는 것 아닌가?

둘째, 자유경쟁체제로 돌아간다. 예전처럼 은행 나름대로 각각 인증서를 만들어 발급하고 정부기관은 그 수수료의 최대 상한만 정해서 우리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역할만 한다. 은행은 자신들이 만든 인증서 사용중 생긴 금융사고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

셋째, 공인 인증서와 자유 경쟁 체제의 병행 내지는 공존 체제로 간다. 사용자들이 4400원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을 들여 하나의 공인 인증서를 발급받아 여러 금융기관을 모두 이용하고 싶어한다면 그걸 선택하게 하고, 그게 싫다면 은행에서 제공하는 사설 인증서를 쓰도록 한다. 은행의 온라인 뱅킹 홈페이지의 시작 페이지에는 두 가지 인증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거래를 하게 만들면 된다.

다른 여러가지 더 좋은 아이디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위의 세 가지중에서 택하라면 필자는 세번째 안을 택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여지가 있는 조건이라면 4400원을 지불하고 공인 인증서를 선택할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공인 인증서라는 방식 자체가 싫은게 아니다. 이미 공인 인증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는 700만명의 사용자들을 볼모로 삼아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드는 강압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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