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에 관하여

By | 2003-05-07

요즘 신문도 배달되지 않는 시골에서 TV도 별로 보지 않으며 살다 보니 정치 계통의 소식에 대해선 그다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면 굵직굵직한 몇 가지 뉴스를 접하긴 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아무개 씨가 국회 등원 첫날에 정장이 아닌 면바지를 입고 넥타이도 매지 않은채 나타나는 바람에 엄청 시끄러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으로서 장관에 임명된 누군가가 스커트가 아닌 바지를 입기도 하고 목걸이와 귀걸이같은 장신구를 착용하기도 해서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동하여 인터넷 뉴스에서 사진을 찾아보니 별로 왈가왈부할 거리도 안되는 것 같았다. 한쪽은 같은 부류에 비해 다소 덜 입어서, 다른 쪽은 반대로 다소 더 치장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 같은데 이런 일을 보면 국회나 공무원 조직이 꽤 보수적인 부분이 있구나 싶다. 하긴 새로 정통부 장관이 된 아무개 씨가 모든 보고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해서 시행하라고 한 것도 뉴스거리가 됐으니 얼마나 바깥세상과는 거리가 멀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필자가 들은 또 한 가지 화제는 바로 코드(Code)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전산쟁이들에게 코드라고 하면 단박에 소스코드니 바이너리 코드니 하는 것을 연상하게 되겠지만 요즘 정치권에서 말하는 코드는 뭔가 다른 것인 것 같다. 이를테면 우리편이냐 아니냐를 말할 때 “넌 나와는 코드가 달라”라고 표현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한 국회의원이 이걸 또 다른 코드(Cord)로 빗대어 말하기도 한 게 압권이다. “예전엔 110V용 가전제품과 220V용 가전제품이 따로 있어서 코드가 달랐지만 요즘은 프리볼트 방식이라 아무데나 꽂아도 되는 것처럼 사람끼리 일하는데 있어 무슨 코드가 맞고 안 맞고 따지느냐”는 주장이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경우에 프로토콜(Protocol)이 안 맞는다는 표현을 흔히 하는데, 아무래도 직종이 다르다 보니 비슷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도 전혀 다른 단어를 쓰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용어들의 공통점은 영어 단어라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무슨 정치권 이야기를 하려고 서두를 꺼낸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그런 소식들로 인해 머리에 떠올린 것은 드레스 코드(Dress Code)에 대한 것이다. 바로 직장에서의 근무 복장 기준이다.

독자 여러분이 지금 회사에 근무하면서 입고 있는 옷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가장 크게 나누자면 정장과 캐주얼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리라. 이렇게 구분하면 또 그 기준이 어려워진다. 넥타이를 매었다면 정장이고 안 매면 캐주얼일까? 그렇다면 싱글 양복이 아닌 콤비로 입고 그 위에 타이를 맸다면 그건 또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른바 세미정장이라는 것일까. 사실 정장 근무의 역사가 훨씬 길기 때문에 정장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이 더 쉬운 편이다.

삼성에 근무하던 시절에 필자는 개발쪽 일을 했기 때문에 복장이 제멋대로(?)였지만 그때 본사에서 근무하던 영업부서의 사람들은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 했다. 검은색 계통의 싱글 양복에 검은색 구두, 와이셔츠는 흰색이 필수이고 연한 색의 무늬일지라도 용납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어디서나 이런 규정을 거의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근무 부서에 따라서 정장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그 당시 80년대에 나름대로 자유롭게 입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던 차에 며칠간 함께 일을 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회사에서 출장 온 프랑스 엔지니어들을 보고는 ‘캐주얼’의 기준도 무척 다름을 발견했다.

헐렁한 스웨터에 청바지, 그리고 목과 손가락에 끼워진 장신구는 우리 엔지니어들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연 이런 복장으로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들었을 정도였다. 하긴 그 당시의 필자와 같은 젊은 연구원들의 복장을 가지고도 윗분들은 꽤 불만스럽게 생각했으니 복장에 대한 시각차는 아주 큰 것이 틀림없다.

비교적 보수적으로 유지되었던 근무 복장이 급격히 느슨해진 것은 하이테크 산업이 부각되고 벤처기업이 붐을 이루면서 였다. 직원의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업무 수행의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데 있어 복장의 규제는 네가티브 효과를 준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으면서 벤처회사나 정보통신 분야뿐 아니라 비하이테크 업체들도 그 길을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부서의 직원들은 여전히 정장을 입도록 규제되기는 했지만 예전의 정장에 비해서는 그 엄격함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편한 복장으로 입고 출근해도 된다고는 해 놓고 보니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다른 게 문제가 되기도 하는가 보다. 무작정 편한 복장과 직장에서 일하기 좋을 만큼 편한 복장과는 당연히 틀린 게 아닌가.

캐주얼 차림으로 근무하는 업체가 급격히 늘어났던 초기에는 여사원들이 배꼽티에 반바지를 입는 경우도 있었고 어디서는 샌들을 신고 출근한 남자사원이 있었다는 식의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캐주얼 복장이 허용되지 않은 곳에서도 근무 복장으로 인한 잡음은 들린다. 예전에 필자가 근무했던 외국계 대기업에서는 모두가 정장을 입고 근무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서는 복장에 관한 말이 오고 가진 않았는데 어느 날 임원 한 분이 여사원들의 복장을 가지고 문제 삼았던 일이 있었다.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정장은 치마나 바지 아무쪽이나 가능하고 색상과 모양도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터인데, 그분의 주장은 여사원들의 복장이 너무 신체노출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치마 길이가 규제되지도 않고 블라우스의 가슴 옷깃이 얼마나 열렸는지, 혹은 얼마나 속이 비쳐 보이는지 규정할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어느 장관과 국회의원의 복장에 대한 구설수를 듣고 한 번 생각해 본다. 기업의 근무 복장은 과연 어떤 식으로 규정돼야 할까. 닷컴 기업의 기가 꺾이면서 회사 이름에 닷컴이니 테크니 하는 꼬리말 붙이는 유행이 시들해진 것처럼 미국에선 캐주얼 복장을 허용했다가 다시 정장으로 돌아가는 업체들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

물론 그 회사들은 하이테크 회사가 아닌 컨설팅 및 금융 회사들이고 하이테크 회사에선 정장을 강요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복장의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잡음도 없어지고 간편한 차림으로 근무하는 이유가 업무의 효율이니만큼 복장으로 인한 업무 방해(?)도 방지할 수 있다. 서로 간에 드레스 코드(Dress Code)가 맞게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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