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부채도사

By | 2002-01-03

드디어 2002년의 해가 떠올랐다. TV를 별로 보지 않는 필자가 2002라는 숫자를 보고 월드컵 축구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만큼 월드컵 이야기가 매스컴에 많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정작 주변 사람들과 대화 내용에는 월드컵에 관한 것은 별로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래도 월드컵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많이 있을테고, 그들 눈에는 새해 떠오른 해님도 그 둥그런 모습이 마치 축구공을 닮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여러 미디어에는 신년 전망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올해도 역시 유명 역술인들의 점괘가 등장했다. 그곳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이슈는 역시 월드컵이었고, 어떤 역술인은 히딩크 감독의 사주팔자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 역술인의 결론은 히딩크 감독의 사주가 안좋아서 16강의 꿈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사주를 제대로 보려면 태어난 날과 시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 역술인은 히딩크의 부모와 잘 아는 사이일까? 게다가 히딩크가 태어난 시는 네덜란드 지역의 시간으로 계산할까, 아니면 그 시간을 한국 시간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는 것일까?

인간이 사는 사회가 고도 과학 문명사회로 치달으면서 종교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카톨릭도 그렇고, 개신교도 그렇고, 불교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 세 가지 종교의 신자라고 발표되는 사람의 숫자를 다 합하면, 우리 나라 인구와 맞먹거나 더 많다고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부터는 그런 경향이 더 커진 것 같다. 오죽하면 어느 나라의 교회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고해성사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자동차를 탄 채로 예배를 볼 수 있는 드라이브인 교회도 생겼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나라에서도 워낙 교세가 확장되다 보니 도저히 본당에 신자들이 다 들어가지 못해 다른 건물에서 멀티비전을 통해 목사의 설교를 듣는 일도 당연해졌으니, 이 또한 종교에서의 하이테크 활용이라 하겠다.

한편으로는 케이블 TV뿐 아니라 위성방송에도 선교 채널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것이 예전처럼 과학기술을 배제하기보다는 오히려 하이테크를 종교의 성스러운 목적에 활용하여 침체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로 대표되는 하이테크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미신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보다는 더 체계적인 내용을 담은 역술이 도태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그런 미신을 믿니?”라는 말이 당연시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미신이라고 부르건 역술이라고 부르건 간에 점집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세력을 더욱 확장하여 700 전화 서비스를 통한 사주팔자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인터넷 상에서도 점을 치고 사주팔자를 보는 사업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고 휴대폰을 통해서 부적을 다운로드받는 서비스까지 등장한 게 아닌가.

예전에는 점을 치기 위해서는 특정 동네에 가서 여기저기 흰 깃발이 나부끼는 집 가운데 하나에 들어가야만 처녀도사나 부채도사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매체 덕분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또 소문내지 않고도 사주팔자를 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역술은 시대를 뛰어넘는 이론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인터넷은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인간의 정신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오늘날에는 점의 결과를 그리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재미를 위한 목적으로 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모든 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합리적인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말띠해라는 사실 하나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과 뱃속의 아기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미신은 앞으로는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미신과 같이 근거도 없고, 역사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강제로 세상에 태어나면 앞날이 창창해지리라고 믿는가?

아마도 옛날에는 성격이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여자는 그다지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은 사람의 성격이 띠의 동물로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에 말띠 여자를 안좋아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현대 사회는 오히려 그런 활발함이 더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던가. 실제로 믿건 재미로 보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미신을 사라져야 할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시대에는 있어서는 안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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