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By | 2001-07-05

미국 하이테크 산업의 침체는 곧바로 우리나라 동종 업계의 몸살로 이어진다. 워낙 방대한 미국 시장을 바라보면서 하는 장사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인터넷 비즈니스의 거대한 거품이 제거되면서 그에 관련된 하이테크 업체들은 너도 나도 비용 절감과 나아가서는 감원을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워낙 기세 좋게 성장해 왔던 시스코같은 회사들 역시 인터넷이 추락하면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나 보다. 필자가 한때 몸담았던 hp도 그 오랜 역사 속에서 한 번도 대량 해고를 하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남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도 이제 예전 IMF 시대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되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 신문 보도에서는 삼성그룹이 전자계열을 중심으로 10%의 인원 감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DRAM 가격의 폭락과 컴퓨터 수요 부진으로 인한 각종 부품의 판매부진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다른 기업체들에서도 또 다시 융단 폭격과 같은 해직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필자의 회사도 이번 달 들어 구조 조정을 했다. 본사를 비롯한 전체 조직에서 30%의 인원 감축을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고 필자의 국내 조직에서는 절반이 넘는 사람을 내보내야만 했다. 그런 일이 없도록, 그리고 설사 있다고 해도 그 규모를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 봤지만 현실은 냉엄하기만 했다.

그래도 해직한 전 직원을 즉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보낼 수 있게 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못 잡고 헤매고 있게 된다면 해직시킨 당사자에게 있어서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내보낸 직원 수에 가까운 만큼의 다른 직원들을 새로 뽑아야 한다.

OEM/ODM 업체 관리를 위해서인데 본사 차원의 전략이 외주 확대를 통한 비용 절감, 그리고 좀더 다양한 모델 확보이기 때문이다. 내보내지 않고 그 인원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등을 떠밀려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느낌이 오갈 것이다. 그 중에는 회사에 대한 원망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당해고를 당했느니 뭐니 하면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기도 한다.

혹은 회사의 비밀스런 정보들을 외부에 누출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사보타지를 감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더 새로운 방식의 복수극으로는 불법소프트웨어 사용을 폭로하는 일까지 있다. 미국 BSA에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최근 몇달 동안 해고된 이들이 자신들의 옛직장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혐의로 고발하는 경우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예전 한참 경기가 좋던 시절에, 회사의 주요 업무를 진행하는 사원이 회사를 떠난다고 하면 그때는 회사쪽에서 사원들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곤 했다. 그 사원이 다른 업체로 옮기거나 벤처회사를 차리면 이른바 “1년 이내 동종 업계 재취업 불가”라는 법전에도 없는 옛 입사서류의 조항을 들어 굴복시키기도 했고, 심한 경우에는 그 직원이 가려는 업체에 압력을 넣어 취업을 취소시키는 만행까지 저지르는 것을 필자는 목격한 적도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회사와 직원 사이에 아름다운 이별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떠나고 떠나 보내면서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최소한 서로를 악의적으로 대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사원과 경영진이 서로 존중하고 규정을 중시하며, 노사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투명한 회사 운영을 한다면 이별은 조금이나마 아름다움쪽으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회사를 떠난 사람도, 계속 일하고 있는 사람도, 그리고 경영진도 다 함께 이 점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찾아올 그 때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맞이하게 될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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