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가 필요해요

By | 2021-02-06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2002년에 우리 가족은 양평 남한강에서 산 골짜기로 조금 들어간 곳에 집을 짓고 서울에서 이사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여러가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설치했지요. 그당시엔 와이파이라는게 거의 없다시피한 시절이라서 방마다 유선 네트워크 잭 RJ-45 이더넷 케이블 연결 잭을 설치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살다가 이사를 오면서 가져온 110볼트 가전제품들을 사용하기 위해 220볼트 전원 컨센트 옆에 나란히 110볼트가 공급되도록 만들기도 했구요. 거실에서 영화를 볼 때 서라운드 스피커를 벽안에 매설시키고 또 한국 가정집에서 흔하지 않은 HRV (열교환 환기 장치) 도 업체에서 사다가 집안 환기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해봤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시골 생활에 밀접하게 도움을 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벽난로와 바베큐 그릴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렌트해서 살던 집에도 벽난로가 있었지만 그게 추운 동네가 아니라 별로 벽난로에 불붙일 일이 없었는데 한국에서 춥다고 소문난 양평으로 들어가면서는 만약을 대비한 보조난방 수단으로 나무를 땔감으로 하는 벽난로를 필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당시 사진들을 찾아봐도 신기할만큼 벽난로가 찍힌게 없어서 한국의 벽난로 업체 홈페이지에서 비슷한 제품 사진을 찾아서 보입니다.

양평에 이사간 첫겨울이 꽤 추웠습니다. 영하 23도까지 내려가버렸는데 이 장작을 때는 벽난로가 일단 제대로 열을 내기 시작하면 집안히 후끈거릴 정도가 되었거든요. 서울 사는 친구들은 식구를 데리고 고기를 사서 주말에 놀러오면 밖에선 바베큐 그릴에 고기를 굽고 그걸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벽난로 불 앞에서 식사를 함께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4년여를 양평에서 지내고 다시 한번 한국을 떠나는데 이번엔 땀나는 나라 태국입니다. 벽난로와는 거리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또 2년이 더 지난 뒤에 오게 된 이곳 캐나다 런던. 처음 렌트한 아파트와 두번째 타운하우스에는 벽난로가 없었습니다. 세번째로 살게된 집은 영주권이 나오면서 구매한 단독주택이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벽난로를 끼고 살기 시작했고 몇번 더 이사를 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이전 집에서도 벽난로는 우리 가족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지요. 이젠 더 이상 장작 난로는 아니고 도시가스로 불꽃을 피우는 벽난로지만 그 앞에서 TV 를 보고 잠도 자고 책도 보고… 심지어는 강아지도 난로만 틀었다 하면 그 앞에 가서 자세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 광풍이 풀면서 주택가격이 마구 오르면서 불안을 느끼게 되자 우리 가족은 기존에 살던 집을 렌트로 내놓고 조금 더 작은 집을 구매해서 이사를 들어오게 되는데, 이 집이 공간이 너무 빠듯해서 벽난로는 아예 없는 구조였던겁니다. 이사를 한 여름엔 어차피 생각도 안나고 괜찮았지만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 겨울을 지나 겨울이 되면서는 더욱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특히나 추위를 잘 타는 아내와 벽난로 중독인 강아지에겐 더욱 그러한 듯하더군요.

그래서 Wayfair 사이트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개스 벽난로는 설치할 수 없어도 그 대안으로 전기 벽난로를 사자는 것이었죠. 이리저리 살펴보고 구입을 하기로 한 것이 아래 사진의 물건. 정가가 $637.99 인것을 $435.99 에 세일로 판매한다고 나오지만 이건 믿거나 말거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꽃 모양만 나오는게 아니라 충분한 열량의 팬히터가 내장되어 있어서 따듯한 바람이 나와야 하는겁니다.

주문을 했고 배달 예정일은 5일 뒤였는데 실제로는 이틀만에 도착했습니다. 초인종도 안 누르고 현관문 밖에 놓고 갔더군요. 박스가 너무 무거워서 며칠동안 그 자리에 있어도 누가 훔쳐갈 일은 없었을겁니다. 우연히도 같은날 배달된, 한국에서 온 소포도 그 옆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일단 집안으로 옮겨놓고..

저녁 먹고 조립을 시작합니다. 내가 자칭타칭 분해와 조립의 ‘달인’이지만 이건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매뉴얼과 다른 점이 몇가지 있어서 중간중간마다 임기응변도 발휘해야했구요. 그런데 마지막 단계까지 다 조립하고나서 벽난로가 잘 동작하는지 테스트까지 하는 와중에 조립부품 중 2프로 부족함이 발견됩니다. 좌우 양쪽 유리 문짝 안의 선반을 잡아주는 고정 Pin 이 한개도 들어있지 않는겁니다. 그저 쓸데없는 부품만 여러개 남았지요.

이걸 업체랑 통화해서 모자란 부품을 보내달라고 한다? 구하기 어렵거나 값이 좀 되는 부품도 아닌데 그럴 필요는 없지요. Home Depot 에서 $3.37 주고 한봉지 사다가 그냥 조립 마무리를 합니다. 빨리 마무리하고 다른 쪽에 신경쓰는게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습니다.

그래서 조립을 마치고 불을 켜니까… 가장 먼저 벽난로 앞으로 다가온 분은 강아지… 옛 기억이 났나 봅니다. 하지만 그 앞 마루 바닥 위에 앉아있어도 따듯한 느낌이 안 나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군요. 전기 벽난로는 불꽃은 가짜고 따듯한 공기는 윗쪽에서만 불어나오니까요. 우리 강아지는 실망한 나머지 그 뒤로 다시는 이 전기 벽난로 앞으로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아내가 그 앞에 의자를 바짝 대고 겨울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진짜 불꽃이 있는 벽난로만큼은 만족도가 높지 않으니 벽난로 때문에 또 이사를 가야 하나 싶네요. 그러기엔 요즘 집값이 너무도 넘사벽이네요.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