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때마다 매번 찾아오는 생일은 올해도 며칠전 또 오긴 했는데 요즘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리 환영 받는 분위기가 아는듯 했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식구들 모두 시큰둥한게 생일아 너 또 왔니? 라고 무덤덤하게 묻는 듯까지 했는데, 그나마 막내가 해피버스데이투유를 한소절 부르는 척 하다가 이번에는 어느 레스토랑에 가서 다 함께 식사할꺼냐고 묻는 정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일텐데 정말 반세기를 살고보니 별로 큰 감회가 생기지 않는 걸 어찌하겠는가… 한편으로는 생일이라고 뭔가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가고 스페셜 이벤트를 만드는 사람을 보면 나로서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다. 돈들고 피곤하고 나중에 남는게 없는 짓을 뭐하러 한담… 이라는 생각. 그냥 집에서 배부르고 등따신 상태로 영화 한편 보면 그게 최고라는 느낌이이 드는걸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선 며칠전 그날이 나의 생일이었다는 것 뿐이 아니라는 것다. 나의 생일은 항상 결혼기념일과 함께 온다는 것이다. 즉 내 생일날 결혼식을 올렸는 것. 그다지 ‘기념’이랄 것이 없는데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닥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데, 이런 날에는 꼭 마누라가 뭔가를 바랬었다는 기억이 나기에 신경이 좀 쓰이긴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생일 겸 결혼 25 주년 결혼날은 하루종일 너무도 바빴다. 시큰둥한 내 마음을 아는지 매장 한 곳의 직원이 일 못한다고 해서 또 부부가 출동했다.
9시가 가까와오면서 마누라가 하루 매출 마감하는 동안 나는 진공청소기를 매장을 청소하고.. 다 마치고 집에 오니 시계는 10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내 생일 겸 결혼 기념일이 지나가는데.. 집에 와서 뭔가 축하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낮에는 쇼잉 등의 리얼터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가 저녁에 이렇게 매장 업무를 해서인지 바로 침대에서 골아떨어지는 모습… 그래도 나랑 살아줘서 참 고맙다고 결혼기념일 멘트를 이렇게 글로나마 적어볼 뿐.
이민 카페에서 보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이민을 하려는 목적을 자녀 교육 외에 저녁 있는 삶, 여유있는 생활, 보장된 복지 혜택을 갖고싶어서라고 적고 있는데 이민 10년이 다가오는 우린 그런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물론 이민 직후에 1~2년 동안은 사업도 안 하고 취업도 안 하고 있어서 일종의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인 타격이 무척 컸다. 한국과 태국에서 영주권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캐나다에 와서 경제활동 못하면서 집 한채가 날아가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또 한 채가 날아가서 이제 한국에는 남은게 없고 그동안 부모님이 한분, 한분 돌아가셔서 더더욱 한국을 돌아볼 이유도 더 없어졌다. 이 캐나다 땅에서 벌어 먹고 살아야하는 모드로 들어가면서는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주말도 없고 집에서도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 되어버렸다. 자영업자의 특성상 노후 대책은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할텐데 지금은 그것도 대책이 별로 없는듯하다. 그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일하는 수 밖에 없다.
오늘 저녁은 매장 중 한 곳의 직원 한명이 집안일이 있다고 못온다고 연락이 왔다. 지금 카센터에서 차 수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교대시간을 제때 맞춰가지 못할까봐 또 초조해진다. 작은아이는 오늘도 혼자 저녁을 먹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음악 레슨 라이드는 나 대신 집사람이 대신 하고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단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렇게 빠듯하게 또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