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미국 LPGA 골프 투어. 미국내에서는 LPGA 의 한국골퍼들에 관련하여 작년부터 이런저런 불만에 찬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작년까지는 큰 목소리는 LPGA 협회 내부에서 나온게 대부분이었다. 가장 반향을 불러 일으킨 이슈가 바로 영어 실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당시 찬성하는 목소리는 작은 반면 한국출신이 아닌 골프들에서까지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대회 스폰서 가운데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사실 대회의 스폰서들은 다들 마케팅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므로 대외 이미지가 나빠진다면 회사의 평판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속마음은 어쨌든간에 대의명분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LPGA 협회 측에서 영어실력 검증 계획을 철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보인다. 이제 LPGA 내의 비 한국계 여성골퍼들도 동요가 보이는듯하고 LPGA 홈페이지나 골프 소식을 전하는 미디어의 독자들 의견 게시판에서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지은희 선수가 US 오픈에서 우승을 하고나서 공식 인터뷰를 할 때 처음의 “Thank you” 한마디만 영어를 사용했고 그 뒤의 모든 인터뷰를 통역을 이용했다는 것에 대해선 꽤 많은 미국 골프팬들의 불만스러운 글들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 처음 온 것도 아니고 몇년동안 투어에 참여하고 있었으면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신지애 보다 지은희가 영어를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신지애의 경우엔 우승 뒤에 인터뷰를 직접 영어를 써서 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비록 표현법이나 발음이 아직 많이 유창한 정도는 아니고 동문 서답도 가끔 보였지만 대부분의 대화에서 의미 전달은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노력의 여부가 중요한 것인지라 기자들도 대부분 신지애에 대해선 호의적인 기사를 썼고 이번 지은희 우승 때같은 종류의 비난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시기적으로도 안 좋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 스폰서들이 대회 후원을 이미 취소했거나 취소를 고려하고 있어서 2007년부터 지금까지 7개의 대회가 취소되었고 6개가 넘는 대회는 아예 스폰서 없이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경제불황의 여파도 있고 일부 LPGA 투어를 총괄하는 커미셔너의 잘못도 있기도 한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 선수들의 인해전술(?)도 적지 않은 이유가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출난 영웅이 없는 강호에선 패가 많은 쪽이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결국은 이런 요인 때문에 골프라는 게임에 대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쌓이다보니 결국 오초아를 비롯한 탑클래스 선수들이 모여서 반란을 일으켰다. 기자회견을 통해 LPGA 커미셔너에게 스스로 물러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고 기존 커미셔너는 물러났고 이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맡은 상태가 되었다. 참고로, 당연한 것같지만 한국 선수들 가운데 기자회견에 나온 사람은 없었고 단지 박세리만이 LPGA 커미셔너에게 보낸 문서에 서명을 했다고 알려진다.
최근에 한국 여성 골퍼들에 대한 이같은 주장들이 한국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볼 수 있었던 독자들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다음과 같은 식의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 “미국선수들이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걸 가지고 왜 한국선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냐”
- “실력이 좋으니까 샘나서 그렇다”, “미국선수들 실력이나 키워라”
- “어차피 골프는 실력 겨루기 아니냐. 싫으면 TV 중계 안보면 되지 않냐”
- “운동선수는 점수로 말하지 영어로 말하는게 아니다”
- “이건 인종차별이다”
- “규정대로 하는건데 뭐가 문제냐”
- “그럼 멕시코 국적의 오초아는 왜 문제삼지 않냐”
- “지은희와 최종경합한 대만국적의 캔디쿵은 왜 문제 삼지 않냐”
그런가 하면 “LPGA 골프는 올림픽 같은 대회가 아니므로 이런식으로 반발하면 안된다” 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훨씬 더 많았고 거의 글쓴이는 매국노로 매도당하는 지경이 되었다. 어차피 위의 의견들은 한국 내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한국어로만 개진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LPGA 본원지인 미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저 우리까리 아옹다옹하는 셈일 뿐이다.
사실, LPGA 투어는 국가까리 대결하는 경기가 아니다. 미국 땅에서 대다수가 개최되며, 미국의 골프 단체인 LPGA 에서 미국의 TV 방송을 통해 중계되며, 미국인들이 전체 시청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매우 미국적인 이벤트이다. 대회의 스폰서도 몇몇 외국 회사를 제외하면 주로 미국 회사들이다. 만약 LPGA 에서 외국국적의 골퍼 참여를 금지한다고 해서 무슨 법적 문제가 생긴다거나 국제적인 분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영어실력 평가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안팎으로 이런 저런 말이 많았지만, LPGA 협회에서 그 제도를 강행하고자 한다면 누가 뭐랄수 없는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골프들은 영어실력이 부족할 경우엔 그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던지, LPGA 투어 참가를 포기하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LPGA 투어는 철저히 흥행의 논리, 경제의 논리에 따른다. 무슨 자선단체도 아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경기도 아니고 순수한 민간단체일 뿐이다. 기업 스폰서를 구해서 비용을 조달하고, TV 중계권을 팔아서 선수들 상금도 마련하고, 갤러리 입장권도 팔아서 운영비도 마련해야 한다. 외국 골퍼들을 배제함으로써 그 흥행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게 확실하면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KLPGA 대회가 벌어지는데 태국출신의 여성골퍼들이 열명쯤 출전하고, 전체 대회의 절반쯤을 태국 골퍼들이 우승하며 인터뷰할 때는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고는 그 뒤의 몇마디 질의응답은 통역을 통했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후원기업 사장이거나, 중계하는 TV방송사 사장이라면 어쩌고 싶어질까.
LPGA 투어는 일종이 쇼비즈니스이다. 갤러리와 TV 시청자들은 쇼를 보고 싶어한다. 남자들의 PGA 투어에서, 타이거 우즈의 호쾌한 스윙과 카리즈마 가득한 얼굴과 매너를 보고 싶허하며 막판 대역전극을 펼칠 때 열광한다. PGA 투어 경기에서는 아니었지만 노장 탐왓슨의 투혼도 훌륭한 쇼를 선사해줬다. TV에서는 항상 골프 영웅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의 타이거 우즈 이전엔 오래전부터 잭 니클로스 혹은 아놀드 파머 등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그 영웅역할을 하며 독주하기도 하고 경쟁구도를 펼치기도 하면서 쇼를 펼쳐왔다. 아무리 골프 실력이 좋아도 미디어와 친하지 않으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한국계라는 미셸 위가 그렇게 죽을 쑤고 있지만 한국의 신지애 같은 실력자나 순수 미국 골퍼인 폴라크리머, 나탈리 걸비스 같은 선수들보다 미셸위가 훨씬 인지도가 높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일찍부터 유명세를 얻으며 쇼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 영웅적인 쇼를 선사해줄 가능성이 높아서이다. 토종 한국감자처럼 생긴 앤소니 김이 얼마나 미국 대중으로부터 인기가 많은지는 알 것이다. 갤러리와 TV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쇼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최소한 타이거 우즈가 흑인과 태국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골프 비즈니스가 인종차별과는 관련이 별로 없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LPGA 에서 오랫동안 여제의 자리를 지켰던 스웨덴 출신의 애니카 소렌스탐은 또 어떤가? LPGA 또는 일반 미국 골프 팬들 가운데 어느 누가 소렌스탐을 우러르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호주 출신의 캐리 웹은 또 어떤가? 이들이 백인이라서 그렇다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멕시코 출신의 로레나 오초아의 경우는 어떤가? LPGA 에서의 오초아의 위상을 생각하면 인종차별이라거나 국적문제가 특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단지 지금 LPGA 의 위가가 그 TV 쇼를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멋진 여성골퍼가 멋진 샷을 날리며 멋진 대결을 펼치며 우승한 뒤에 TV 카메라 앞에서 감동적인 소감을 말해주는 그 쇼의 요소가 없으면 어찌 시청률이 올라갈 수 있겠는가. 별 표정없는 얼굴로 샷을 하고 우승한 뒤에 감격적인 제스쳐를 하고 그것이 TV 인터뷰로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TV로 중계되지는 않지만 정식 대회의 첫날 프로-암 라운딩때 스폰서 기업의 임원들이 그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팀을 이루는 시간에 그들간의 유쾌한 라운딩을 가질 때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과 국제적 마인드와 다양한 상식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멕시코 골프 영웅 로레나 오초아는 청소년때 두각을 나타낸뒤 19세때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진출 이전에 먼저 아리조나 주립대학에 입학해서 2년을 재학했다. 스스로의 말처럼 그 2년간 영어 능력을 일취월장시킬 수 있었다. PGA 계에서 작년에 2승을 올리며 영건으로 떠오른 컬럼비아의 카밀로 빌리제가스는 비슷한 목적을 위해 미국의 플로리다 주립대학에 입학했었고 애니카 소렌스탐도 2년간 아리조나 주립대학에 재학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 지은희와 막판에 우승을 놓고 경합했던 캔디 쿵은 대만출신이지만 미국에서 남가주대학을 다녔다. 이처럼 비영어권 국가 출신의 많은 선수들이 그런 경로를 따르고 있다. 한국선수들은 그런 경로를 거치는 모습이 별로 안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혹독한 훈련을 통해 19살, 혹은 20살에 우승을 쟁취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과연 그것이 장기적인 관점인지는 잘 생각해봐야 하겠다. 한국식 빨리빨리 풍토때문에 첫우승을 빨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중간에 학교생활이 겹치면 골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도 있는게 아닐까? 작년 2008년 US 오픈 우승자인 박인비 선수는 영어를 곧잘 하는것으로 보였는데 2001년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간 덕분인가 싶다. 그런데 영어 인터뷰가 좀 밋밋하다 싶은 면이 있었는데 역시 한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여전히 박인비는 영어가 힘들다고 실토했다. 미국에서의 7 년여의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여기서도 혹시나 “운동선수가 운동실력만 좋으면 됐지”라는 인식이 앞선 것일까?
LPGA 는 철저히 상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적 논리를 벗어나는 대회가 되면 결국 몰락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다시 한국 여성골프계의 몰락으로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맨날 LPGA 에서 차별을 하느니 뭐니라고 말하기 전에 한국에서 자체적인 대책을 먼저 세워야하지 않을까싶기까지 하다. 협회 차원에서의 장기적인 경제논리, 상업적 시각에서의 관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개인적인 노력도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이 쇼비즈니스에서 패배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