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핀 바람꽃”을 읽고..

By | 2009-05-17

메이슨빌 도서관에서 아내가 빌려온 책들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 “벼랑에 핀 바람꽃”이었다. 겉표지 도안이 꽤나 유치하다싶은 그 책의 지은이 이름을 잠깐 눈에 들어오는데 와타나베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건 또 주변에 널려있는 일본 에로 내지는 오타쿠스러운 소설 중의 하나인가보다 싶었는데 그걸 아내가 읽으면서 재미있다는 말을 연발해가며 내가 읽어도 재미있어할 만하하다고 추천까지 하고 있었다. 난 아내가 그걸 다 읽고나서 다른 책으로 넘어간 다음날까지도 읽을 생각도 안 했다. 화장실에 가면서 뭔가 간단히 읽을만한 것을 찾다가 바로 그 책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화장실 안에서 서너 페이지 읽으면서 서서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서 그 뒤로 거실에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여 오늘 오후에 바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바람 피우는 남자, 그 사실을 발견한 아내의 반발심으로 시작된 맞바람. 소설의 시점은 처음엔 남편을 따라 움직이며 한참 진행되다가 다음엔 아내의 시점으로 옮겨지고 그걸 다시 한 두번 더 거듭한다. 각자의 심리적인 혼란, 그에 따른 부부 사이의 거의 대화가 없는 갈등, 그러면서 하루 하루 지나가는 일상이 꽤나 실감나게 그려진다. 여기서 ‘실감난다’는 표현은 판에 박은 감상문들에서 흔히 써주는 그런 ‘실감’이 아니라 정말 적어도 10년 이상은 함께 살아온 보통의 남편과 아내가 공감할 수 있는 정말 그런 느낌이다.

도덕적인 발언을 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빼고 감상문을 적어보자면, 좀 삐딱하게 봐서 ‘바람 피우기’ 및 ‘맞바람 피우기’ 교습서라고 할 수도 있고, 각자의 외도가 부담없이 현실에서 제자리를 잡은 상태에서라면 어떤 사고방식이 과연 부부생활을 ‘건설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의 3차원적인 비결을 보여준다. 어떤 중년 부부에게, 외도라는 비정통적인 구성요소도 안정된 부부생활을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나 할까.. 문득 생각나는 것으로 한국 영화 ‘바람난 가족’이 있는데 요즘의 한국영화들이 흔히 그러하듯 너무 질퍽하게 성적으로 오버하여 보여주는 경향이 그 영화에서도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공감을 하거나 심리적 부담이 없이 볼 수는 없었다. 영화는 아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던 느낌은 절제된 표현과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묘사를 통한 공감대의 형성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에도 그럴 수 밖에 없겠군..’ 식으로 느끼면서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끔 결말이 유도되는 내용은 정말 생산적이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느낌과 지나친 말장난에 좀 피곤한 면도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부담없는 소설이 바로 이 “벼랑에 핀 바람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 저자 이름을 끝까지 읽어보니 “와다나베 준이찌” 라고 되어 있다. 꽤나 익숙한 이름인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와다나베’ 와 ‘준이찌’ 두가지 이름이 모두 각각 흔한 이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싶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단번에 ‘실락원’이라는 책 제목이 다른 여러 책들 앞에 나온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이름이 눈에 익었구나 싶었다. 실락원은 읽었냐하면.. 아니,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또 영화지만 보지 않았다. 너무 유명한 것을 피하곤 하는 경향이 나에게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조차도 보질 않았다고 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한편,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무엇인지 알고싶어 책 앞뒤 표지를 다 뒤져봐도 실마리가 안 보인다. 바람 피우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 출판사에서 바람꽃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을 새로 만든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책 표지의 촌스러움은 1993년에 인쇄된 것이라 그렇다 쳐도 원저자에 대한 소개 마저 한줄도 쓰여있지 않고 온통 횡설수설 하는 ‘역자의 말’ 이라고 하는 글만 한 페이지 쓰여있다. 소설 읽는 도중에도 번역 한번 꽤나 못했다 싶었는데 과연 그럴만 하다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별 정보가 없다. 일본어 사이트를 찾아보니 뭔가 이것저것 많이 나오는데 제대로 읽을만한 실력이 안되어 이또한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으니 됐다. 언제 기회가 되면 ‘실락원’같은 그의 다른 소설도 읽어볼 마음이 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지금 당장은 못 읽겠지만 나중에라도 떠듬떠듬 읽어볼 요량으로 와타나베 준이찌의 정보를 아래에 스크랩해본다. 그런데, 그 ‘실락원’이란 작품을 62세에 발표했다고…? 이제나 저제나 에로소설이건 로맨틱소설이건 써보고 싶어하는 나에겐 반가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헛기침 한번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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