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넓은 곳으로 떠나라!”

By | 2003-08-14

여러 해 전 IMF라는 영문 세 글자를 온 국민의 뇌리 속에 깊이 새겨 놓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외환대란으로 인한 불황을 경험했다. 그 후로 다시 외환 보유고가 1000억 달러을 넘나드는 상황으로 돌아선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수상한 기운이 감돌더니 여기 저기서 슬슬 불황이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IMF같은 갑작스러운 추락이 아닌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충격파는 심하게 느껴지고 있지 않지만 어느덧 헤어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온갖 난리를 쳐 대지만 찬물에 넣고 조금씩 온도를 높여가면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조용히 죽어간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이다.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한 친구는 벌써 석 달째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몇 달 전에 필자가 본 컬럼에서 언급했던 또 다른 친구는 외국계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지 1년여 만에 조용히 회사 문을 닫고 또 다른 외국계 회사로 취직했다고 연락이 왔다. 물론 십여 년 동안 일한 결과로 받았던 퇴직금은 몽땅 까먹은 뒤였다.

10여 년간 삼성에서 일하다 동료들과 함께 네트워크 관련 벤처기업을 차려 코스닥 상장을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지난달에 결국 경쟁사에 헐값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그 곳에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미국의 꽤 알려진 주립대학에서 반도체 분야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국내 대기업을 거쳐 벤처 기업 사장을 하고 있지만 이달 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을 차리려고 준비중이다. 자신의 학위나 경력은 포기하겠다고 한다. 물론 아직은 제법 짭짤하게 장사를 잘 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자꾸만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다들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무너지면서 느끼는 것중의 하나는 바로, 그 많던 사장님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라는 것이다. 필자의 친구들은 다른 회사의 사원으로, 영어학원 원장으로,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또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는 지금 이렇게 컬럼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불황의 그늘 속에서 어려움에 빠진 몇몇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힘들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해외이민이었다. 신중히 고려해 본 경우도 있고 잠시나마 고려해 본 경우도 있었지만 꽤 여러 친구들이 해외이민, 특히 캐나다로의 이민을 머리 속에 담고 있거나 담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이런 친구들 말고도 IT 계통의 다른 사람들 경우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독자 여러분 자신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봐도 그런 모습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만 하고 포기했던 경우의 이유를 들어보면, 가장 흔한 대답이 부모님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한국에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도 있긴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IT 분야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더욱이 요즘엔 비록 훌륭하진 않아도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해외 이민. 그것은 한편으로 보면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꿈을 펼쳐보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예전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가서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하곤 하는 그런 이민이 아니라 내가 가진 기술을 인정받아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간다고 하면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능력있는 인재들이 외국으로 다 빠져 나가 정작 한국에는 누가 남겠냐는 말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상황은 그런 사람들을 제대로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아무리 귀한 인재라고 칭송한다고 해도, 이 좁은 땅에서 그나마 받아주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아둥바둥대며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취지에서 필자는 컴퓨터 관련 인력의 해외 이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이런 저런 이민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여러 이주공사들의 홈페이지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는 무료 사이트도 많이 볼 수 있다. 혹시나 관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봄도 좋을 듯 하다.

필자 또한 예전에 한참 잘 나가던 시절 미국 실리콘 밸리에 파견 나가 일할 때 아예 그곳에 자리를 잡는 것까지도 고려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 뛰어다니며 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더군다나 현재는 별다른 직업없이 이곳에 컬럼을 쓰는 것 밖에는 달리 하는 일이 없고, 경력이 많다 보니 머리가 커질 대로 커져서 국내에선 오라는 곳도 찾기 힘들다. 자연히 필자도 해외 이민에 대해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국내에서 할 일이 없으면 해외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에서이다.

물론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결정에 앞서 선행해야 할 점은 전혀 다른 문화권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어와 사고방식과 사회규범 등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미리 알아놓아야 문화적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 무작정 가서 직장을 찾겠다는 식으로 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가령 캐나다의 어느 컴퓨터 회사에 취직이 되면서 이민을 가게 된다고 할 때 연봉으로 5만 달러를 받는다고 해서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실제로 손에 떨어지는 것은 그 절반이 채 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그보다는 좀 나을테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에서 경험했던 경제 상식이 그 쪽에선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많은 벽이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요즘 IT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독립 이민 상당수가 캐나다를 목적지로 하고 있다. 그곳에서 직장을 찾기 쉬우니 어려우니 하는 말들이 구구절절 많지만, 분명한 것은 국내에서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IT 엔지니어라면 그곳에서는 절대 실력으로 밀릴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노력과 영어실력에 따라 그 종착역이 달라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실력이 없이 영어만 좀 한다고 해서, 혹은 자격증만 몇 개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전문 분야의 실력과 영어 능력, 그리고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대로의 노력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

필자는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여 우리나라 인력의 우수함도 알리고 또 국제화된 경험도 많이 쌓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에서 인력이 모자라니 뭐니 하는 말들은 뒤로 한 채 넓은 세상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면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삶보다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 IT 직종이 좀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다면 그때는 돌아와 또 다른 나래를 펼칠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당신들, 이제 때가 되었다고 느껴지고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떠나라. 필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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