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기술의 대결

By | 2003-07-16

http://www.zdnet.co.kr/anchordesk/todays/hjkim/article.jsp?id=63073&forum=1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은 아마도 컴퓨터에 관해서는 남들이 뭘 물어보더라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작정 컴퓨터라고만 해서는 막연해지고 또 분야가 다른 경우에는 알고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저 ‘컴퓨터를 잘 한다’라고 표현하곤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러분은 컴퓨터의 전문가 내지는 준전문가로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일단 컴퓨터를 가지고 일을 한다는 점을 벗어나서 그걸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령 ‘임베디드 시스템의 펌웨어를 만듭니다’라고 말한다면 엔지니어끼리라도 바로 그쪽 계통의 사람이 아니고는 별로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GPS일을 하던 초기에도 그랬다. 그 때가 1998 년경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GPS라는 용어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필자가 GPS 장치를 개발한다고 하면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을 위해 한참 동안 시간을 내어야만 했다. 지구 둘레에 미국방성에서 띄운 위성이 몇 개 있다느니, 또 그 위성에는 세슘원자 시계와 루비듐 원자시계가 각각 2 개씩 들어가 있다느니, 혹은 GPS 신호에는 어떤 정보가 들어있는데 삼각측량법의 원리를 이용한다는 등과 같은 얘기를 수없이 거듭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게 상당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GPS라는 용어를 머리에 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작년 말까지 GPS 쪽 일을 했다고 하면 그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 되었다. “아, 그 자동차에 설치하는 과속 단속 카메라 감지장치 말이죠…”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은 자동차용 네비게이션 장치까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 쪽으로 그대로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하긴 도로 여기 저기에 널린 플래카드에도 “GPS = 과속단속 카메라 감지기” 라는 식으로 써 붙여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GPS 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과속 단속 카메라를 감지하기 위한 위성 수신 장치쯤으로 전락(?)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GPS 라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있긴 하구나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사실상 그들 장치의 실체는 네비게이션 장치, 즉 항법장치이다. 지도 상에서 볼 때 내가 운전하고 있는 이 차가 어느 도로를 통해 어느 방향으로 어느 위치에서 어느 속도로 주행하고 있는 지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운전자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최단 경로를 알려주기도 하고 교통상황에 대한 부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는 혼잡한 곳을 피하여 우회경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독자들 가운데에는 이미 이 네비게이션 장치를 사용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미국 등지에 출장을 갔을 때 차를 렌트하면서 옵션으로 이것을 선택하여 경험해 보았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아주 멋진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독특한 쪽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바로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를 미리 알려주는 기능이 주 목적이 된 것이다. 예전에 과속 단속 카메라의 숫자가 적었을 때에는 그 카메라 전방 수백미터 앞에 전파 송신기를 숨겨놓아서 그곳을 지나가는 차량에게 무선으로 알려주는 방법도 쓰긴 했지만, 요즘엔 그것은 거의 사라졌다. 그대신 GPS 수신기로 차량의 위치와 방향을 모니터링 하다가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는 위치를 지나기 수백 미터쯤 전에 미리 알려주는 기능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GPS를 사용한 과속단속 카메라 위치 감지기의 원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치를 차량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게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길가에서 목격되는 그 많은 GPS 방식 과속단속 카메라 감지기 판매상들이 모두 불법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이 제품으로 크게 성공한 어느 벤처업체 대표가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보인다. 혐의 내용은 전파법 위반이라는데 이게 GPS 수신장치와 어떤 관련을 갖는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로 교통법을 보면 ‘속도 측정기기 탐지용 장치를 한 차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그 장치는 속도측정기기 탐지용 장치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GPS 위성으로부터 발신되는 전자파를 수신하여 현재의 차량 위치를 알아내는 장치이다. 단지,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의 데이터베이스를 함께 가지고 있어서 그런 부수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카메라의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운 카메라가 설치되는 경우에는 그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 하지 않고는 카메라 위치를 알아내지 못한다. 법을 잘 모르는 필자가 생각해 봐도, 아무리 그 규정을 엄청 확대 해석한다고 해도 사람을 덥썩 잡아들일 죄목이 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그 회사의 제품이 알려주는 내용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 정보보다는 결빙이나 안개 잦은 지역, 사고 다발 지역, 위험 지역 등에 대한 정보가 더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용자를 처벌하겠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지난달부터는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에서 이 장치들에 대해 전자파 적합 등록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건 더욱 어리둥절할 일이 되었다. 이러다간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를 친구에게 알려주는 경우에도 구속 사유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법을 확대 해석하자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GPS를 활용한 과속단속 카메라 감지기라는 이름의 장치를 사용해 본적도 없고 구매할 생각도 없다. 그건 그 장치들을 돈 주고 구입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이지, 그걸 불법이라고 간주해서는 아니다. 현행법에 위배되는지도 모호한 사항을 가지고 멀쩡한 기술 업체들에게 범법행위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오늘날은 인터넷 사회, 하이테크 사회이다. 정부의 여러 기관들도 부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고, 행정 편의주의도 버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판결하는 쪽에서 시대에 못 맞추는 것일 뿐,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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