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지고 있는 메일 계정은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열 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이른바 무료로 제공되는 웹메일 서비스인데, 언뜻 헤아려봐도 핫메일, 야후, 다음, 프리챌, 빅풋, 코리아닷컴, 천리안 등이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 가운데 1997년 이래로 계속 사용해 온 핫메일만 접속을 하고 있고, 다른 것들은 거의 로그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면 핫메일에 만든 계정이 2개, 야후에 만든 것도 2개나 되는 것 같다. 송신자의 종류를 구분해서 알려주다 보니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생활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메일 계정은 무료 메일 계정이 아닌데, 그 도메인 명이 색다르다. Xaran.com이라는 것으로, 실제로 이런 이름의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필자가 직접 등록한 개인 도메인으로서, 내가 마음대로 계정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메일 시스템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상업용 스팸 메일을 보낼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요구할 때는 앞에서의 핫메일 주소를 알려준 덕분에 스팸 메일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 얼마 전 본 컬럼에 토크백을 올린 독자중 한 분은 아예 집 컴퓨터에 메일 서버를 실행시킨다고 했지만 필자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대신에 메일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한다. 관리의 자유도가 좀 떨어지고 메일 용량이 한정되지만 거의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 한 달에 몇 천원 정도에 필자와 집사람의 ID 2개를 유지할 수 있으니 경제적인 부담도 적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자기 개인만의 도메인을 소유하면서 웹사이트를 구동하거나 메일 계정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여럿 되는 것을 보면 필자가 그리 특이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이처럼 독자적인 메일 시스템을 가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광고 때문이었다. 주소가 외부에 노출됨으로써 스팸을 받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핫메일과 야후 메일을 사용하면 메일의 수신자가 받게 되는 메일 꼬랑지에는 반드시 해당 무료 메일 회사에서 붙이는 광고성 문구가 자동으로 붙어 전달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점잖은 내용의 메시지에도 붙게 되는 것은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요즘엔 아웃룩 익스프레스같은 것을 사용해 메시지를 보내면 핫메일에서도 그런 문구가 붙지 않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최초의 동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만의 도메인이 들어간 메일 주소를 갖고 싶은 욕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무료 메시지 서비스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도 한몫했다.
가령, 갑자기 그 회사가 망한다면? 시스템이 다운된다면? 수신됐거나 저장했던 메일들이 사고로 지워진다면? 등의 생각을 하면서 무료 메일 서비스에 의존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스팸이나 정크를 제외한 모든 메시지는 아웃룩으로 수신해 POP3 계정을 통해 내 PC에 저장한 뒤, 추가적인 백업을 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 좀 지나친 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두가 필자가 받았던 메시지들을 그만큼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24일 서울 지법에서는 국내 최대의 무료 메일 서비스인 한메일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대해 2명의 사용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다음이 메일 서비스용 서버를 교체하면서 장애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사용자들의 편지함에 있던 메시지가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는 2명의 사용자들이 각각 1000만원씩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은 ‘다음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왜냐고? 무료 서비스이므로 그런 보상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물을 만한 계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사고가 있을까봐 항상 대비를 해왔던 필자이지만, 그래도 이 판결에 대해서는 그렇게 명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가입할 때는 무심코 넘어간 내용이었지만, 다시 한번 www.daum.net 사이트에 들어가서 서비스 약관을 읽어보았다. 다음의 서비스 약관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었고, 2001년 12월 26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적혀 있었다.
제9조(“Daum”의 의무)
① “Daum”은 법령과 본 약관이 금지하거나 공서양속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본 약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④ “Daum”은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 “Daum”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합니다.
이걸 보면 아마도 다음에서는 사용자의 ‘중요한’ 메시지들이 다음측의 실수로 사라진 것을 ‘중대한 과실’로 여기지 않는가 보다. 실제로 다음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메시지의 백업 의무는 회원 개인이 져야 한다’고 했다는 소식이고, 법원의 판결에서는 이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내용도 가입시의 약관에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았더니 ‘제11조(이용자의 의무)’ 난이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 내용을 백업하는 것이 사용자의 의무라고 하거나 혹은 메시지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중대한 과실’로 간주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저장하지 말라는 항목은 없었다.
처음에는 약관의 개정 날짜가 12월 26일이라고 돼있어서 내심 이번 사태에 대한 고려도 되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감에서일까 아니면 오만함의 소치일까. 과연 다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법원에서 판결이 났으니 메일 서비스 업체에서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짜로 쓰면서 무슨 책임까지…?’라고 애써 정당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공짜로 제공해 준다고 주장하는 그 서비스에는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제공과 광고에 대한 노출이라는 대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다음과 같은 업체들에 투자한 투자가들이나 금융회사들은 결코 다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작정 공짜로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투자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오늘과 같은 발전을 하게 됐다. 비록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다음은 신뢰를 잃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