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어깨, 무릎, 팔, 그리고 컴퓨터

By | 2001-08-09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른쪽 손바닥 옆쪽에서 손목으로 연결되는 부위에 반들반들하면서도 단단한 군살이 생겼다. 그와 함께 통증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군살 부위가 따끔한 정도이던 것이 요즘엔 손목 전체에 걸쳐 뻐근한 느낌을 갖게 되었고, 최근에는 손목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힘줄 전체가 아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오른쪽 손목과 팔에서만 발견되는데,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유는 충분히 알 만하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키보드는 양손으로 쓰지만 왼손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는데 비해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는 물론 커서키 조작까지 하기 때문에 오른손의 노동량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오른손은 키보드와 커서키 패드, 마우스 세 위치를 모두 옮겨다녀야 하는 까닭에 한참 바쁘게 작업할 때는 손이 모니터 앞 공간에서 붕붕 날아다닐 정도다. 일상의 대부분의 행위가 모두 오른손을 주요 도구로 사용하다보니 피로도도 높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통증은 차라리 당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한동안은 윈도우에서 설정을 바꿔서 마우스 위치를 옮긴 후에 왼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좌뇌와 우뇌의 고른 발전이 우선적인 목적이었고, 또한 오른손의 피로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였는데, 아무래도 오른손보다 숙련도가 떨어지다 보니 일의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마우스를 오른쪽으로 옮긴 이후에는 다시 그걸 왼쪽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른손의 건강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한 오늘 아침, 마우스와 마우스 패드의 위치를 오랜만에 다시 왼쪽으로 옮겼다.

한편 노트북 컴퓨터의 터치패드는 키보드 아래 한가운데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왼손이고 오른손이고 다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도저히 왼손으로는 쓸 수가 없다. 마우스보다 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까닭이다. 오른손에 미안한 일이다.

마우스. 그것은 인간공학적 고려가 필요한 컴퓨터 관련 사항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회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무가 컴퓨터를 매개체로 하여 이뤄지다 보니 컴퓨터 사용 시간이 많은 날에는 유난히 왼쪽 어깨와 뒤통수 아래의 목덜미가 뻑뻑하고, 심할 때는 꽤 결린 듯한 통증까지 느낀다.

게다가 요즘엔 그 빈도가 잦아졌다. 신문과 방송은 이런 현상을 ‘근막 통증 증후군’이라 하며 요즘 컴퓨터 전문직 종사자 4명중 3명 꼴로 이런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며칠전 통계자료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어쩔 도리없는 단순 직업병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당사자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의 건강에 무관심하다는 문제이기도 하다.

몇 년전 미국의 한 대기업에서 잠시 근무하던 시절, 그곳 회사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의자에는 조절 손잡이가 6개 정도 있었다. 조절 가능한 것은 의자 시트 높이 및 기울기, 양쪽 팔받이 높이, 등받이 각도 및 기울기 등이었다. 타지역 대학에서 인턴으로 온 대학생 하나가 자리를 지정받자마자 처음 한 말이 바로 “와~ 이 의자엔 조절 손잡이가 6개나 있네”였다.

실제로 필자가 그보다 전에 업무상 1년반 동안 주재했던 미국의 대학교 조교실 의자는 의자 높이 조절 기능밖에 없었다. 같은 미국 안에서도 학교와 돈을 버는 기업체는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 하긴 정보통신 업체들이 한참 잘 나가던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실리콘 밸리 유망 벤처기업들 가운데는 인재 유인책으로써 아예 회사 내에 마사지 센터를 열어서 무료로 어깨 마사지를 지원하는 곳도 많았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망가진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해 아내가 한동안 벤처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을 무렵 어깨 통증을 자주 호소했었다. 그 때문에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나중에 그 사무실에 가볼 기회가 생겨서 가보니 역시 원인은 업무 환경에 있었다.

의자는 높낮이만 조절할 수 있는 데다가 시트 넓이가 너무 넓어서 발을 바닥에 대기 어려웠고 엉덩이를 앞으로 가져가서 발을 아래로 뻗치면 등은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 또한 책상은 좁은데 모니터는 컸다. 똑바로 놓으면 키보드나 서류 등을 놓을 공간이 생기지 않아서 모니터를 구석쪽으로 놓고 옆으로 앉아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생긴 증세가 반년 이상 지난 요즘까지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이런 경우는 자금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벤처 기업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떵떵거리는 대기업들은 과연 컴퓨터 작업 환경이 어떤 상태에 있을까? 필자는 LG전자와 삼성전자같은 곳을 다 거쳐보긴 했지만 그게 여러 해 전이라 현재 상태는 잘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적지 않은 규모의 자금을 펀딩받아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멋진 장식으로 내부를 치장한 유명 벤처 기업들 또한 이런 컴퓨터 환경과 건강면에는 그다지 배려를 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집보다 회사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 특히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컴퓨터관련 일을 하는 독자들은 평소에 컴퓨터 사용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지금 잠시 마우스를 놓고 자신의 주위를 살펴보는게 어떨까?

지금 필자가 타이핑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의 케이블에는 조그만 딱지가 하나 붙어있다. “건강정보. 키보드 아래쪽을 보십시오. 이 태그를 제거하지 마십시오!” 이 딱지가 말하는 것과 같이 최소한 키보드 아래쪽이라도 보는 것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그리고 관리자, 경영자 여러분! 여러분의 직원들의 건강에 신경 좀 써주기 바란다. 매년 법으로 보장된 건강진단 한두 번 시켜주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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