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컴퓨터와 배터리

By | 2001-05-26

지난 주에는 본의 아니게 컬럼을 빼먹었다. 미국 출장중이었기 때문인데, 사실 해외 출장중에 원고 마감을 맞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12월 중순경에도 실리콘 밸리에 출장을 가 있었고, 모든 일과를 마친 뒤에 호텔 방에서 밤늦게 원고를 써서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었다.

원래는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원고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원고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 컴퓨터 가방을 여는 순간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전원 어댑터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대용량 배터리를 완전 충전시킨 채로 가져왔기 때문에 5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원고를 완전히 끝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다음 날 업무를 위해 배터리는 보존해 둬야만 했다.

결국 노트북용 배터리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필자의 꼼꼼하지 못함으로 인해 본 컬럼을 시작한 지 21주만에 펑크를 내고 말았다. 이러면서 원망스러웠던 점이 있다. 왜 노트북 컴퓨터는 휴대형 기기라는 이름이 붙었으면서도 배터리만 가지고는 단 몇 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몇년 전 노트북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은 바로 전원 공급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 당시 펜티엄 166MMX급의 서브 노트북을 쓰면서 2시간도 훨씬 못미치는 배터리 용량 때문에 외출시에는 반드시 여분의 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만 했고 거기에 전원 어댑터까지 동반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방의 부피가 커지는 것은 물론 무게도 함께 증가했고, 그걸 어깨에 매고 걸어다니다 보면 너무도 쉽사리 피로해지곤 했다. 이런 현상은 펜티엄 II 366MHz급의 제품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노트북과 함께 따라온 기본 배터리를 가지고는 2시간을 넘겨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용량 배터리를 따로 구입했지만 그 크기와 무게가 상당해서 장치를 해보면 거의 괴물처럼 생긴 육중한 노트북이 돼버린다. 1인치도 안되는 두께 때문에 선택한 노트북인데도 말이다.

요즘엔 펜티엄 III 850MHz급 정도의 노트북을 새로 구입하려고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지만 기본형 배터리를 장착했을 때의 사용 시간은 필자가 노트북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보다 그리 나아지진 않았다.

제품 사양에는 3∼4시간 가량 사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통상적으로는 그 제품을 3시간 넘게 사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또 그 사용 시간을 믿는다고 해도 예전보다 2배밖에 늘지 않은 값에 불과하다.

한동안 기대되던 트랜스메타의 저전력 마이크로프로세서라고 하는 크루소 칩을 사용한 제품들이 요즘 막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들도 사양상으로는 5시간 안팎의 사용 시간을 나타내거나 제품에 따라서는 그보다 조금 더 오래 쓴다고 돼있지만 별로 만족스러운 수치는 아니다.

물론 더 큰 용량의 옵션 배터리를 쓴다면 10시간이나 20시간까지도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배터리의 기술은 그대로인 채 CPU만 주물럭거려서 시간을 늘렸을 따름이다.

인텔의 모바일 펜티엄 III나 셀러론 칩에는 스피드스텝(SpeedStep)이란 방식의 전원 절약 기법이 사용되고, AMD의 애슬론이나 듀론 칩에도 그와 비슷한 파워나우(PowerNow)라는 기법을 사용된다. 이 모두가 비슷한 기술로서 CPU가 사용되지 않을 때는 클럭 주파수를 낮춘다는 단순한 원리다.

요즘 새로 발표된 칩들은 아예 CPU의 동작 전압을 낮추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새로 나온 절전형 모바일 펜티엄 III 칩 하나는 교류 전원에 연결됐을 때는 750MHz 클럭에 1.35V의 전원을 사용하지만, 배터리를 사용할 때는 500MHz 클럭에 1.1V 전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또 600MHz 버전에서는 아예 배터리 사용 시에 전원을 0.975V로 낮춰서 사용하기까지 한다. 정말 여러모로 애를 쓰는구나 싶긴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한다. 배터리는 그대로이니 말이다.

필자가 처음 노트북 컴퓨터를 목격한 것은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16년전이었다. 대충 기억나기로는 그때의 CPU는 8086에 하드 디스크는 없었고, 2MB의 기본 메모리에 화면 해상도는 640×200, 물론 단색의 백라이트도 없는 STN 방식의 액정 화면이었다.

요즘과 같이 1GHz에 가까운 클럭 주파수와 256MB 메모리, 20GB 하드 디스크, 1024×768 해상도의 TFT 풀컬러 액정 화면이 달린 노트북을 사려는 시점이 되어서 보면, 예전보다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배터리는 예외다. 고작 그때의 니켈 카드뮴 방식에서 요즘의 리튬이온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 당시에 기대하기로는 조만간 한 번 충전하면 며칠씩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이 곧 등장할 것 같았는데 현실에 있어서 정말 배터리 기술 발전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리튬이온 이외에도 니켈수소나 리튬폴리머같은 기술 방식들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연료전지 등과 같은 기술도 소개되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는 항상 같은 모습이고 사용 시에는 배터리 때문에 항상 애를 먹게 된다.

필자는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마다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캠코더, 그리고 PDA를 함께 가져가곤 한다. 이것들 모두는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한다. 그래서 각각의 충전 어댑터를 짐에다 함께 싸야 하고, 이 때문에 가방은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국내에서 이동할 때는 휴대폰 충전기까지 필요해진다. PDA 경우엔 충전 어댑터를 두고 가기도 하지만 충전 어댑터를 함께 가져가야 하는 휴대형 혹은 모바일 디지털 기기는 진정한 휴대형(Handheld)이 아니다. 그저 운반하기 쉬운 포터블(Portable), 혹은 무릎에 놓고 쓸 수 있기만 한 랩톱(Laptop)에 불과할 따름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클럭 주파수는 이제 1GHz를 넘어섰고, 몇년 후면 수십 GHz대로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뭔가 획기적인 해결 방안이 없다면, 노트북 컴퓨터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역시 그 소비 전력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 때문에 생기는 발열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만약 필요 전력을 충분한 시간 동안 공급할 수 있는 훌륭한 배터리가 없다면 노트북 컴퓨터는 별 볼일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임에 틀림없다.

현재 1GHz급 노트북에 있어서도 발열 문제때문에 출시가 자꾸만 늦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더 심증이 가는 얘기다. 정말 인텔이나 AMD에서는 수십 GHz의 클럭을 사용하는 모바일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배터리에 의존해야 하는데 현재의 주변 상황으로 볼 때 그런 배터리 기술은 나오기 힘들 것같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우린 언제쯤 정말 획기적인 배터리 기술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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