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학, 우수한 인재

By | 2001-01-15

어느 나라에서나 이른바 명문대학이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개의 대학을 두고 명문이라고 말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해마다 달라지고, 또 각 신문이 다루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4~5개 정도의 대학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전에 명문의 카테고리는 우리가 대입 시험을 보거나 취직을 할 때에만 거론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온 국민이 태어나서 늙어죽을 때까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지치지도 않고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일상 생활의 주요 대화 주제가 돼버렸다.

애기 돌잔치에서 할머니가 말하길 “우리 손주 서울대 들어가는 것 보고 죽어야 할텐데…”, 혹은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순례를 시키면서 그 어머니가 “다 너희 잘 되라고 시키는 일이야. 다른 애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나중에 서울대 들어갈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중고생 때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고민을 하고, 대학 때에는 자신의 대학이 속한 카테고리 때문에 우쭐하기도 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하며 아예 대학문을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기도 한다. 특히 졸업 후에 취직을 하면서는 그 학벌 때문에 자신이 갖게 되는 선택의 한계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고, 애인을 사귀고 결혼할 때에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된다.

이른바 명문을 나온 사람의 결혼식에서는 거의 주례 선생의 축사에는 “명문 xx 대학을 나온 우수한 인재로서…”라는 찬사가 빠지지 않아서이다. 이런 식의 현상은 늙어죽을 때까지 학벌의 족쇄를 풀어주지 않는다. 장례식장 앞에 서있는 조화의 리본에 써있을 “謹弔 – ○○ 大學 同門會”라는 식의 글까지도 따라다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명문대학이니, 뭐니 하면서 학교를 가리는 것은 좀 우스운 일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명문’이라고 불릴 만한 대학이 있었는가? 어떤 대학은 얼마 전에 업계 최고 수준의 재벌그룹의 아래에 편입되면서부터는 갑자기 스스로를 ‘예비 명문’이라고 치켜올리기 시작했고 학생들도 어깨에 힘을 주는 경향이 생겼다.

모두 재벌그룹의 강력한 자금지원에 힘입어 필자가 아는 바로는 그 밖의 몇 개 대학이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대학은 지난 몇 년 동안 재벌 그룹의 도움 아래 급격한 학교 순위의 향상을 보이다가 재벌의 몰락과 함께 침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돈만 잔뜩 집어넣으면 ‘명문’ 혹은 좋은 대학으로 단기간에 변신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기업체의 논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아카데믹한 의미는 될 수가 없다.

‘좋은 대학’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학교를 말하는 것일까. 필자의 논리는 이렇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좋은 학교의 판단은 그 학교가 어떻게 학생들을 사회의 일꾼으로 만들 수 있는지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라면 그 졸업생들 역시 최소한 졸업 후에도 그 우월함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나랏돈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학교는 좋은 대학인가? 반면에 그리 신통치 않은 시험 성적을 얻은 학생들이 입학한 그저그런 학교지만 그들이 졸업 후에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게 된다면, 이 학교는 여전히 별 볼일 없는 학교인가? 어떤 것이 진정한 대학의 모습이고 역할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수많은 벤처회사가 전국에 걸쳐 생겨나면서 볼 수 있었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이러한 학벌주의가 다소나마 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의 모습이었다. 비록 아직은 특정 대학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게 사실이지만 이런 저런 유망한 벤처회사의 사장내지는 그 공동 창업자들의 약력은 상당히 다양한 학교 출신의 인재들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벤처회사들은 내부적으로 엔지니어들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학교 출신들을 뽑게 되었고 그 가운데 우수한 실력자들도 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벤처 업체를 평가할 때 그 사장의 경력과 함께 출신 학교를 우선 보는 경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벤처회사들이 더욱 발전하고 약진하게 되면서 사회의 인식도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것임은 틀림없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좋은 인재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학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좋은 직장’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기업체에 들어가면서 우수한 인재라고 판명이 되는 것인가? 명함에 당당히 삼성이나 LG, 혹은 IBM 등과 같은 이름과 로고가 선명하게 박히면 그는 인재로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10여년 간 그런 국내외의 직장에서 일해본 경험으로 볼 때 그게 어떤 그 사람의 인재성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별 볼 일 없으면서도 그런 찬란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 유명한 회사들은 정말 좋은 회사일까?

직장의 의미에서도 좋은 대학의 의미와 비슷한 면을 보게 된다. 진정으로 좋은 직장이라는 곳은 단지 대학에서 양성한 쓸만한 인재들을 갖다 쓰기만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에서 몇 년 뼈빠지게 일하다 보니 잔머리 굴리는 것은 늘고, 몸으로 떼우는 일에는 능통해졌는데 나중에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더 이상 그 회사에서 필요한 수준의 사람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문득 겁에 질리는 일은 없는가?

몸으로 떼우는 일이 대기업보다 더 많은 벤처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성공한 벤처가 규모를 늘리고 번듯한 형체를 갖게 되면서 초창기 멤버들이 자의건 타의건 그 둥지를 벗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벤처로서의 용도는 이미 소진돼버려서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또 예전의 모습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어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이 현상이다. 그 업체들은 회사를 키우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재를 키우는 것에는 실패를 한 경우이다.

인재는 필요에 따라서 외부에서 조달해 쓰면 된다고? 그런 기업들은 아마도 충성스런 사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가서는 인재계발이라는, 사회와 사원들에 대한 책임을 내팽개치는 행위를 한 것이리라. 필자가 처음 사회 생활을 한 대기업체의 팀장이 첫 회식 때 해준 얘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 회사에 있어서 사원들은 껌이다. 껌을 사서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벽에 던져놓는다. 용케 붙어있는 놈들은 그냥 그렇게 놔두고 못 견딘 나머지 떨어지는 놈들은 쓸어다 버린다. 너희들도 단물이 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자기계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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