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맛살 백양메리야스

By | 2000-11-04

TV를 전혀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은 거의 보는 일이 없다. 특히 허수아비 비슷한 얼뜨기 가수들이 나와 국민체조 같은 춤을 추며, 입에 달린 헤드마이크는 먹통인 것이 뻔한데도 열심히 입을 벙긋거리는 바보 같은 내용을 어쩌다가 대하게 되면 심한 구역질을 느끼는 체질이라 더욱 채널 선택에 조심한다.

드라마의 경우엔 가요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별로 보질 않는다. 덕분에 우리 아들내미도 TV를 별로 가까이 하지 않고, 온 식구가 건전한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필자에게 어느날 갑자기 O양과 B양, 즉 오현경이니 백지영이니 하는 이름이 다가왔을 때의 반응은 “그게 누구지?”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필자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인지라 셀프비디오니 몰카비디오니 하는 것은 별로 호기심을 자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의 필자의 반응은 역시 “그 문제의 동화상 가지고 있니?”이었다. 그러니 그 두 여인들이 바보상자 안에서 연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아왔던 사람들은 필자보다 훨씬 더 그 동화상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온갖 여성잡지와 주간지, 스포츠신문, 그리고 TV 프로그램을 가득 메운 연예인 이야기들. 거기엔 그들의 루머와 사는 얘기와 광고와 고백과 ‘나 잘났다, 이렇게 산다’ 류의 내용들이 가득 차 있다. 쓰레기라면 쓰레기이고 그저 단순 흥미거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오늘도 존재하고 있고 내일 또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 다른 버전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항상 말했듯이 ‘공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자신들의 인기 확보 및 유지 수단으로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고 또 그 초점 속에 들어가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예쁘고 좋은 면만 봐주고 안 좋은 쪽은 보지 말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올바른 주장이라고 봐줘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대중은 이른바 ‘공인’의 보고싶은 쪽만 볼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대중의 열망이 얼마 전에는 오양, 그리고 이번에는 백양의 섹스비디오에 대한 관심으로 쏠렸다. 그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일인데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에서는 그게 뉴스의 모든 것인 양 과대보도를 해댔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백양 비디오를 다운로드 했거나 컴퓨터에서 본 인터넷 사용자들을 모두 관음증 환자로 몰아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TV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 얘기로 가득찬 토크쇼를 방영하는 것은 대중의 관음증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게 옷 입은 가수의 행동이건, 옷 벗은 가수의 행동이건 무슨 차이란 말인가? 솔직히 정상적인 것보다 비정상적인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미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사건이 자주 있었는데 그 가운데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 비디오가 인터넷에 등장한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ABC, NBC, CBS 등과 같은 메이저 TV의 뉴스거리는 되지 않았다.

단지 그 나라 토크쇼의 유머나 연예 관련 프로그램에서나 거론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8시 혹은 9시 종합뉴스에서까지도 주요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사건이 됐다. 이른바 대중의 ‘관음증’을 이용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다.

얼마나 제대로 된 뉴스거리가 없으면 그렇게 했을까하는 측은함도 느껴질 정도이다. 원래 ‘몰카’라는 것을 사회에 보급한 것은 이경규란 개그맨이 진행한 어떤 쇼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하긴 그것도 일본 프로그램을 베낀 것이지만 말이다.

거기에다가 제대로 분석할 능력도 없으면서 온갖 루머에 의존해 기사를 만들기까지 했다. 미국에 백지영 비디오를 약 20불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사이트가 생겼는데 자진폐쇄 될 때까지 단 며칠 만에 20여만 명이 접속해 그 사이트 운영자는 40억원 대의 수입을 챙겼다는 것도 그렇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게 사실인지 확인했는지 알 수가 없다.

20여만 명이 며칠 사이에 60 메가 바이트가 넘는 파일을 접속하려면 그 사이트 서버와 회선은 아주 강력한 것이었어야 할텐데, 그에 대한 계산은 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또 원본에 복제방지 락이 걸린 것을 과기대생 하나가 풀었다는 소문도 마치 확인된 사실처럼 거론하고 있다. 컴퓨터 원리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코웃음 칠만한 루어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우리의 사법기관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듯 하다. 미국에서 문제의 그 서버를 운영한 표씨 성을 가진 사람을 추적한다는 둥, 인터폴에 공조 요청을 한다는 둥, 불법 음란물 유통을 강력 단속하겠다는 둥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파멜라 앤더슨이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그 비디오를 버젓이 IEG라는 성인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는데, 이 머나먼 한국 땅의 어떤 여가수가 과연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의 성인 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여배우들의 비밀스런 사진과 동화상을 보여준다는 유료 사이트가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과연 우리 검찰의 시도는 가능한 일일까?

한편으론 그런 움직임이 소득은 있는 듯하다. 방년 17세의 무직 소년이 자신의 웹사이트에 백지영 동화상을 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그 동화상으로 돈을 벌려 했다면 죄가 될 수 있어도, 그냥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놨거나 링크만 해 놓았다고 해서 구속 사유가 된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그 당사자에 있어 이른바 시범케이스 치고는 너무도 혹독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번 백양 사건도, 그리고 예전의 오양 사건도 이처럼 떠들썩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들이 이렇게 사회를 뒤집어 놓을 만큼 중요한 인물들일까? 그리고 그 사건들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다. 그들이 그 비디오를 찍었을 때 모두 성인이었고 결혼한 몸도 아니었으며 상대방 역시 미혼이었고 관계 역시 서로 좋아서 한 것이다.

전혀 잘못한 것도 부끄러울 일도 없다. 이것이 비디오로 찍혔고 동화상 파일로 제작되었으며 또 인터넷을 통해 유포됐을 뿐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사건을 빗대어 ‘문제의 오양 사진’과 ‘백양의 과거’라는 제목의 메일이 보내지기도 했었다.

이들은 사실 오양수산이라는 업체에서 생산된 게맛살 사진이었고, ‘백양의 과거’라는 제목의 메일 내용은 과거 백양 메리야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BYC라는 회사의 연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 웃자고 보내고 받는 것들이다. 이제는 이젠 좀 다른 재미거리를 찾고만 싶다. 오양 안녕, 그리고 백양도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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