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의 벤처 주점

By | 2000-10-27

한국통신과 19억 4000만원. 이건 뭘까? 한국통신에서 어떤 기술에 그 돈을 투자를 했다는 말인가? 글쎄…. 투자라면 투자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술집에 투자하는 것도 수익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액수는 이번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국통신이 제출한 자료에서 나온 숫자이다. 지난 16개월간 법인카드 지출액이 101억 1000만원. 그 중에서 19억 4000만원이 술집에 투자한 돈이다.

이 회사에서 설명한 내용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필요불가결한 접대’를 위해 지출한 돈이라고 한다.

조금 이상하긴 하다. 한국통신은 언제나 다른 업체에 대해 계약서 상에서 ‘갑’의 위치에 있게 되는데, 왜 ‘을’에게 술을 사줘야 하는 일이 그렇게 많았을까? 어차피 남아도는 돈을 이용해 춥고 배고픈 ‘을’에게 선심을 썼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돈이 과연 외부업체와의 접대를 위해 대부분 쓰였다고 믿어야 할까? 내부적으로 사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미아리 텍사스’까지 가서 법인카드를 썼을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내가 낸 전화요금이 그 안에 아주 조금이나마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알고 싶은데, 더 깊숙이 알아낼 방법이 없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아 졌지만, 어느 정도 폼 나는 벤처를 차리기만 하면 투자가 보장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필자의 회사가 자리한 테헤란로의 많은 벤처회사들이 그런 돈으로 번듯한 사무실을 차리고 목에 힘주고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스닥에 상장만 하면 회사 직원 모두가 그야말로 떼부자가 된다는 환상을 가지고 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망둥이가 뛰면 어디 빗자루도 뛴다는 속담처럼 테헤란로의 단란주점과 룸살롱도 함께 번창했다.

벤처가 살면 다른 3차 산업의 발전도 함께 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이런 소문내지는 유머가 사람들 입에서 돌았다. 테헤란로에 돈이 몰려들면서 “오히려 술집 물이 안 좋아졌다”고.

왜냐하면 벤처업체의 창궐과 함께 돈을 번 젊은 CEO나 중역진들 가운데 상당수가 킹카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집주고 돈주고 딴살림을 차렸고, 그 결과로 술집 아가씨들의 수준이 하향 조정됐다는 우스개였다(여성 비하라고 욕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런 얘기들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뿐이니).

그런데 한동안 그런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 들어 앉아 있다보니 워낙 심심해져서 남자들에게 부탁을 해 교외에 까페 같은 것을 차리게 됐고 종국에는 아예 본업인 룸살롱을 세우는 현상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또한 영민한 두뇌를 지닌 젊은 CEO들의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어차피 사흘이 멀다하고 술접대를 해야하고, 그 비싼 돈을 남에게 퍼주느니 자신이 투자한 ‘벤처 주점’에서 접대를 하면 그 접대비의 상당 부분을 회수할 수 있지 않겠느냐 라는 것이다.

자신의 접대 노력이 곧 자신의 수익으로 들어오면 더욱 확실한 접대로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그 정성에 감동한 상대방은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는 식의 이론적인 바탕도 탄탄하다.

한국통신에서 그처럼 큰 돈을 접대비로 써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간곡한 사연이 있다면 이 벤처 룸살롱의 교훈을 눈여겨 보는게 어떨까? 가령 ‘한통 비즈니스 클럽’같은 이름의 전용 술집을 만들어 접대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접대비의 상당 부분은 회사의 이익금으로 환수되고, 그 술집에서 돈을 쓰는 데에도 따로 법인카드로 계산하지 않고 신분증으로만 결재를 하는 편리함도 얻을 수 있다. 물론 마담과 여종업원도 한통 또는 그 계열사의 정식 직원이 돼 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도 제공받아 한국 건전 접대 문화의 새 장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참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공기업은 벤처기업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웃고 즐기며 잠깐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대기업이 되어도 벤처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술접대 문화이다. 술을 못 먹는 친구도 벤처회사를 차리면 대기업 술상무 역할까지 다 해야한다.

그 회사의 기술력만큼 접대 테크닉도 만만치 않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약자의 입장에 있으니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말한다.

그 뿐인가? 기자들도 그리 녹녹치 않은 존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갑’보다도 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존재이므로 접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술력과 함께 음주와 가무와 잡기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길러야함은 어쩔 수 진실이다.

요즘에도 기술력 하나만 믿고 사업을 시작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순수파들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볼 수 있는 걸까. 순수라기보다 무지한 필자는 그래서 벤처를 못하고 있다. 아마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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