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Time in London

By | 2019-01-31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문득 저 쌓인 눈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게 꼭 10년 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2006 년에 한국에서 캐나다 영주권 신청을 하고 2년 넘게 태국 치앙마이에서 살다가  이민 가방 몇 개를 들고 캐나다 땅을 밟았던 것이 2009년 1월 말… 그 해 겨울에는 정말 눈이 매일같이 펑펑 쏟아졌었다. 이곳 런던에는 집도 절도 아는 사람도 없어서 토론토 인근에서 묵으면서 차를 렌트해서 첫 일주일 동안은 아침에 401 고속도로를 타고 2 시간 걸려서 런던에 와서 아파트 렌트 찾으러 다니고 가구 주문하고 교육청과 학교 등록하는 등 정착 과정을 진행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또 눈발을 헤치고 해밀턴으로 돌아갔던 그 날들. 꼭 10년 전이었다.

시차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로 눈길에 장거리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보니 정말 심하게 졸음운전을,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런던이라는 도시에 도착해서는 그만 질려버렸다. 눈을 헤치고 달려왔건만… 도시의 형태가, 주택가 풍경이, 사람들 사는 모습이 보이리라고 생각했지만 401 고속도로에서 189 번 출구를 타고 나와서 Highbury 길을 한참을 달려가도 주위 풍경은 온통 하얀 색 뿐이었다. 갑자기 등이 서늘해지면서 아뿔사, 지역을 잘못 선택했구나 싶었더랬다. 이런 척박한 곳으로 오게 될줄이야…  Highbury 에서 Fanshawe Park Road 를 만나 좌회전해서 가면서 Masonville Mall 이라는 쇼핑센터를 찾으려는데, 온통 하얀색깔만 보였다. 간신히 길 이름을 보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이게 다 눈이 펑펑 내리고 또 쌓여 있어서 그런것이었구나. 내리는 눈발을 통해 보이는 것들은 빈땅이건 집이건 모두 눈에 뎦여서 하얗기만 했고, Mall 에서는 중장비를 이용해서 주차장의 눈을 도로쪽 가까운 곳에 산처럼, 성벽처럼 쌓아놓았기 때문에 길에서는 제대로 그 안쪽 건물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긴장이 좀 풀리는가 싶었는데 메이슨빌 몰의 플라자 건물로 들어가서 푸드코트를 찾아갔다가 또 다시 놀래버렸다. 그 넓은 푸드 코트에서, 비록 대충 둘러보기만 했지만,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우리 가족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여기가 이런 동네인 줄은 또 예상하지 못했는데… 물론 그 당시에도 이민자들은 적지 않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었다. 10년 전에는 런던에 중국 이민자, 중동 이민자와 난민, 인디아 이민자들이 지금처럼 어디 가나 보일 정도로 많지는 않았었다. 지금은 3개씩이나 있던 대형 중국마트가 그 당시엔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한국 마트가 3 개가 있을 시절이었다. 10년전 그날 메이슨빌 몰 플라자의 풍경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내가 정말 캐나다와 왔구나.. 이곳에서 살게되는구나.. 이렇게 사방에 하얀 눈이 쌓여있고 하얀 눈이 계속 내리고 있고 백인들이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이곳에서… 그 전에도 미국에서 몇년을 살았었지만 시애틀과 실리콘밸리 지역이었기 때문에 흰눈도 없었고 백인 인구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게 10년 전의 일이다. 이제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이민 경력도 쌓였고 이런 저런 비즈니스도 해봤고 애들도 다들 커서 큰 애는 대학까지 졸업한 상황이지만 아직도 안정되었다고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고 계속 좌충우돌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저께 런던 동쪽 끝에 있는 Argyle Mall 에 있는 매장에 일하러 갔다가 문득 보게된, 주차장에 내린 눈을 한군데에 쌓아서 성곽처럼 만든 광경을 보고 이렇게 처음 런던에 왔을 때의 생각이 나버렸다. 그리고 캐나다에 산지 꼭 10년이 되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가슴으로 다가왔다. 10년 동안 뭐하고 살았길래 아직 이 모습일까… 지금부터 또 다른 10년은 어떻게 살게 될것이고 또 10년 후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춥다. 정말 무척 춥다. 몇년전 영하 25도를 기록했을 때 런던 살면서 최저 기온이구나 싶었는데 어제 밤에는 영하 26도까지 내려갔으니 신기록이다. 낮기온은 해가 쨍쨍하고 하늘은 사진처럼 파란데도 영하 18도. 이것도 낮최고 기온 중에서 지난 10년동안의 가장 낮은 기록이겠다. 겨울은 춥고 눈 내리고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그러다가 다시 겨울이 되고.. 이렇게 해를 보내면서 또 그냥저냥 살아가게 되겠다 싶다. 이제 좀 변화를 추구해야할텐데.. 언제나 기회가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