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적응일까 귀차니즘일까

By | 2017-10-14

20 여년전에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맥도날드 건물 옆에 차들이 줄을 쭉 서서 한대, 한대 전진하고 있는겁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Drive Through) 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의 뜻으로 미루어보고, 또 줄을 선 차 안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잠깐 보고서 바로 알아차렸으니까요.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미국사람들은 정말 게으르구나’ 였지요. 그냥 차를 세우고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주문하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야외 극장 생각도 났습니다. 영어를 모르던 시절에 본 영화라서 그게 Drive Through Theater 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히 몰랐고 그냥 미국에선 차에 탄 채로 영화를 보는 문화도 있구나 싶었지요. 그래도 나중에는 영화에서 그걸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상하게 여기진 않게 되었습니다. 가령 “American Beauty” 에서 잘나거던 직장에서 잘린 케빈 스페이시가 패스트푸드 식당의 드라이브 스루 창구에서 일하면서 우연히 외도를 하고 있던 아내 아네트 베닝을 만난 그  장면 말이죠. 그런데 그 아내도 리얼터였네요…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시도해 볼만한 용기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걸 이용해 본 것은, 나중에 몇년 지나서 두번째 미국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결론은 실망스러웠지요. 조그만 스피커로 들려나오는 점원의 질문을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몇번씩 되물어야 했고 뒤에 다른 차들이 다가와서 줄을 서면 그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더 당황스러워질 따름이었습니다. 편리하라고 만들어 놓은 Drive Through 방식이 왜 이리 힘들고 맘이 불편한거냐 이것이죠. 그러면서 다시 이건 워낙 자동차 문화가 번성하다 보니 차에서 내리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게 되이서 이런게 생겼나 보다라고 간주해 버렸습니다.

이제 캐나다에서 생활하기 시작한지 8 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2년씩 파견 근무로 미국에 나가 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자영업과 아이들 케어와 살림살이로 인해 훨씬 더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이브 스루가 너무 밀접하게 생활에 다가와 있는걸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되더군요. 요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안에서 먹을게 아니라면 맥도날드건 팀호튼즈건 기본적으로 항상 드라이브 스루 창구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줄이 너무 길다 싶으면 그냥 차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가긴 하지요.

그러고보니 은행에 입금을 할 때에도 액수가 꽤 크거나 지폐 숫자가 꽤 많은 경우가 아니면 그냥 드라이브 스루 뱅킹을 쓰게 되었네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나 또 일 때문에 다니는 길의 TB Bank 지점 가운데 어디가 드라이브 스루가 있고 없고를 다 알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는 맥도날드와 TD Bank 를 Drive Through 로 이용한 다음에 주유소에서 세차를 하는 것도 터널식 자동 세차를 이용했네요. 예전엔 코인 세차장에 가서 동전을 넣고 직접 물을 뿌려댔지만 요즘엔 그것도 피곤해져서 이젠 자동 세차 신세를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이가 들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귀차니즘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면서 더 캐네디언 라이프 스타일을 하게 되는걸까요. 어쨌든 그냥 편하게 느끼는 쪽으로 살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내 자신의 문화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