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는 쉽지 않다

By | 2017-08-10

지난 일요일, 아내는 일찍부터 일하러 나가고 저는 일부러 나가는 시간을 점심 직후로 정해놨습니다. 둘째아이 점심을 준비해주고 나가려는 것이었지요. 그냥 항상 하던대로 “점심은 뭘 먹을까?”라고 물었는데 이아이의 대답은 “라면 빼고 다 괜찮아요” 였습니다. “왜? 넌 원래 라면 아주 좋아하잖아?” 녀석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지금도 라면을 먹고는 싶지만… 사흘 전에 점심을 라면 먹었고, 이틀전에는 미술 레슨 하는 곳에서 저녁때 라면 먹었고, 어제는 엄마 아빠 다 안 계셔서 오빠가 라면 끓여줘서… 라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는데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긴 예전에는 “라면 아니면 햄버거나 사 먹자” 라고도 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놈이 그놈이지요. 요리 실력도 없는데 집 냉장고에는 마땅한 재료도 없어서 좀 난감했지만 아무튼 라면도 햄버거도 아닌것으로 점심을 해결해 줬습니다. 지난 주중에는 음악 레슨과 태권도 레슨이 저녁 시간에 연속으로 있었는데 두 개 모두 못 보냈습니다. 엄마는 고객과 갑자기 상담이 길어져서, 저는 가장 멀리 있는 매장에서 문제 해결하느라고 도저히 시간 맞춰 집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바로 완화할 수 있는 상황이 또 아닙니다. 현재의 가정 경제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이렇게 일을 해야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시간까지는 잠깐씩 일을 봅니다. 밤에는 또 매장들이 문을 닫은 뒤에 결산하고 멤버쉽 처리하고 은행관련 일도 보고 각종 서류 처리도 해야 합니다. 낮에는 구로 매장들 돌아다니면서 갖가지 고장과 직원들 문제와 상품들 관련 일도 하고 등등… 아내는 아내대로 쇼잉과 상담과 문서작업 등이 끝이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식사는 제때에 먹지만 아내는 어떤 날은 아침 점심을 다 거른 채 저녁때 돌아와서 간신히 식사를 하는 적도 있었지요.

캐나다에 이주해서 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말씀하시는 “저녁 있는 삶을 갖고 싶어서”, 혹은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아서” 같은 말은 그분들에게만 해당되고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나 봅니다. 저희 말고도 다른 비즈니스 하는 분들 보면 참 여유없이 힘들어 하는 분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데 이런 결과로 돈을 많이 벌게 되느냐… 또 그게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가감을 해 보면 빠듯합니다. 빚은 계속 갚아 나가야 하는데, 생활규모를 엄청 줄여서 절약하며 살면 쪼~금 도움을 되겠지만, 비즈니스에서는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게 흔히 몇만불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새발의 피입니다. 그래서 그냥 샐러리 받고 사는 분들과 비교할 순 없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스테레스는 계속 쌓여갈 뿐입니다. 노후 보장은 전혀 남의 나라 이야기지요.

그런 생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에 쌓아놓은 재산이 충분하다” 또는 “좋은 급여와 규칙적인 업무와 충분한 휴가가 보장되면서 고용 안정성이 높은 직업”을 갖는 것인데 그게 쉽진 않겠죠? 나이가 지긋하게 이민 온 분들 가운데는 한국에 충분한 재산, 보통은 부동산을 가진 경우가 많더군요.  혹은 수십년전에 이민 오신 분들 가운데 캐나다에서 열심히 일해서 재산 형성을 하신 분들도 적지 않게 보입니다. 하지만 저희를 비롯한 Struggle 하는 적지 않은 기존 이민 1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전에 네이버에서 캐나다 이민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복지 국가(!)” 캐나다에 대한 장미빛 얘기가 넘쳐납니다. 대부분 이민서비스 업체, 그리고 “~카더라” 얘기를 하면서 캐나다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들 블로그 내용이었습니다.
“65세 이상 늙으면 무조건 돈 많이 준대요”
“애 낳으면 18세까지 돈준대요”
“병원비도 거의 모든게 무료래요”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이래요”
“나라가 부자라서 실업수당도 많이 나와서 6개월 일하고 6개월 놀고 한대요..”
“싱글맘, 싱글대디 지원도 빵빵해서 그때문에 이혼율 높대요.”
“캐나다에서는 노인들에게는 연금을 주는데 부부가 한달에 4천불씩 받는다고 들었어요. 복지가 너무 좋아서 더 캐나다에 가고 싶어요”…
“캐나다에 잠깐 방문했을 때 공원에서 대낮에 뜀박질하는 사람을 보니 그 여유가 부러웠어요..”

캐나다에서 8년을 살아 온 저희가 그런 얘기에 대해 감흥이 없는 것을 보면 저희가 캐나다에서 사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위에서 대낮에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 사람이 이때야 간신히 여유가 생기는가 보다”라고 대답하겠지요. 겉으로는 여유있어 보일지 몰라도 그들 나름대로는 바쁜 시간 쪼개서 운동은 꼭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밤늦게 자정이 가까워와도 낮에 시간 없는 사람들이 짐에서 운동하고 나서 집에 가는 걸 보면 참 힘들게 사는구나 느껴집니다. 투잡 쓰리잡을 뛰는 사람들도 적지 않구요. 학생 시절에 캐나다 에 오면 그냥 자기 몸 하나 간수하면 되고 체력으로 버티고 미래까지 보지 않아도 되니까 즐겁기만 할 수 있으나 가족이 생기고 노후 준비도 신경쓰고 책임도 생기게 되면서는 이곳의 삶이 그리 만만치만도 않을겁니다.

일단 “먹고 살기”라는 표현을 하게 되면 그건 그 사람의 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요즘 “웰빙” 이니 “힐링” 이나 하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은데 그건 이미 “먹고 살기”를 고민할 수준을 넘어선 상태에서 나올만한 표현이 아닐까요. 돈도 많지 않고 나이도 젊지 않은데 실력마저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에는 캐나다에 왔을 때 생존을 위해 즉 “먹고 살기”를 위해 몸부림을 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게 될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제가 해드릴 말은 없지요. 그저 한국이건 캐나다건 어디서건 비빌 구석이 없이는 “먹고 살기는 녹녹치 않다”라고 할 수 밖에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캐나다에선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