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이야기

By | 2013-01-29

작년 여름방학은 당시 10학년이던 아들이 처음으로 정식 출근을 한 때입니다. 방학동안 초등학생 및 유치원, 데이케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섬머 캠프가 여러 공립학교들에서 진행되는데 그 중의 한 곳에서 Counselor 라는 직책으로 진행을 맡은 것입니다. 이게 런던 시청에서 주관하고 선발하고 교육시키는 것이라 일종의 런던 시청 소속 임시직 공무원인 셈인데 그래서인지 원래 온타리오 주에서 학생 부업의 최저임금은 9.60불인데 비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성인 최저임금인 10.25불을 받았습니다. 급여는 은행으로 직접 이체를 시켜주기 때문에 아들내미도 난생 처음 자기 이름으로 은행에 Checking Account 도 만들었고 Debit Card 도 발급받았습니다. 인터넷뱅킹으로 자기가 번 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신기해 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지난 여름 어느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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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가을에는 2개의 코스를 맡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대상의 미술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초등학생대상의 GLEE 클럽 (노래와 춤)이었죠. 방학때의 것들은 주중 매일 있는 과정이어서 수입이 괜찮았는데 이것들은 일주일에 한번뿐이라서 그리 많은 수입창출은 되지 못했지만 아들은 즐거워합니다. 배우러 온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착하다고요. 이번 겨울 동안에는 다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맡아서 매주 한번씩 수업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이미 오는 여름 방학 때의 프로그램도 미리 얘기가 되고 있다더군요. 이러다 혹시 유치원 교사 혹은 초등학교 교사로 나가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들내미가 계획하고 있는 진로는 아니지만 말이죠.

이제 11학년이 되어서 슬슬 어른 되는 연습을 하는 아들을 보는 저와 아내의 마음은 뿌듯합니다. 아이가 이제 조금씩 독립과 자립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올해는 운전면허까지 따서 제대로 된 신분증도 만들게 되면 더 그러하겠죠.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시키면 그 다음은 자신이 알아서 갈 길입니다. 대학을 가건 취직을 하건, 아니면 또 다른 상황이 되던간에 말이죠. 대학교 다니는 것까지 따라다니며 뒷바라지 하고 싶은 맘은 별로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어떻게든지 완전한 독립을 시키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번에 시작한 부업이 그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실 이 Job 을 얻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달에 걸쳐서 LIT (Leader In Training) 프로그램 3 단계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수해서 High Five 자격증을 따야했고(사실 햇수로는 꼬박 3년..), 그 Job에 관련된 Volunteer 일을 총 60시간 수행해야 이런 종류의 Job 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더니 80명을 뽑으면서 200명을 1차 선발했고 그 속에 서로 경쟁해서 얻은 일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대학생들도 많아서 과연 자신이 뽑힐수나 있을까싶어 처음엔 약간 좌절했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합격이 된 뒤에도 경찰서에서 신원조회 리포트를 발급받아 제출하고 그 다음에 CPR 을 포함한 Standard First Aid 프로그램을 듣고 평가시험을 패스해야 최종적으로 Job 이 주어집니다. 방학 2달 동안 하는 일 가지고 참 많은 조건들이 들어있구나하는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종류의 일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예전과는 달리 그냥 아무나 지원해서 그 자리에 들어가 일하고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약간의 경외감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첫번째 일자리도 미술, 음악 같은 예능으로 한걸 보면 아들내미는 역시 다른 것보다 예능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수학, 과학, 체육은 완전 젬병이거든요. 물론 수학과 과학은 그냥 따라가기 해서 90점 정도는 맞아오지만 실력을 테스트해보면 도무지 이과 수학은 감당 못하는 머리 구조인 것 같습니다. 체육은 그저 C 학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체육은 미리 들어놔서 11 학년과 12 학년 시간표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다른 한국 아이들은 의대 간다는 (부모가 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수학 과학을 각각 3 개씩 들어야 한답니다. 이른바 Six-Pack 이라고 부르더군요. 저희 아이는 그것에 질색합니다. 수학, 과학은 한 과목만 들어도 힘든데… 라면서요.

아들은 어릴 때 좋아했던 놀이가 그림 그리기와 춤 추기였습니다. 자기 자식이 만든 것은 누구나 잘했다고 칭찬하게지만 저 또한 이 녀석이 6살 때 그린 그림을 보면서 참 잘 그린다 생각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6살 때 플라스틱 접시에 크레용으로 그린 것입니다. 우리가 양평에 집을 짓고 이사갈 것이라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꿈꾸는 집이 이것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이사가서는 꿈과 현실은 다른 것이라고 깨달았을겁니다. 그 밑의 그림은 천사와 관련 인물들을 그린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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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희 부부는 그냥 이 나이 애들은 다 이정도 그리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주변에서 들어보니 그건 아니라더군요. 그건은 사실 별로 상관없는 것이고, 그저 아들내미가 그림을 좋아해서 양평으로 이사간 뒤에 옆 마을 미술 선생님에게 보내서 그림 그리며 놀게 했습니다. 나중에 여덟살이 되었을 때의 그림들을 보면 뭔가 발전을 했다거나하는 느낌은 안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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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 아들내미가 좋아했던 노래부르기… 양평의 피아노 학원에서 발표회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 피아노만 연주하는데 저희 아들에게는 피아노와 함께 노래도 부르라고 하더군요.

나이 40 넘어 늦장가 든 제 동생 결혼식에서도 축가를 불렀습니다. 

 
뭐랄까.. 꾀꼬리같은 목소리다 싶기도 하고.. 아무튼 가수가 되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 녀석이 나이가 들면서 변성기를 지나면서 목소리가 너무 낮아져 버렸습니다.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 콰이어에서도 바리톤를 맡을 정도이니 알만 하죠. 그런데 자신의 목청 대신에 등장한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첼로입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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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요즘엔 허구한날 기타를 켜며 노래를 부르더군요. 클래식에서 팝으로의 전향..? 인가 싶었는데 학교 콰이어에서는 공연에서의 독창 파트를 맡았다더군요. 워낙에 숫기가 없어서 남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신기하다 싶었는데 어느새 이 아이가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전에는 비록 단역이지만 기성 연극인들이 공연하는 어느 연극의 오디션에 합격해서 짧게나마 출연을 한다더군요. 최근엔 학교 친구들과 아카펠라 그룹을 만들겠다고 하질 않나… 변화무쌍함에 정신 없습니다. 어릴 적의 예능 끼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전까지는 소설가를 생각하기도 하고 영화 관련에 관심을 보이면서 밴쿠버 필름 스쿨에 가고 싶다는 얘기도 하더니 요즘엔 잠잠해졌습니다. 저는 네가 진로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1년간 해외 여행을 하면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과 많은 경험을 쌓고 대학을 가면 어떻겠냐는 말도 해줬습니다. 대학에 꼭 가야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바로 진학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네가 벌어서 학비를 일부 충당하고 그 다음엔 OSAP 융자를 받고 또 장학금을 받아서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라고 얘기합니다. 이건 고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해온 말이라 그걸 거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웨스턴 대학의 경우에 졸업 성적이 95점 이상이면 1년에 1만불의 장학금을 준다고 하니 그걸 노리라고 하지요. 다른 대학을 가면 장학금이 줄어들어서 네가 융자를 받거나 벌어야하는 액수가 커지니까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내미는 모든 과목이 다 95점을 넘는데 매번 그걸 깍아먹는 과목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체육이 C 학점을 받는 바람에 크게 깍였는데 11학년이 되면서 체육은 더 이상 안 듣게 되어서 이번엔 평균 95를 넘는가 했더니 90점짜리 과목 복병이 한개 나타나서 목표 달성을 못 했습니다. 하긴 학년말 성적이 중요한 것이니까 괜찮아지겠지 생각은 합니다.
 
요즘에 아이들 교육이니 성장과정이니 등에 대한 글이 여럿 올라오기에 저도 큰 아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이 아이도 응애응애 울며 젖먹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 성인으로 진입하기 전 단계에 있고 그 뒤로 또 나이 먹어 가겠지요. 초등,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있겠고 대학에서 전공하는 것도 있겠고 사회에서 배우는 것들도 있겠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 만들어준 터전입니다. 그것은 비싼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학점만을 생각하며 애를 볶는 것도 아니고 좋은 학교, 좋은 학과를 가라고 일일이 코치하며 갈길을 정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매사에 올바르게 판단하고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해 나가게 가르치는 것,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절제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면서도 필요한 경우엔 용기를 갖고 대중 앞에 설 수 있게 가르치는 것… 그런 것들이 학교 성적이니 학과니  직업이니보다 훨씬 우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서, 아들내미가 나중에 부모를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분들이었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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