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

By | 2012-11-01

한국에서, 그 중에 서울에서 살던 때는 겨울이 온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준비를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두꺼운 옷, 두터운 이불 준비하는 것 정도였다. 미국 살 때는 서부 지역이어서 눈이 오거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일은 없었으니 그 당시에는 준비할 것들이 한국에서보다도 오히려 적었다. 태국 살던 시절엔 아무런 준비할 필요가 없었고.. 그곳에선 겨울이라고 기온이 떨어져도 낮기온 섭씨 25 정도, 밤 기온은 15도 정도였기 때문에 여전히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샌달을 입고 신고 다니면서 더 쾌적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계절이었다.

중고등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땅에 김치독을 묻을 구멍을 파는 일이 내 담당이었다. 연탄을 수백 장 주문해서 처마 밑이나 창고 안에 쌓아두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불깃에 솜을 넣어 꽤매느라고 한참동안 힘들여 일하셨고 나는 솜틀집에 가서 이불 속에 넣는 솜을 터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엔 솜이불이 가뿐한 오래털 이불로 바뀌고 연탄이 아닌 도시가스 난방으로 바뀌고 아파트 생활로 바뀌면서 겨울 준비할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에서 양평 산 속으로 집짓고 이사가 살던 시절에는 준비할 것들이 몇가지 새롭게 생겼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겨우내 벽난로를 땔 장작을 충분히 수집한 뒤에 쪼개 놓는 일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은 그린벨트 경계 바로 옆이었지만 그런 곳에서도 수시로 간벌을 했기 때문에 땅에 너저분하게 버려져있는 나무 가지나 줄기들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좀 더 좋은 나무를 편하게 구비해 놓고 싶으면 따로 전화해서 한 트럭 배달시켜도 큰돈 들지는 않았다. 양평에서 맞이한 첫 겨울은 섭씨 영하 23도까지 내려가는, 한국에서치고는 꽤 추운 경험을 했는데 그래도 눈 내린 산속 풍경은 여름 못지않게 참 아름다웠다. 아래 사진은 양평 집의 주방 창 안쪽에서 집밖을 내다보며 한여름과 한겨울의 풍경을 찍은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아름다움을 우리 식구들에게 안겨 주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나름대로 즐겁게 4년여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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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을 떠나 정착했던 태국 치앙마이에서의 겨울은 쾌적한 기후를 만끽하는 시기였다. 한국의 추석, 북미 지역의 추수감사절처럼 태국에도 그와 비슷한 명절이 있는데 그게 바로 11월에 열리는 로이크라통 축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강가에 모여서 물에는 연꽃등을 띄워 보내고, 하늘에는 불 붙인 등을 날려보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아래 사진처럼 우리 가족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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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위 사진처럼 등을 하늘로 날려보내면 아래와 같은 장관이 연출된다.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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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래도, 태국의 겨울은 여전히 녹색을 띄고 있다. 아래는 그 당시 유치원생이던 둘째아이가 학교 소풍을 간 모습이다. 이 사진을 찍고 몇달 되지 않아서 한겨울에 들어선 캐나다 런던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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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다니던 학교는 미국식 학제에 맞춰 가르치는 국제학교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 행사도 빠지지 않고 개최했다. 이곳에서도 산타클로스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루돌프 사슴코는 볼 수 없고 ‘툭툭’이라고 불리우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 택시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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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 워메 싼타 오셨네. 다시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여기는 캐나다, 오늘은 핼로윈 데이. 작은아이는 친구네 집에 가서 그 아이랑 함께 동네 집들을 돌면서 문을 두드리고 있을 터이고, 마누라는 오늘도 수업 받으러 갔고, 아들은 같은 학교 다니는 여학생네 집에 몇명이 모여 무서운 영화 함께 보기 모임을 갖고 있고, 나는 홀로 집에 남아 현관문 초인종 누를 때마다 문을 열고 캔디와 초콜릿을 자루에 넣어주고 있다. 핼로윈이 지나면서 11월로 접어들고 자연스럽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겠다. 잠시나마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에서의 추억에 젖었지만 여긴 캐나다, 겨울로 가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어제 빗속에서 뒷마당의 트렘폴린도 분해했고, 데크 위의 퍼골라 지붕도 떼어냈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도 한개 더 달았고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수도파이프의 중간밸브도 잠궜다. 두터운 이불도 꺼내서 덥기 시작했는데 아직 두꺼운 코트는 꺼내지 않고 후디만 가지고 버티고 있다. 이제 겨울 파카를 꺼낼 때가 되었다. 내년 봄에 꽃을 피울 튤립 알쁘리는 벌써 월초에 심었고, 자동차 윈드실드 워셔액도 대여섯 통이 쌓여있다. 남들이 하는 겨울 준비에서 우리가 안 하는 것들… 스노우 타이어로 갈아낀다고 하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우리 집 차들은 이제껏 발통을 갈아끼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주사 맞으라는 문서가 오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이제까지 독감 예방 주사를 한 번도 맞은 적이 없고 이번에도, 앞으로도 안 맞을 것이므로 그냥 생략… 겨울로 가는 길에 준비할 것들이 참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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