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

By | 2012-10-13

원더랜드 길가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 건너편 상가 지역에 있는 팀호튼 앞에 차를 세운 채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속에서도 여전히 햇빛이 내리쬐는 상황이 얼마동안 계속되더니 비가 그치고 하늘 저편에 쌍무지개가 모습을 보였다. 무지개만 해도 오랫만인데 쌍무지개씩이나.. 사진까지 찍을 수 있으니 이럴 때는 대박을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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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쌍무지개를 목격할 때면 항상 그게 기억난다. 바로 어린 시절에 만화책으로 보았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인데 원래는 한국 추리소설계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김래성의 소설이었단다. 김래성이라는 이름은 어릴 때 읽었던 책들 가운데 몇권의 저자로서 기억은 나는데 “황금 박쥐”외에는 기억나는게 없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은 탐정소설이 아닌 이른바 순정소설, 혹은 학생 소설이라고 해야하겠다. 그 순정소설을 순정만화로 옮긴 것이었고 그 만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은 아직도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참, 여기서 ‘순정’은 무엇이던가…? 내 아내가 학생때 많이 읽었다는 하이틴 로맨스와 같은 부류가 아닐런가 싶은데 영어사전을 보니 “a-boy-meets-a-girl story”라고 해석해놨다.

그 당시에 순정만화로 불리우는 만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그 만화를 그린 작가의 작품에서는 항상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런 모습이 인기가 있어서인지 그 시절의 여학생들이 여자 얼굴을 그릴 때면 그렇게 크고 동그란 눈을 그리곤 했다. 만화를 보기도 좋아했고 그리기도 좋아했던 나도 그런 인물화를 참 많이도 그렸다. 남자아이의 취미 치고는 상당히 특히한 편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내 오래된 공책들이 쌓여있는 속에는 그런 그림이 몇 장 남아있다. 그 만화 작가는 정말로 인기가 높았다. 만화책 단행본은 물론이고 어린이 대상 잡지들에도 아주 여러가지 제목의 만화들을 연재하곤 했다. 그 여성 만화가의 작품들을 워낙에 좋아했기 때문에 이름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엄희자.. 그의 작품들이 참 많기는 한데 쌍무지개 외에 다른 것은 도대체가 기억이 안 난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쌍무지개 말고도 이것 저것 나오긴 한다. “하얀 등대”, “네자매”, “긴다리 아저씨”, “사랑의 집” 등등… 참 많기도 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만화방에서 몇시간씩 죽치면서 만화보던 날도 많았다. 하도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님이 다른 사람 시켜서 날 찾으러 오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만화 보는 것 때문에 혼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 당시에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 말고도 어린이 대상의 잡지들에 연재되는 것들도 참 열심히 봤다. 부모님께 졸라서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을 다달이 사보기도 했다. 매달 초만 되면 매일 서점에 들러서 그달 치가 나왔는지 확인하곤 했다. 나중에 “만화 왕국”이란 잡지가 발간되어 참 열심히 보았는데 이건 순전히 만화만으로만 구성된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한참 세월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는 보물섬이라는 어린이 만화 전문 잡지를 한동안 계속 사봤다. “아기공룡 둘리”가 그때 그 잡지에 처음 등장을 했다.

어린이 잡지들에서 볼 수 있는 만화의 작가에는 항상 한국 이름이 붙어있었고 우리들은 당연히 한국인이 그린 것인줄로 알았다. 하지만 최소한 절반 정도는 일본 만화에 글자만 바꾸거나 또는 똑같은 내용으로 다시 그런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 만화 가운데에서 새소년에 연재되었던 “유리의 성”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대하 만화였다.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는지도 보지 못했다. 마리아와 이사도라라는 주인공의 끝없는 대결(?)이 벌어진 성의 이름이었는지 그 성이 있는 지역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성의 이름이 스트라트포드 성이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런던에서 가까운 도시에 Stratford 가 있다. 그 만화의 작가는 정영숙이라는 이름으로 적혀있었는데 실제 인물이 아니라 일본만화를 가져오면서 그냥 붙였던 가공된 이름이었다. 도대체 그런 류의 순정소설 앞에는 거의 항상 ‘정영숙’이라는 이름이 작가로 적혀있어서 대다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도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소년중앙에서 보았던 “베르사이유의 장미”도 그런 류의 일본 원작 만화였다. 도대체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꼬이고 또 꼬이는.. 남장여인인 주인공의 이름까지 기억난다. 오스칼. 지금 기억해 내고 보니이게 무슨 약 이름 같다. 나보다 7살 아래의 아내는 “유리 가면”이라는 일본 만화에 대해 얘기를 하지만 내 세대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마찬가지였겠지만 TV 에서 방영해주는 만화영화라고 부르는 프로그램도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비록 나중에 죄다 일본 것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마린보이”, “유성가면 피터”, “사파이어 왕자”, “철인 28호”, “꿀벌 마야의 모험”, “밀림의 왕자 레오”… 이런 제목들이 마구 기억난다. 지방에서는 TBC가 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방송국에서 보여줬던 “우주소년 아톰” 이라던가 “요괴인가” 같은 것들은 잡지책에서 그림만 볼 수 있었다. 그것때문에라도 서울 사는 아이들을 참 부러워했던 것 같다. 워낙 재방영을 많이 해서 어느 시절이 최초 방영이었는지는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 시절에 MBC 에서 방영했던 “들장미 소녀 캔디”는 거의 사회적 신드롬 수준이었다. “외로워도 슬퍼도..”로 시작되는 그 주제가는 아직도 잊지 않고 다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대학 시절에는 역시 “은하철도 999″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방영해 주어서 다른 약속을 잡기가 싫을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미래 소년 코난”을 처음 접했다. 이것의 주제가도 기억난다. “푸른 바다 저 멀리…” 몇편 보고는 너무 감동을 받았지만 직장인으로서는 그걸 제때 챙겨 볼 수가 없었고 얼마 뒤에 재방영을 할 때는 그때 처음 구입한 VCR 에 예약녹화를 설정해서 매일 퇴근해서 최종회까지 다 볼 수가 있었다.

나이가 들만큼 든 요즘에는 만화책은 전혀 안 본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린 시절처럼 구미가 땡기지 않는다. 볼 기회가 있어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보게 되진 않는게다.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대상으로서의 만화의 필요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요즘 만화책이란 것이 너무도 현실적이 되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만화라는 것이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세대와는 인연이 멀어진 것이겠다. 그런데 묘한 것이, 어린 시절 만화를 보면서 가슴 설래던 기억을 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하고 신나는 미래를 꿈꾸던 그 감정들은 기억에 선명하게 살아있다. 아들과 딸내미는 만화책이란 것을 거의 보지 않는다. TV 와 인터넷에서 보는 애니메이션만으로도 컨텐츠가 넘쳐난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을 통해 꿈과 희망을 얻고 있을까?

쌍무지개 사진을 찍고 바로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들어서며 외쳤다. “쌍무지개가 떴으니 나와서 봐라!” 아내와 아이들은 벌써 한참동안이나 구경하고 들어왔단다. 내가 본 것보다 더 크고 더 선명하게 봤단다. 무지개 얘기를 할 때는 다들 조금씩은 들뜬 목소리가 된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쥬디 갤런드의 노래가 아니더래도 무지개는 먼 곳에 대한 동경과 희망을 갖게 해주곤 했는데, 지금처럼 세계를 여행하기도 쉽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집안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고 지금 나처럼 아예 다른 세상에 와서 살고 있는 시절에는 그런 감정은 갖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무지개를 보면서 갖게되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비슷하게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지 못하는 것이라 더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끔씩은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보고 기억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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