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이야기

By | 2011-05-23

2008년 12월. 캐나다에 이민신청을 한 뒤에 태국으로 가서 2년을 지낸 우리 가족이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한국에 한달 정도 머무를 필요가 생겨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인천 집에서 한달 동안 지낼테니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뜻밖에도 동생 목소리가 안 좋았다.

“지금 여기 상황이 안 좋은데…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어.”

그당시 70 세를 막 넘으신 어머니가 여러 해 전에 파킨슨씨 질환을 앓고 계시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계신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로 인한 몸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것인가? 그걸 물었더니 동생의 대답이 궁색했다. 뭔지 확실히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식구 4명이 묵을 곳을 달리 찾을 수도 없고해서 그냥 강행하기로 했고 동생도 일단은 와서 보라는 대답을 했다.

오랫만에 뵙는 어머니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물론 예전부터 앓고 계신 협심증, 파킨슨, 일명 홧병 등 때문에 몸이 불편하신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나빠져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처음 만날 때, 그리고 낮에는 괜찮으셨다. 밤이 되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나는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의 의미를 알아 차렸다.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할 때 어머니가 옆에 앉은 내 귀에 대고 조그맣게 얘기하신다.

“어멈 옆에 앉은 사람은 누구냐? 처음 보는 사람이구나.”

맞은편 아내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빈 의자만 있을 뿐이었다. 어떤 때는 또 문간방을 가리키면서,

“저 안에 왠 사람들이 잔뜩 와서 득실거리고 있냐?”

라고 하시고, 이틀에 한번 오는 노인 요양 복지사가 자기 맘대로 우리 문간방을 세줬다고도 하셨다. 내가 그러시냐고.. 또 어떤 일이 있었냐고 유도하면서 물으니 온갖 사연들이 터져나왔다. 주로 모르는 사람들이 그 집에 항상 들락거린다고 했고, 밤에 도둑이 들어와서 놀랐다고도 하고, 아무도 없는 거실 소파에서 왠 처음보는 아이가 놀고 있다고도 하는 등 끝없는 환각을 계속 경험하고 계셨다.

밤에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 아파트 베란다 쪽을 보시고는 저기 뒷마당에 눈이 소복히 쌓였다거나 장독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도 하셨다. 다른 날에는 베란다에 계단이 있어서 거길 통해 도둑놈이 들어와서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고도 하시고, 그때문에 거기에 문을 만들어 잠궈야 된다고도 하셨다. 환각 뿐만 아니라 모든것에 대해 강한 의심을 하셨다. 요양복지사 아주머니를 의심해서 짐의 물건을 훔친다, 맘대로 남을 데려온다, 몰래 밤에 들어온다는 얘기도 하셨다. 도무지 대책이 없는 정도까지 되신 것이다.

내 옆에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다른 사람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동생에게 병원에 가서 상담해 봤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그러는데 파킨슨씨 병 환자들은 치매가 일찍 오기 쉬운데 어머니 경우도 그것이래.”

누나와 매형이 왔을 때 얘기늘 나눴지만 두 사람은 그냥 때가 왔다며 체념한 상태였고 이제 곧 치매노인을 보내는 요양원 가운데 좋은 곳을 찾기 시작해야겠다는 말만 했다. 이만하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구나…

하지만 나는, 좋은 성격인지 나쁜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의심이 많았다. 그냥 치매로만 몰아가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내가 확실히 이해될만한 근거를 찾기 위해 파킨슨씨 병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다음카페의 파킨슨씨 병 환우 및 가족 모임 카페… 즉시 가입해서 밤늦게까지 올라온 글을 읽었다. 결국 발견한 내용… 나의 어머니처럼 아무도 없는 의자에 사람이 있다는 환각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그 대부분의 원인은 파킨슨씨 질환 약 때문에 발생되며, 약을 끊거나 바꾸는 즉시 그 문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 뇌의 내부에는 수십가지의 호르몬이 적당한 양을 유지하면서 인체와 정신의 기능을 조절하는데 내가 요즘에 관심을 많이 쏟는 세로토닌처럼 파킨슨씨 질환에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깊숙히 관여되어 있다고 한다. 그 양적이 조절에 문제가 생길 때 파킨슨씨 질환이 발생하며 현재 사용되는 약은 치료약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문제는.. 현대 과학에서도 뇌의 기능과 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명확히 작용과 반작용, 부작용들을 다 알면서 약을 개발하여 치료하거나 증세를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것저것 해보다가 원하는 작용이 생기면 그걸 집중 연구해서 약을 개발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확히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는 단지 가설과 실험에 의한 결과를 가지고 결론 짓는 것일 뿐이다. 파킨슨씨 질환의 약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처방받은 약을 살펴봤다. ASEC (100mg), 이것은 해열, 진통, 소염, 근육통, 신경통, 염증에 쓰는 약이므로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무코스타 (Mucosta) 는 위궤양 약이고.. 그런데 마도파 (Madopar 125mg), 이건 파킨슨 질환 관련 약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미라펙스 (Mirapex 1mg), 이것도 파킨슨씨병 관련 약이다. 이 두가지를 의심해봐야겠다. 다음 카페에서 이걸로 검색을 해 보니 미라펙스의 부작용 발생 경우가 여러 건 있었다. 그 부작용은 바로 환각을 보는 것들이었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곧 캐나다로 떠날 상황이라서 동생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병원에 가서 미라펙스 대신 다른 약으로 대치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두달이 지나서 캐나다에서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을 떄 어머니는 여전히 밤낮으로 환각을 보셨다. 동생에게 물었더니 병원에 가서 얘기를 해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단다. 참 마음이 답답했다. 며칠 뒤에 어머니의 정기 방문날이 되었을 때 내가 함께 갔다. 어머니가 가시는 병원은 인천에서 거의 가장 큰 종합병원일게다. 게다가 신경정신과에 “파킨슨씨 질환 전문의”라고 또렷이 박혀있어서 당연히 믿을만하다고 해야겠지만 내 맘에 들진 않았다. 어디 한두번 당해봤는가… 여전히 ‘치매’ 운운하는 의사에게 내 뜻을 명확히 전달했다.

어머니가 이러이러 저러저러한 부작용이 있다.. 그 정도가 엄청 심하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를 봤더니 미라펙스 부작용 때문에 이런 것이 생기곤 하더라. 그걸 다른 약으로 바꿔달라… 왠일인지 의사가 순순히 내 요구를 들어줬다. 당장 약을 바꾸자며 기존의 ‘미라펙스’를 ‘피케이멜즈’로 교체한 처방전을 밠행해 줬다.

결론은? 당연하다고나 할까, 그 다음날 이후로 어머니는 한동안 환각을 보지 않으셨다. 의사가 여러달 후에 약을 ‘피케이멜즈’ 대신에 ‘유맥스’로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맥스로 바꾸자 마자 바로 환각이 시작됐고, 나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 원래로 되바꿔놨고 다시 환각은 사라졌다. 동생에게도 분명히 얘기했다. 약을 다시 바꾸지 말라고.

사람들은 일단 의사를 믿고 신뢰를 해야 병이 잘 낫는다고들 한다. 그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 불신부터 하기도 한다.  나는 무조건 불신하는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신뢰하지도 않는다. 내 자신이 매사를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근거를 확인해가며 치료에 임하는 편이다. 어차피 현대 서양 의학은 모든 것이 과학적인 기반 위에 마련되어 발전된 학문이기 때문에 충분한 과학적 상식과 논리성이 있으면 내 자신이 판단해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특히나, 도파민이니 세로토닌이니 뭐니하는, 정신 세계에 아주 섬세한 작용을 하는 약들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스스로의, 혹은 내 가족의 상태를 옆에서 세세히 관찰해가면서 치료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 조심성과 다소의 불신감에는 지난 세월동안 쌓였던 기존 의료인들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기존의 내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한번에 다 써내려 가자면 말이 너무 길어진다. 하나씩 차근차근 회상해 가면서 정리해 보련다. 과거는 잊고 싶지만 그냥 단절되긴 힘들고, 이렇게라도 글로 써가면서 과거를 곰씹어보고나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기억의 뒤안길로 보내보고 싶은 마음이다..

참.. 어머니는 2년여 전의 그 사태 이후 거의 환각을 보지 않고 지금껏 정신만큼은 멀쩡히 잘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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