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

By | 2009-10-03

상대적 빈곤감이라고 하면 대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신보다 비교 우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박탈감을 가리킨다. 내려보고 살기보다는 올려다 보면서만 사는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저 인간에 비하면 난 가진게 없어..”라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과 분배의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러한 상대적 빈곤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우리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0억원 가진 사람은 20억원 가진 사람에게서 엄청난 빈곤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고, 그 20억원 가진 사람은 또 50억원 가진 사람에게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흔히 쓰는 “있는 놈이 더하다”라는 표현은 그러한 인간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상대적 빈곤감은 돈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소유욕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 애인보다 남의 애인이 더 날씬하다거나 더 예뻐보이거나 심지어는 더 어려보이거나 하는 심정을 가지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기가 나보다 더 높을 때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나보다 더 똑똑한 것에까지 그런 빈곤감 혹은 박탈감은 나타나기도 한다. 남자들이 남들에게 자신이 더 술이 세다라던가, 정력이 더 세다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 어깨에 힘주고 심허하는 마음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골프장에서 누구 티샷이 더 멀리 나가는지의 여부에서까지도 그런 감정 상태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식들 학교 성적에까지도 그런 모습이 보이곤 한다. 지구상에 인류가 멸망하고 몇 명만 살아남다도 상대적 빈곤감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상대적 빈곤감을 없애기 위해선 두 가지 중에 한가지 방법을 가기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우러러보는 우월한 세계로 옮겨가던지 아니면 아랫쪽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살던지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자기 맘처럼 되진 않는다. 흔히 속은 변함없으면서 겉으로만 윗쪽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면을 갖기 위해 용쓰다 가랭이 찢어지는 뱁새꼴이 되곤한다. 그렇다고 아랫쪽을 내려다 보다간 금새 넌 왜 발전을 위해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는다. 그래서 귀가 여려져서 금새 솔잎이 아닌 뽕잎을 먹다 소화불량에 걸린 송충이가 되기도 한다.

상대적 빈곤감에서 언뜻 돋보이지 않는 분야가 있는데 그게 정서적 측면의 상대적 빈곤감이다. 이건 반드시 돈과 비례해서 그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감성적으로 풍요로운 삶은 돈으로 쳐바른다고 해서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돈지랄 혹은 돈으로 떡칠했다는 식으로 몰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마치 예전의 청렴한 선비 정신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자칫하면 구차스럽거나 쫌스러워 보이기 쉽다는 위험한 면이 있기도 하다. 사실 물질적 부유를 누리지 않으면서도 정서적인 충만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이삼십년 전까지는 가능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요즘처럼 엄청난 물질주의와 물량주의가 바닥을 깔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이 되지 않고서는 그 정서적인 빈곤감을 떨치기는 거의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결국은 정서적 빈곤감도 경제적인 상대적 빈곤감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사회의 상대적 빈곤감은 단순 경제적이거나 심리적인 면에서 볼 때 문화적 전체주의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의 얘기는 아니다. 내가 보기에 나보다 훨씬 돈도 많고 집도 좋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수입도 괜찮은 사람들인데도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얘기를 하는걸 볼 때 그런 문화적 전체주의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정도면 지금이렇게 살아가고 미래에도 큰 문제는 없다”라고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 사는 것, 보는 것, 입는 것들을 보고 백화점이나 명품매장에서 팔고 있는 상품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그런 것의 소비문화를 맘껏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한다. 아예 미래가 없고 당장 빚이 쌓여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좌절을 할 여유조차 없다. 그들은 단지 당장 값아야 할 부채가 없는 사람을 부러워할 뿐일 것이다.

중산층이라고 불리우는 중산층들에게도 이런 문화적 상대적 빈곤감이 많이 엿보인다. 우리 사회의 강력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강박성 전체주의가 끼치는 영향이다. 먹는 것, 노는 것은 물론 애들 교육 같은 것에까지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그지없어지고 잠 못 이루며 고민하게 되는 강박관념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이 더 강해지는게 우리 사회이다. 사회적 행복도의 측정방식이 절대평가 방식이 아니라 상대평가 방식이 되는 것이다. 이건 어떤 방법을 사용하건 쉽게 바뀔 수 있는 사회현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온 우리 뇌세포 부분의 유전 인자에 그런 정신적 성향이 박혀있다고 느낄 정도로 강력한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유전자는 교육이건 국가정책이건 종교건 사상이건 무엇으로도 단기간에 고칠 수 없다. 뇌세포의 그런 DNA 가 최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어서이다. 결론은 결국 이런 문화적인 측면까지 포용하며 살던지 아니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일일 수 밖에 없어보인다. 여기서 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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