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사랑학 (2) 기억

By | 2009-08-15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속담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원래 함께 출발했던 시간은 앞서 뛰어가고 있는데 영혼은 점점 뒤쳐진 채로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에만 파묻혀있다는 것이지. 사실 내 정신세계를 보면 그 속담과 상당히 일치하는 것 같애. 나의 기억의 대부분은 과거 어느 시점 이전의 것이 대부분이야. 그 이후로는 별로 기억나는게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정확성에 대해서는 자신이 생기지 않아. 그래, 추억 속에만 파묻혀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재미있어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고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일 뿐이야. 난 추억하는게 재미있고 추억할 때 기쁘고 마음이 안정돼.

그런데 그 추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유지되고 있는 기억일까에 대해선 나 스스로도 의심이 가. 나의 추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첫사랑의 기억들이 수십년의 세월을 어떻게 잊혀지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인간의 뇌세포는 과연 그처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할 수 있어서 원본에 오류가 생기지 않은채로 오늘 바로 이 순간까지 그 원래의 모습을 재현해주는 것일까. 추억이라는 기억은 시각적인 것 뿐만 아니라  미각과 접촉, 향기, 소리 같은 것 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나아가서는 그런것들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정신적 감성까지도 포함이 되지. 그런데 그게 지금 이시점에 어떻게 원래의 것들과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어차피 인간의 머리 속은 심각한 오류 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야.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을 갖고 싶어서 추억에 빠지곤 해. 설사 그것이 아픈 기억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전체적으로 추억의 아름다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부속이 된다고 하면 그 아픈 기억마저도 달게 받아들여. 결국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을 보게 되는건데 이런 상황에서 어찌 원래의 기억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니. 추억은, 기억 속에 있는 내용들을 나의 내면 속에서 점차 아름다운 것들로 정화시켜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자신이 전혀 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누군가를, 여러 해가 지나면서 점차 기억에 떠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잖아. 만약 그 생각의 주체가 다른 누군가와 달콤한 사랑에 빠져있기라도 한 상태라면 절대 예전의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꺼야. 자신이 불행해졌다고 느낄때 혹은 외롭다고 느낄때, 그 내면에서는 과거의 기억 창고를 뒤져서 풋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을 고른 다음, 적절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 뿐이야. 그 다음에 그의 의식은 그 진열대의 상품들을 발견하고 아 사랑이었구나라고 자각을 하게 되는거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네가 지금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한 데 대한 미련과 집착,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도 의심해야 할지도 몰라. 넌 지금 현실에서 실패한 뒤에 현재도 싫고 미래 또한 두려운 나머지 네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과거에만 안주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대상으로 누군가 한사람을 선택해서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캡슐을 그의 손바닥에 올려 놓은 것은 아니고?

지금 네가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그 사람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함께 살을 대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게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그때 너의 머리속에 들어있던 그 사람과의 추억어린 기억들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제까지는 그지없이 즐겁고 감미로웠다고 느껴졌던 그 기억들이 갑자기 소름 돋는 잔인한 경험으로서 느껴진 적이 있지않니. 그때 넌 그런 현상을 뭐라고 설명하겠어. 진실을 알고 보니 원래는 그게 아니었고 내가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 혹은 억지로 자신의 그런 감정을 속여가면서 그동안 즐거웠어 잘있어 라고 말하면서 그사람을 떠나 보내게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