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과 개죽음, 가치있는 선택

By | 2009-06-18

이런저런 인터넷 신문을 훑어보다 눈에 띈 기사 하나가 있다. 한국 신문에서 가져온 짧은 기사 내용을 아래에 짧게 옮겨와봤는데 하바드 대학교 신문의 원문은 좀 더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으므로 거길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http://www.news.harvard.edu/gazette/2003/10.02/01-parker.html)

아프간 미군(美軍)·하버드대(大) 교수 ‘이중생활’ 7년 만에 마침표 (입력 : 2009.06.16 03:27)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기로 결심한 순간 하버드대학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키트 파커(Kit Parker·43) 미 하버드대 응용과학부 부교수는 2001년 이 두 가지 일에 모두 도전하는 선택을 했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그는 현재 하버드대 교수이자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투입된 미 육군 산악사단 3연대 소속 소령이다. 지난해 12월까지는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수도 카불의 경비·순찰 임무를 맡고 있다.

그가 군 입대를 결심한 것은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당시 그는 보스턴대에서 생체공학 학사, 테네시주 밴더빌트대에서 화공학 석사와 응용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아프가니스탄 대(對)테러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한 순간 공교롭게도 하버드대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파커는 당시 벤커테쉬 나리언아무르티(Naryanamurti) 하버드대 학장(공학·응용과학부)을 찾아갔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는 1년 동안 기다려줄 수 있습니까?” 나리언아무르티 학장은 뜻밖의 요청에 당황했지만, “국가에 대한 봉사를 거부할 수 없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파커는 2002년 미 육군 82 공수부대 소속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와 자불주(州) 등 최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이후 7년여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와 하버드대학을 오가면서 군인과 교수의 이중 신분으로 극과 극의 현실을 체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거리에 매설된 폭탄이 터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하버드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과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밤을 새웠다.

그는 올해 전역해 ‘이중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그는 “국민의 90%가 문맹이고 12세기의 기술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라에 막대한 돈과 물자를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1900년대 미국 수준의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아프가니스탄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비전과 그것을 이룰 강한 의지, 그리고 혁신”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이 사람과 그 선택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할 생각은 없다. 미국에서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라 신문에 보도되었을 것이다. 나에겐 하바드 대학교 교수가 될 만큼의 능력도 없고 또 자원해서 목숨을 걸고 머나먼 전쟁터로 나갈 만큼의 용기도 없다. 애국심이란 측면에서는 또 다른 가치관의 기준이 될 것이므로 더욱 그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능력과 용기와 과감한 선택은 존경할만 하다.

내가 이 기사에 대해 관심이 간 것은 현재의 영광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하여 아프간으로 떠났던 어느 미국인의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그의 이름은 팻 틸만 (Pat Tillman)으로 2002년에 미군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하기 직전까지 NFL (미식축구 리그) 에서 프로선수로 뛰고 있었고 5년간의 9백만불짜리 계약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가 모든 영광과 돈을 뒤로 한 채 스스로 입대하여 아프간 전장으로 떠난 것이었다. 그것도 친동생과 함께였다.

그가 더욱 유명해 진것은 입대 2년만인 2004년에 27세의 나이로 아프간에서 전사했을 때였다. 그런데 죽음 직후에 훈장을 수여받고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기금이 생기고 그의 현역 미식축구 선수 시절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남고 NFL 경기에서 전 선수들이 그를 추모하는 리본을 단 채 경기를 벌이는 등의 다양한 방식의 애도하는 움직임이 미국 전역에 퍼졌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용기와 애국심에 대해 경외감을 느꼈었다.

몇달 뒤에 미국민들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팻 틸만은 적과의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작전에 나갔다가 같은 미군에 의해 적으로 오인받아서 머리에 몇발의 총알을 맞아 죽은 것이 드러났던 것이다. 게다가 현장의 전우들은 적의 총탄에 희생된 것으로 꾸미려고 조작을 시도했고 상위 지휘관들까지도 거기에 동조했다고 보도되었다. 미군의 고위층에서는 애국심의 고취를 통해 자원입대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던 그가 동료의 총탄으로 죽었다고 알려졌을 때의 파문과 자원입대병의 숫자가 감소 될 것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의 입대는 영웅적인 것이었지만 결말은 ‘개죽음’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의 죽음이 헛된 개죽음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입대해야 하는 법적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9/11 사태 이후 자신의 앞으로 갈 길에 대해 동생과 함께 고민했고 그 결과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항로를 틀었을 뿐이다. 그 뒤의 모든 것은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화려한 NFL 선수로의 자신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스스로의 가치관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책임감 있는 행위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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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까운 쪽으로 돌려보면… 열심히 운동을 하여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것으로 군입대를 면제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차피 자신들의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 각각의 개인들의 정신 속에서 자리잡고 있을 가치관이 그 선택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들은 그 명령에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명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국민들이, 그리고 그 스포츠의 팬들이 할 일이다.

우스운 점은, 한쪽에서는 “성스런 병역의 의무”를 논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군대문제 해결”이라는 요상한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그것이 ‘성스럽다’면서 왜 다른 한편으론 그걸 “문제”라고 표현하고 또 회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그냥 다들 솔직히 대놓고 가기싫다고 하는게 더 나아 보인다. 성스럽고 자랑스러운 선택을 했는지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달려있는게 아닐까. 그 당사자와 그 선택을 판단하는 우리 모두의 가치관 말이다..

One thought on “애국심과 개죽음, 가치있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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