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에 중독되다

By | 2003-12-26

어제 초저녁 무렵에는 벽난로 앞 의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가 문득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세라믹 글래스 도어 안쪽으로 춤추는 빨간 불꽃을 바라보며 온몸으로는 그 열기를 한껏 받고 있노라면 세상만사 복잡한 일 다 잊어버리고 무심히 있게 되는 바람에 그처럼 잠이 들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산속에 들어와 살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게 되고 바깥에 나가기도 싫어지는 데다가 요즘엔 매일같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저녁때 해가 지자마다 불을 지펴서 자기 전까지 거의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벽난로에 중독된 셈입니다. 덕분에 작년에 1톤 트럭 하나 사서 반쯤 남겼던 참나무 장작이 올해는 겨울이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거의 다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돈 안 들이고 참나무 장작을 구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또 쉬지 않고 장작을 때면서 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양평에 들어와서 두번째 맞이하는 겨울이지만 작년 겨울에는 벽난로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습니다. 멍청하게도 처음엔 불도 제대로 피우질 못해서 낑낑대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참나무 굵은 장작조각을 쌓아놓고 불을 붙이려 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작년엔 비상용으로 비치해 두었던 LP 개스 난로를 주로 썼습니다. 벽난로에는 가느다란 불쏘시개용 나무 조각부터 쌓아놓고 불을 붙여 어느 정도 열기가 오르고 그제서야 굵은 장작을 넣어야 한다는 것은 작년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어느 공장에서 폐팔레트를 잔뜩 실어다 주어 그걸 쪼개서 불쏘시개로 썼더니 이제 단 몇 분 만에 완전히 장작에 불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작년에는 몇시간씩 벽난로를 때어도 그리 따듯한 감을 못 느꼈기에 난로는 주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분위기 조성용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이제는 잠자는 동안 이외의 시간에는 주 난방수단이 될 정도로 집안을 따듯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리 저리 시도를 해 본 결과입니다.

우선 처음에 불을 피우면서는 이 철제 벽난로 안을 열기로 잔뜩 데워주어야 되더군요. 딱딱거리며 늘어나는 소리가 나면서 쇠가 잘 달궈진 뒤에는 그 열기만 유지시킬 정도로 열기를 조절하면 되었습니다. 예전에 몰랐던 또 한가지가 바로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의 크기를 조절해 주는 댐퍼 (Damper)의 기능이었습니다. 처음에 생각하기론 그 댐퍼가 비가 올 때나 바람이 역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용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벽난로 화구 안에서 만들어진 열기를 최대한 그 안에 붙잡아 놓을 수 있게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불길이 오르고 화구 안의 열기가 오르면 그때에는 장작이 타면서 발생된 연기가 집안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만 댐퍼를 최소한으로 열어놓습니다. 그렇게 시도를 해 봤더니 난로 자체의 열기가 놀랄만큼 더 커지더군요. 그러면서 장작이 타는 속도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요. 장작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 댐퍼를 최대로 열었을 때에는 불꽃이 매섭게 흔들리며 장작이 타들어가더니, 댐퍼를 최적으로 맞추면 불꽃이 흔들리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속도도 느려지고 또 열기가 굴뚝으로 나가지 않고 화구 안에 머무르게 되면서 집안을 더 많이 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집 난로는 효율 높은 노출식 주물 난로가 아닙니다. 아쉽게도 장식적인 용도가 높은 매립식 주철 난로입니다. 노출식 주물 난로이 열효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저희같은 매립식 주철 난로로도 난방을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새로 집을 지으면서 처음 사용하시게 된 벽난로 초보자님들께서는 연구를 해 보시고, 군대시절 페치카 전문가이셨거나 다년간의 경험끝에 벽난로를 꽉 잡았다고 자신하시는 분들은 그 지혜를 털어놓아 보십시오. 저도 더 배우고 연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와 집사람은 벽난로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벽난로에 중독된 셈입니다. 밤사이에는 기름보일러가 돌면서 방바닥을 데우겠지만 아침이 되면 또 벽난로가 난방의 역할을 대신할 겁니다. 지난주에 저희집에 들렀던 한 미국 친구는 별로 춥지 않은 텍사스주에 살던 시절에 그리도 벽난로가 피우고 싶어서 에어콘을 가동하면서까지 벽난로를 피우곤 했다더군요. 그 사람처럼 벽난로의 멋에 중독되었습니다. 어린시절 설설 끓는 아랫목에 이불깔고 누우면 세상만사 개의치 않고 그 안에서 줄곧 머물러 있고 싶어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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