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와 숨바꼭질

By | 2002-08-29

요즘은 워낙 자주 생기는 일이라 별로 큰 뉴스거리도 안되고 있긴 하지만, 얼마전 21명의 탈북자들이 조그만 목선을 탄 채 폭풍을 뚫고 48시간만에 인천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들이 타고 온 배가 너무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항해를 했다는 점과 폭풍속에서도 정확히 항로를 따라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항해를 마쳤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용한 항해 장비가 공개됐는데, 바로 GPS가 그들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이 점은 특히나 필자의 눈길을 끌었는데 필자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바로 GPS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웠지만 GSP 기술이라는 것이 요즘 급격히 우리 사회로 침투하고 있는 것 같다. GPS는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보통 위성항법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동작 방식을 설명하자면 한없이 복잡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지도에서 위치를 판별하는데 이용하는 삼각측량법이 기본 원리이다.

미 국방부에서 띄운 24개의 GPS 위성이 지상에서 약 2만 킬로미터 상공에서 거미줄처럼 전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각각의 위성 내부에는 세슘 원자시계 2개와 백업용으로 루비듐 원자시계가 2개씩 들어있다. 모든 위성들의 시각은 서로간에 정확히 동기가 맞춰져 있고, 그 시각과 위성의 위치 정보가 지상으로 송신된다.

지상의 수신기는 최소한 3개의 위성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다음, 그 정보가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해 내고 그 결과를 삼각측량법 원리에 대입해 자기의 위치를 산출해 내는 원리이다.

이 정도 말로만 설명하면 정말로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GPS 기술 자체는 정말 첨단 중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 기술이 CDMA 방식이라는 것은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CDMA 기술은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돼 GPS 위성에서 발사하는 전파에 적용된 방식이었다.

사실 GPS 위성 시스템 자체도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일부분은 민간인들에게 사용이 허용됐다. 군사용으로는 단 몇 미터 오차 내에서 위치를 감지할 수도 있지만 민간인 용도로는 SA(Selective Availability)라는 기법을 통해 위치 측정 오차를 인위적으로 반경 100미터 가까이 크게 만들어 사용하게끔 해왔고, 최근에서야 그 SA도 풀려서 민간인들도 더 큰 정확도(반경 약 25미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번에 탈북자들이 사용한 GPS 수신 장비는 중국제라고 한다. 미국에서 군사용으로 만든 시스템을 활용하는 단말 장치가 한때 적대국이었고 현재도 미국의 가상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GPS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GPS는 항상 똑같이 동작하는 게 아니라 지상 관제국에서의 제어에 의해 비상시에는 특정 지역에 대해 민간 GPS 사용을 제한시킬 수도 있고 오직 미군들이 보유한 장비에서만 정상 동작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미군과 적군이 전투를 벌일 때 미군만 GPS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미사일이나 무인 항공기를 만들고, 그 안에 GPS 수신기를 실어서 정확히 백악관에 꽂히도록 하려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같은 나라에서는 GPS 기술을 군사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했었다. 아예 GPS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GLONA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계획을 추진해 10여 개의 위성을 궤도에 띄워 올렸지만 경제력이 뒷받침하질 못해서 원래 계획했던 24개에는 훨씬 못미치고 또한 운영도 그리 훌륭히 이뤄지지 못해서 실제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GPS를 쓸 수도 없는 경우가 된 것이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GPS 수신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범죄처럼 여겨져왔다. 몇 년 전 미국 퀄컴의 엔지니어가 러시아 내에서 휴대폰 기지국 설치를 위한 지형 조사를 하다가 GPS 장비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는데 그 죄목은 간첩죄였다. 물론 며칠 후에 풀려나서 미국으로 송환되긴 했지만 그만큼 러시아에선 GPS가 민감한 사안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에서도 자체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갈릴레오(Galileo)가 그것인데, 2008년까지 30개의 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려서 순수한 민간용의 시스템을 미국과는 독립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 수신장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위성 54개를 통합해 최대한 활용할 것이고, 전시에는 미국이 24개의 GPS 위성 사용을 차단한다고 해도 자체적인 30개 위성으로 전혀 영향을 입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미국에선 갈릴레오의 송신 주파수가 GPS가 사용 예정인 주파수와 겹친다는 명목으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미국에게 적대적인 국가나 단체에게도 갈릴레오는 문을 열게 될 터이니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갈릴레오 프로젝트 역시 경제적인 문제점이 노출돼 과연 성공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다른 한편으론 일본에서도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의 발사를 고려중이라는 소식까지 들리는 걸 보면 각국의 경쟁이 우주 상공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다.

GPS에 대항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쏘아 올리는 일은 남의 나라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이왕 있는 GPS를 열심히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역시 이동통신의 발전에 힘입어 휴대폰과 결합한 위치정보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다. 자동차에 탑재하는 자동차 항법 장치 또한 대기업과 벤처기업 여러 곳에서 개발이 완료돼 판매중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GPS 응용 사업 하나가 제법 장사를 잘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상에서 속도 위반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가 그것인데, 벌써 수십만 대가 팔려 업체들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의 현재 위치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감시카메라 위치 정보와 비교해서 음성으로 전방 몇 미터 앞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지 알려주는 장치이다.

경찰에선 이걸 무척이나 단속하고 싶지만 단속 근거가 없다고 한다. 요즘에도 차를 운전하며 길을 가다 보면 노상에서 이런 장치를 판매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발견하곤 한다. 어쨌든 하이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이런 것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GPS는 활용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처럼 사람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나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빅브라더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그렇듯이 음양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니 그리 크게 우려하지는 않아도 될 듯싶다. 언젠가는 애들 놀이 가운데 숨바꼭질이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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