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없이 살아보니

By | 2002-06-05

지난 주 수요일에 이사를 했으니 현충일인 내일은 새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꼭 일주일째가 된다. 사실 집 짓기 공사는 아직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다. 원래 공사를 했던 업자는 현장에 더 이상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어차피 있어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게 낫다.

이번 사태로 인해 금전적인 손실이 적지 않았지만, 앞으로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취한 조치였다. 채 완공되지도 않은 집에 들어간 것은 필자의 결심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남의 손에 내 집을 맡기지 않으리라….

전기가 가설된 것은 이사 전날이었고 지하수를 판 곳에 모터 펌프를 연결한 것은 이사 당일 오전이었다. 이삿짐을 내려놓은 포장 이사업체가 돌아간 뒤, 우선 한 일은 수도배관 공사였다. 외부의 지하수 파이프를 집 안의 파이프에 연결하고 펌프 전원을 올린 순간 집안 여기저기에서 폭포 소리가 났는데, 전원을 끄고 살펴보니 수도꼭지나 연결 파이프가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차를 타고 면에 있는 철물점에 가서 부품을 사다 조치를 했다. 다음엔 전기 시설을 이곳 저곳 손봤고, 보일러 역시 배관이 완료되지 않아서 그것도 낑낑거리며 고쳐놨다. 욕실의 환풍기는 바람이 빠져나갈 길도 없이 겉돌고만 있어서 그라인더로 벽의 철판을 잘라 바람이 나갈 길을 만들었다.

내부의 환기 덕트도 설치돼 있지 않아서 직경 100밀리짜리 PVC 파이프를 자르고 끼워가면서 해결했다. 어제는 식기 세척기와 세탁기 설치를 했고, 오늘은 정화조의 산소발생장치를 설치할 차례이다. 그리고 땅 속에 전선관을 묻기 위해 필요한 곡괭이와 삽을 아내가 사올 것이다.

지나간 일주일 동안 집에서는 인터넷을 전혀 접할 수 없었다.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근본적으로 방법이 없었다. 전화 회선도 어제 아침에서야 연결됐으니 더 말할 나위 없다. 여러 해 동안 잘 써오던 두루넷에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한국통신 ADSL 서비스인 메가패스를 신청하려 했더니 뜻밖에도 전화국에서는 서비스가 안되는 지역이라는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혹시나 해서 마을까지 연결된다는 TV 유선방송에 문의를 했더니 역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선 모뎀을 써서 초저속(!) 접속을 하거나 위성인터넷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제한적인데, 전화를 설치하러 온 사람의 말이 이 마을로 들어오는 회선 상태가 워낙 안좋아서 그걸 미리 얘기해 준 다음, 낮은 품질이라도 사용하겠다고 동의하는 경우에만 전화 회선을 가설해 주는 게 방침이라나.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이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휴대폰을 사용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는 사실 정도였다.

사실 집에서 일주일 동안 인터넷을 전혀 접하지 않는다고 하면 무척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필자가 사실 그랬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미국과 진행하는 일을 항상 해왔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눈꼽도 떼기 전에 새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으니 정말 당연한 일이다.

평일이나 일요일이나 그 습관은 거의 일관되게 이어졌다. 그래서 단 며칠이라도 인터넷, 특히 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별로 답답할 일도 없었고 궁금한 것도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서울의 사무실에 나와서 인터넷 서핑을 해보니, 이번 주에 미국의 한 시사 주간지에 이메일 중독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1억 명 이상에 이르는 미국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42%가 휴가중에도 메일 검색을 하고, 또 4명중의 한 명은 주말에도 메일을 읽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회사 업무 뿐 아니라 개인적인 서신 왕래처럼 메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것을 반드시 문제시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런데 전체 사용자 중 6%는 메일 사용을 중단하는 경우에 금단 현상을 일으킬 정도의 강박 현상을 나타낸다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사실 좀 심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그랬었으니 말이다.

꼭 그 기사 때문은 아니고, 이번에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시골로 이사오면서, 다시 한 번 나의 하이테크 생활과 인터넷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혹시라도 지난 많은 시간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인터넷과 관련된 쓸데없는 것에 묶여있지 않았나…? 내가 하릴없이 인터넷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인 게 얼마나 될까?

메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지우게 되는 게 전체의 50% 이상이고 나머지 50% 가운데에서도 정작 필요한 것은 절반도 안되는데, 그런 일로 내 시간을 써가면서 읽고 썼던 메일들은 그나마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을까? 행여나 어지러울 정도로 많고 많은 웹 링크들을 계속 클릭해 가면서 내가 의식없이 끌려다닌 게 아닐까?

전원 속의 하이테크 주택 만드는 일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실행에 옮겨서 이제 그곳에 살기 시작했다. 물론 근본적인 의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고속 인터넷이 서비스되지 않는 환경을 접하면서 필자는 인터넷 사용에 대해서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됐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라도 전화선 모뎀을 사용한 메일 주고받기 같은 최소한의 인터넷 기능만 쓰게 될 것이다. 정 고속 인터넷이 필요하다면 읍내의 PC 방을 이용하면 될 것이므로 별 문제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집 안에 있으면 TV나 컴퓨터가 생각나는데, 일단 집 밖으로 나가면 그 생각이 싹 없어진다는 점이다. 현관만 나서면 발바리와 삽살개 3마리가 쭐래쭐래 따라다녀서 즐겁고, 집 주위를 둘러보면 삽과 톱과 망치를 가지고 몸을 써서 해야할 일이 그토록 많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매일같이 컴퓨터만 파고 살았던 게 잘한 짓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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