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의 길

By | 2002-05-30

예전에 대기업 연구소에 다닐 때 알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은 변리사로 자리잡아 일하고 있는 이들이 여럿 있다. 그들을 기억해 보면 한결같이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에 연구 개발 분야에서 꽤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능력있는 인재들이었기에 변리사 시험도 비교적 쉽게 준비했고 비교적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중에 이들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면 그들처럼 변리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제법 한다하는 연구 인력들이라고 한다. 좋은 쪽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이 특허 등록 관련 업무를 하는 변리사로 일하게 된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필자는 만 이틀만에 3건의 특허를 써낸 적도 있었다. 그것은 모든 연구원들에게 일년에 몇 건씩 의무적으로 할당된 양을 채우기 위해서 급조한 것이었는데, 그런 회사의 방침이나 필자의 행동도 모두 한심한 것이었지만, 출원 업무를 진행하는 변리사와 만났을 때는 또 한 번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전자공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쪽으로 실무 경험도 전혀 없는 사람이 전자 회로 개발 특허를 다룰 수 있을까. 어쨌든 특허 출원 프로세스는 계속 진행됐고, 한심한 특허들도 계속 출원됐다.


요즘은 예전과 같은 그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필자 또한 억지로 특허를 내야 하는 입장도 아니다. 특정 분야를 전공했고 비록 길지는 않아도 실무 경력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특허 변리사를 맡게 되면서 그렇게 개선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가 특허 출원 건수를 가지고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특허의 양보다는 질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변리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 길로 들어간 동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끔씩은 일종의 고시 준비를 하는 것과 비슷한 감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외무고시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충 상경계열 출신들이 회계사 시험을 보는 것과 비슷한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변리사가 되는 것을 이른바 ‘출세’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현실을 보면 변리사가 된다고 해도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직장 생활을 하게 된다. 업무 내용과 방식만 바뀔 뿐이다.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능력도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변리사가 자신의 사무실을 차린 경우라면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변리사가 아닌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서 노력을 한다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변리사가 됐을 때 좋은 점은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느 신문에서 보니 요즘 직장인의 체감 정년을 평균해 보니 38.8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엔지니어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체감 정년이 낮을 것이다. 이에 비해 변리사는 거의 평생 직장 개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직업과 직장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 연구원들이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결국 그런 점 때문에 변리사에 대한 연구 개발 인력의 관심이 깊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도 필자는 연구 개발 인력이 변리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같은 계통 사람으로서 그리 걱정을 하진 않는다. 사시니 행시니 하는 것을 준비하는 그 많은 인재들이 몇 수를 거듭하면서도 오직 그 길을 걷겠다고 인생을 망가뜨려가는 것에 비하면 남들처럼 공부하고 직장 생활도 하면서 특허 변리사 자격을 준비하는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고 또 변리사가 된 후에나 그 길을 포기한 뒤에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똑똑했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치 수도 생활같은 고시공부를 거치면서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지적 소유권 문제가 중요해져 가는 요즘 변리사는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발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인재들이 그 길을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단지 허상을 바라보지 않고 분명히 알고 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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