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가 뭐길래

By | 2001-11-07

인텔이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 팔겠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MP3 업체들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들썩인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바로 지난 달 인텔은 MP3 사업을 포함한 몇 가지 디지털 가전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MP3 플레이어 업계 일각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도 보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다며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긴 애초부터 인텔같은 대기업이 MP3 플레이어같은 제품을 내놓는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영 궁합이 맞지 않아 보인 게 사실이었다. 인텔의 그러한 잘못된 행보는 MP3 플레이어 이전에 PC에 연결되는 어린이용 현미경을 팔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텔이 MP3 플레이어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비록 세계 제일의 반도체 업체이지만, 앞으로 PC 시장의 성장률이 점차 수그러들고 포스트 PC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대형 컴퓨터 업체들이 그랬듯이 디지털 가전 시장에 발을 담가본 것이다.

MP3는 디지털 가전의 대표적인 제품으로서, 다른 디지털 가전 제품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선 부문이라는 점이 인텔의 눈에 들었으리라. 더구나 인텔이 직접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만들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훨씬 우세할 것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할 터였다.

어떤 이들은 인텔이 만든 플래시 메모리 가운데 스트라타플래시(StrataFlash)라는 메모리 칩이 잘 팔리지 않아서 그 재고를 소진하는 한 방편으로 MP3 플레이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인텔은 이제 MP3 시장에서 발을 빼고 본업에만 충실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렇게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PC 수요 증가가 한계에 다다르고 IT 산업의 불황이 점점 커지면서 MP3와 같은 디지털 오디오 제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형 전자업체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인텔도 그 한 예지만, MP3 플레이어를 인텔보다 앞서 내놓은 대형 회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컴팩이다. 제품 이름은 아이팩 퍼스널 오디오 플레이어(iPaq Personal Audio Player)이다.

컴팩은 지금도 이 제품을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시장에선 그다지 잘 팔리는 편은 아닌 것 같다. MP3 플레이어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중소 업체들이 그 정도 판다면 꽤 선전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컴팩과 같은 공룡 기업에게는 새발의 피 정도밖에 안되는 양일 것이다. 인텔 제품도 시장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지만, 인텔의 욕심을 채우기엔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모든 사건이 태산 명동식의 해프닝으로 불과 몇달만에 끝나버린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텔과 컴팩이 판매한 제품들의 개발과 생산을 누가 했느냐는 점이다. 두 개 제품 모두 개발은 한국의 벤처업체 두 군데가 각각 했고, 생산은 모두 우리나라 최고 재벌 기업의 공장에서 이뤄졌다. 상표만 빼고는 완전히 한국제인 셈이다. 그만큼 한국은 아직도 MP3 플레이어에 관한한 강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개발과 생산이라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는 속담이 생각나기도 한다. 강자들 싸움에서 결국 손해보는 것은 곰이 되지 않을까? 벌써 관련된 업체에서는 ‘아야’하는 비명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MP3 플레이어 사업에 또 다른 도전자가 출현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애플이다.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하는 컴팩이나 인텔 제품과는 달리 애플의 아이팟(iPod)은 5GB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사용한 점이 이채롭지만 불행히도 가격이 399달러나 된다.

일반적으로 노래 한 곡이 MP3 파일로 5MB를 넘진 않으므로 1000곡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겠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128MB짜리 플래시메모리 방식의 MP3 플레이어나 650MB를 저장할 수 있는 MP3 CD 플레이어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하긴 비싼 가격도 마다않는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것이라면 적절한 제품이랄 수도 있겠다. 과연 애플은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인텔이나 컴팩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작년 초에는 거의 200개에 가까운 MP3 플레이어 업체가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 업체들만 정상적인 생산과 판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까지 끼어든 상태다.

그렇게 많은 업체들이 난립해서 서로 인력 스카우트니 기술 경쟁이니 와글거렸지만 정작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미국 시장에서는 우리 브랜드가 붙어있는 MP3 플레이어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매장에서 삼성의 옙(yepp) 기종이 중국제 저가 모델들 틈에서 가끔 보이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MP3 플레이어는 꽤 많은 양이다. MP3 CD 플레이어는 국내 한 중소업체에서 수출하는 양이 미국 MP3 CD 플레이어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고, 플래시메모리 플레이어도 그에는 못미치지만 꽤 큰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남의 브랜드로 판매되는 OEM 방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외화 획득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국내와 외국에서 우리 업체들끼리 티격태격하면서 덤핑 수출을 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에선 재빠르게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MP3 플레이어라는 것은 결국 본격적인 디지털 가전으로 가는 과도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두 해 안에 거의 대부분의 가정용 오디오 기기는 모두 MP3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될 것이다. 우리가 MP3 CD 플레이어라고 부르는 그 기능이 일반 CD 플레이어에도 모두 포함돼 더 이상 MP3 CD 플레이어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PDA나 다른 디지털 가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생각하지 않고 오직 MP3 플레이어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남들은 디지털 가전의 꽃을 피울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MP3 업계 최대 업체들은 MP3 플레이어에 모든 운명을 맡기고 죽자 사자 일하는 중소기업들이다. 그렇게만 살다간 정말 죽는 수가 있다. MP3 플레이어 장사가 안 돼도 그대로 망해서 죽는 것이고, 장사가 잘된다 하더라도 몇년 후에 도래할 새로운 디지털 가전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서 죽는다. 바로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서 몇년 후의 일을 그르치는 근시안적인 사업 추진만 가지고는 희망이 없다. 좀더 길게 봐야 한다.

MP3 플레이어를 포스트 PC 혹은 디지털 가전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여기는 외국 대형 업체들에게 이용만 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MP3를 발판 삼아 미래의 디지털 가전 시장에서는 진짜 우리가 개발하고 만든 제품이 우리 상표를 달고 외국의 매장에서 판매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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