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서방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By | 2001-11-01

요즘 들어 중국으로부터 전해지는 소식과 소문을 워낙 많이 들어왔던 터라 중국에 관한 어떤 기사가 신문에 실리더라도 별로 신경쓸 일은 없는 게 현실이다. 어릴 적 기억으론 분명 모두들 그 나라를 ‘중공’이라고 부르며, 한편으로는 ‘무찌르자 오랑캐 중공 오랑캐’라는 반공 교육 동요까지 배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중공은 잊혀졌고, 이제 ‘중국’이라는 국가 명칭을 너무도 당연히 쓰고 있다. 아마 정부가 대만과의 국교를 어느날 갑자기 끊어버렸던 그 시절부터 새로이 부르기 시작한 명칭이었으리라. 그리고 새로운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 없으면 안되는 대상으로 커져 버렸다.

중국에서는 한국 연예인들의 폭발적 인기때문에 ‘한류’라는 현상도 생겼다고 매스컴에서 난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보다 오히려 더 심할 정도로 중국이 인기정상에 올라 있다. 여기선 오빠부대 멤버들이 아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그 팬들이다. 이건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전세계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모두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온갖 회사들이 중국 현지법인을 만들고, 현지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팔려고 아우성이다. 자본도 엄청나게 몰려들고 있어서 올해 예상되는 외자 유치액이 5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에는 델의 컴퓨터 생산라인도 중국으로 옮긴다는 뉴스에 이어 캐논의 카메라 공장도 말레이지아에서 중국으로 옮긴다는 소식이다.

필자가 쓰던 소니 캠코더도 바닥의 라벨에는 ‘Made in China’라고 박혀 있다. 다른 일본제 가전제품은 물론, 한국 브랜드의 가전제품들도 비슷한 실정이다. 대만의 TSMC같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주문 생산업체도 중국에 공장을 세운다. 이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소프트웨어 업체, 그리고 벤처기업들도 중국행을 선언한다. 중국은 정녕 21세기의 엘도라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너도나도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방대한 시장 규모, 둘째가 저렴한 노동력일 것이다. 중국의 내수 시장은 엄청나다. 중국에서 휴대폰 서비스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나 싶은데, 벌써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가입자를 자랑한다. 자그마치 1억 2천만 명이 넘는다. 올해만 해도 새로이 3천만 대의 휴대폰 수요가 있다고 예측되는 걸 보면 이건 장난이 아니다. 산업화를 지향하는 중국이기 때문에 전 사회적으로 모든 부문에 걸쳐 이런 수요가 있을 것이 당연하다. 초기에는 중국 진출의 목적이 싸구려 제품을 양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느새 주요 시장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중국은 엄청나게 오만해져 있다. 하긴 감히 누가 그네들에게 불평하겠는가? 얼마 전에 일본이 중국산 농산물 몇 가지에 대해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더니 중국은 일본산 자동차와 휴대폰, 에어컨 등에 대해 100% 보복 관세를 매긴 적이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인데, 서로 머리 터져가며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다. 잘못하면 옷도 제대로 못추스리고 중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니까.

우리나라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국산 마늘에 대해서 긴급관세를 매겼더니, 그 즉시 중국에선 한국산 석유화학 제품과 휴대폰 등에 대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해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는 필요도 없는 마늘을 울며 겨자먹기로 600만 달러 어치 이상이나 수입해서 다시 외국에 떨이로 팔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중국 수출액이 자그마치 1억 달러나 줄었다고 하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CDMA 원천 특허를 보유한 퀄컴의 주가는 중국 정부가 쥐락펴락하고 있다. 차세대 중국의 휴대폰 방식을 퀄컴 기술로 한다고 했다가 또 말을 바꾸기를 수없이 거듭했다. 그래서 항간에는 중국 정부가 CDMA 기술 채택을 발표하기 전에 퀄컴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 직전에 매각하는 방법을 여러 번 거듭해서 큰 돈 벌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또 얼마나 그에 휘둘렸던가. 삼성전자가 이제껏 중국에 투자한 돈이 26억 달러나 되니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고, 또 앞으로 얼마나 시달릴지도 예측된다.

다시 신문에 나는 중국발 뉴스에 대해서 살펴보자. 중국에서 마약을 제조한 한국인이 공개 총살당했다는 뉴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그것 때문에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중국에선 별 신경도 안쓸 것이다. 작년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꽃게와 생선류 속에 납이 들어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중국은 별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국 내에서 납이 들어간 게 아니냐고까지 했다. 그후로도 계속 납이 발견됐지만 우린 또 휴대폰 수출을 못하게 될까봐서인지 전혀 꽃게의 수입 중단 조치같은 것은 꿈꿔 본 적도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꽃게에 납이 들어와도 중국에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한국 정부 모르게 한국인이 총살 당해도 한반도 안에서만 야단법석 한 번 하고는 끝이다. 일년에 최소한 1500만 명 이상 늘어난다는 그들의 인구가 그만큼 거대한 시장을 제공해주는 것 때문인가 보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도 같다. 세계적으로 너도나도 모두 중국으로 몰려들어서 시장 점유를 위해 아귀다툼할 정도인데, 우리만 가만히 앉아서 잘 살 방도는 없을테니까.

그런데 중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그쪽에 뭔가 큰 걸 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테크 업종에서는 반드시 기술 이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중소기업들도, 오랜 경력을 가진 인력도, 그리고 벤처업계까지도 중국 진출에 앞장서고 있는 오늘, 우리는 그토록 어렵게 키워온 기술과 경험을 너무 쉽게 넘겨주고 있지나 않은가?

결국은 조만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벌써 세계 수출 시장에서 중국제품에 자리를 빼앗긴 상태이고, 또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제품들이 한국으로부터 옮겨간 기술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가 개발과 생산을 도와주고서 받은 돈은 푼돈이고, 진짜 큰 돈은 그들이 벌게 된다는 점이다.

간 빼주고 쓸개 빼주고 나중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할까. 이렇게 국가의 자존심마저 침해받으면서까지 어쩔 수 없이 진출하는 중국 시장. 종국에 가서는 별로 남을 것이 없는 걸 알면서도 지금 당장 망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주위에서 불고 있는 중국 열풍. 한편으론 기대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잖게 걱정된다. 몇 년 후 올림픽까지 개최하고 난 후 중국의 모습은 지금에 비해 얼마나 더 커져 있을까. 그리고 우리 한국은 그 옆에서 상대적으로 얼마나 작게 보이게 될런지.

그들을 단지 저렴한 인건비에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나라로만 보거나 또는 방대한 시장을 약속하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황금시장으로만 봐선 안된다. 그들은 이미 경제적으로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돼있고, 조만간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분야에서 이미 우리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한 가지 밖에 없을 것 같다.

무조건 달려가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주기보다는 충분한 전략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며, 그와 함께 부단한 연구 개발을 통해 지속적으로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비장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왕서방을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무섭게 봐야 할 일이다. 그들의 웃는 얼굴 속에, 만만디 속에 우리에게 닥치기 시작할 위협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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