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소니를 좋아하십니까?

By | 2001-08-16

몇년 전 미국에서 각종 브랜드에 대한 조사를 하던중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됐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전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소니(Sony)를 원래 미국 회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그만큼 소니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필자가 일년쯤 미국에 살던 시절,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살던 미국 아줌마는 철저한 소니 예찬론자였다. TV와 VCR, 그리고 오디오같은 전자 제품중 자기가 구입해야 할 품목 내에 소니 상품이 있으면 그것을 사지 않으면 못견뎌했다. 이는 소니의 품질을 철저히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미국 아줌마가 동네의 블록버스터(BlockBuster)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 테이프를 하나 빌려보다 테이프가 속에서 엉켜 나오질 않자 비디오점에 가서 “이 비디오는 소니 제품이고, 더군다나 Made in Japan이다. 따라서 테이프가 불량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해서 비디오점의 비용 부담으로 소니 직영 수리센터까지 우송해 수리하고 사과까지 받아내기도 한 것을 곁에서 본 일도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이런 류의 사람들은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찌보면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이라고 할 만큼의 신뢰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필자가 소니 제품을 처음 본 것은 70년대 중반 중학교 시절 학교 유물 전시실에서였다. 미술 선생님이 유물 감상 시간 동안 은은한 궁중 제례악을 틀어주던 릴테입 녹음기의 ‘소니’ 상표를 보고 아이들은 “저게 그 유명한 소니 녹음기래. 소니 녹음기가 세계에서 가장 좋대”라고 수근거리곤 했다.

대학교 1학년 시절인 80년대 초, 한 친구가 허리에 쬐그만 카세트를 차고 머리에 조그만 헤드폰을 메고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소니 워크맨이었다. 그 당시 소니는 어찌보면 상품의 브랜드라기보다는 오히려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소니 제품들은 비슷한 크기와 성능의 다른 브랜드보다 가격이 적지 않게 비쌌다. 요즘은 저가형 제품에 소니 상표를 붙이고 판매되는 경우도 많아져서 예전에 비해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껏 많은 이들은 소니에 대해서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지나칠 정도의 신뢰감으로 그 회사 제품을 사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상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삼성이나 LG? 아니면 대우나 현대? 무엇 하나 가슴에 가까이 오는 것이 없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메모리 반도체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있어서는 그 브랜드 네임은 소니만 못하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금성사와 그 영문 명칭인 Goldstar라는 브랜드가 있었지만, 지금은 엘지라는 영 낯선 이름에 그 자리를 내주고 기억의 뒤안길에 묻혀버렸다. 그래도 LG는 CD-ROM 및 CD-R/W 드라이브 시장에서는 세계 제일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현대와 대우는 훨씬 역사가 짧은 데다가 현대는 산업전자쪽이고, 대우는 그 전신인 대한전선의 브랜드 네임에도 못미친다. 그리곤 더 무엇이 있을까. 세계 시장으로 가면 우리의 브랜드는 더욱 궁해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중국에 가면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최고 제품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고, 남미와 구공산권 유럽에서도 국산 브랜드가 고급 제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작 세계 시장을 좌우하는 미국이나 일본, 서유럽 등에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국산 브랜드 OEM 제품과 저가품을 주로 만들어 왔던 역사 속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 우리 브랜드의 현실이다.

조금이나마 내세울 것은 삼성과 LG 정도인데 삼성은 재벌이라는 기업 문화와 오너 경영체제라는 것이 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점수를 깎이고 있는데다가 아직껏 고급 제품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고, LG도 별반 차이가 없다. 소니가 올라 있는 그 열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성능과 기술과 품질은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드는 것일까.

브랜드 이미지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급조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서 기술과 경험을 쌓고 하나둘씩 영역을 넓혀가야 가능해 진다. 소니의 초기 트레이드 마크는 녹음기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그 다음에는 트리니트론으로 유명한 컬러 TV, 그리고 VCR과 캠코더가 뒤를 이었고,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가 시장을 석권했다.

이제 바이오(VAIO) 계열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등을 통해 완전히 디지털 제품으로 세대교체를 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니는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제품을 구입한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는 확실한 품질과 디자인적인 차별성이 뒷받침해 주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자랑스럽게 “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바로 한국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올까. 물론 기업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기술에서도 혁신을 이룩하며, 고객과 종업원들을 모두 사랑으로 품는 정신 아래 생산적이며 효율적인 관리가 행해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제2, 제3의 소니 브랜드가 탄생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가 바로 소니다. 사실 소니도 그 시작은 뒷골목의 자그마한 벤처기업이었다. 공동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와 이부카 마사루는 각각 몇년 전에 운명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위인으로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대기업을 만든 분들은 죽고난 다음에는 숨겨진 여자와 자식이 나타나 친자소송을 한다느니, 또는 상속세를 안냈느니 하는 추문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어떤 이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꼭꼭 숨어지내며 회사 직원들이 파견한 체포조를 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회사 창업자의 수준을 가지고 그 회사의 발전 가능성과 수준을 논한다는 것은 엉뚱한 발상이겠지만, 실제의 경우에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나 우리와 기업 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 더욱 그렇다.

그렇게 볼 때, 아직까지는 국내의 대형 전자제품 업체 중에서는 소니같은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될 업체를 찾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벤처 회사 시절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앞으로 과연 얼마나 기다리면 볼 수 있을까. Made in Korea가 자랑스러울 그 브랜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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