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섬, 인터넷

By | 2001-08-02

요즘 소설가 이문열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이 유명해졌다. 덕분에 그런 쪽에 관심없던 필자도 몇 번 그곳을 방문해보기까지 했다. 그 사건 당시에 이 홈페이지에는 게시판을 다운시킬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글이 올라가는 바람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고, 상당수 글이 온갖 욕설을 동원해서 이문열씨를 비난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얼마전부터는 실명제 게시판으로 개편해서 재가동하고 있다.

필자는 20대에 그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고 글발에 매료된 적도 있긴 하지만, 그의 사상이나 배경 혹은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 없고 관심도 없다. 그저 글 잘 쓰는 한 소설가로서만 기억할 뿐이다. 따라서 필자가 그를 칭송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물론, 명분이나 주제도 없다. 어쩌면 요즘 그를 성토하는 사람들은 소설가 이문열을 너무나 잘 알아왔기 때문에 비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필자의 관점에서 그는 사이버 테러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이다.

또 다른 사이버 테러의 예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쾌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일이지만, 몇달 전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날을 잡아서 단체로 일본 관공서의 홈페이지들과 신문사 홈페이지에 대규모로 동시에 접속해서 게시판을 사용하는 바람에 시스템이 다운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사이버 시위’라고 불렀다.

일본의 부당 행위에 대한 정당한 의견 표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쪽에서 보기에 그것은 ‘사이버 테러’, 즉 범죄 행위였다. 사실상 그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주권국가의 정부 기물 혹은 사유물을 파손하는 것에 준하는 행동이다. 만약에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나라가 똑같은 일을 당하면, 우리 또한 이번에 일본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버 테러라는 표현을 썼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때 HOT라는 댄스 그룹의 멤버가 음주운전 및 뺑소니 혐의로 입건되자 담당 경찰서의 웹사이트 게시판도 위에서 보인 것과 같은 비슷한 수모를 당한 적이 있다. 이 역시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이용한 단체행동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대도, 진압 경찰도 안보이고 최루탄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사이버 시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이버 테러.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그만큼 치열해 지고 있다. 그리고 게시판은 더욱 전쟁터같은 양상을 보인다. 익명의 사용자들이 싸우는 곳.

인터넷은 익명의 섬이다. 익명의 보호 아래 하고 싶은 말도 맘껏 하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방문하며 온갖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행위도 허용된다. 그래서 남도 비난하고 욕설도 맘껏 해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맘에 안드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으면 그에 대해 막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맘에 드느냐 안드느냐, 그리고 내 의견에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인 것 같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로 하는 게시판에서는 토론이란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면, 가입에 있어 제한된 자격조건을 두는 곳이나 취미, 직업, 인맥 등을 바탕으로 해서 모이는 곳에서는 놀랄만큼 게시판이 정화된다.

물론 그런 곳에서도 감정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논쟁의 대부분이 정치와 종교같은 주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예전에 필자가 시삽으로 있던 온라인 동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누군가 게시판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처음엔 영화 이야기를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의 사상적인 배경으로까지 들어가게 된다.

모든 격렬한 논쟁의 시작은 원초적인 원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신적 미성숙함이 그것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처럼 외적인 모습이 다르다면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인정한다. 너는 여자 화장실로 나는 남자 화장실로, 그리고 너는 앉아서 나는 서서.

하지만 대중에게 있어서 어떤 인식의 차이가 발견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고 결국은 게시판에서의 혈전으로 옮아가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내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너는 왜 맛없다고 하는가 라고 하며 핏대를 올린다. 주체하지 못할 익명의 가벼움을 어쩔 수 없는 인터넷의 속성이라고 치부해 버려야 하나….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욕설이 난무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점잖고 논리정연하게 꿋꿋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글을 마치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좋은 이해를 시켜준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소개하겠다.

며칠 전 퇴근하는 차 안 라디오에서 어느 미국인의 한국 체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말 또한 능숙한 그가 어느 한국 출판인과 대화했던 경험을 들려주고 있었는데, 그 출판인은 영어는 잘 못했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알고 있는 듯해 비교적 흥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미국인이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노벨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였다. 한국 사람이 노벨 문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이유는 바로 한국어의 깊이 있는 표현을 외국어, 특히 영어로 옮기기 어려워서였다고 출판인이 주장한 것이다.

그가 예로 든 것은, 한국말로 ‘파랗다’는 표현은 푸르다, 푸르둥둥하다, 푸르스름하다, 파릇파릇하다, 푸르죽죽하다, 짙푸르다, 퍼렇다, 시퍼렇다, 새파랗다 등의 온갖 미묘한 변형이 있는데, 영어로는 단지 ‘Blue’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미국인은 한국인에게 영어에도 ‘blue’를 나타내는 단어가 많다며, cobalt blue, sky blue, azure, indigo blue, light blue, navy blue 등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반문했다. 한국어에 화장실을 가리키는 단어가 몇 개나 되냐고? 그 한국인이 대답한 것은 화장실, 변소, 뒷간, 측간, 해우소 등이었고 아마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점에서는 대여섯 가지 밖에 들지 못 했다.

반면 그 미국인은 화장실을 표현하는 영어 표현을 15개나 알고 있었다. Toilet, Water Closet, Rest Room, Washroom, men’s room, Women’s room, Bathroom, Facility, Comfort Station, Outhouse, Privy, Lavatory, Latrine, Back Shed….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제발 남의 언어를 깔아뭉개면서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비하하는 대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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