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인터넷

By | 2001-03-26

“김xx님의 두루넷 서비스 이용요금이 03월 22일 현재 전월 및 당월 청구요금이 미납됐음을 확인해 알려드립니다. 또한 김xx님은 2개월 이상 미납되면 3월 31일 이후 두루넷 서비스에 대한 이용정지를 실시하게 되며,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고객님의 요금미납 사실이 신용정보 전산망에 등록돼 고객님의 신용거래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사오니 고객님의 신용과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속히 요금을 납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에 보이는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어귀만 본다면 비교적 친절한 내용의 메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앞의 내용을 보면 ‘이용정지’, ‘신용거래상 불이익’, ‘신용과 명예가 훼손’ 등과 같은 어귀가 나오는데 이 말들이 주는 의미는 장난이 아니다.

사실, 이런 메일을 받기 시작한 것이 벌써 반 년도 더 넘었는데 처음엔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몇 달 째 받다보니까 꽤나 만성이 돼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꼈던 것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필자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서였다.

필자가 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한 것은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다. 그때까지 사용해 왔던 ISDN을 대신하려고 후보에 올린 것은 한국통신 ISDN 서비스와 두루넷 이었는데, 어차피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두루넷을 선택한 이유는 LAN 카드 무료 증정, 가입비 및 설치비 무료, 1개월 사용료 무료라는 가입 조건 때문이었다. 필자가 머리숯이 좀 부족한 것은 사실인지라 공짜라는 말은 두 귀를 솔깃하게 했고, 결국 돈 몇 만원을 아끼려고 했던 선택이 지금은 위에서 보인 것과 같은 무서운 경고장을 달이면 달마다 받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수없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어댔다. 왜 무료라고 광고해 가입을 했는데 돈을 청구하냐고. 전화를 받는 담당자들은 다행스럽게도 다들 친절하긴 했다. 잘 알았다며 곧 해결될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들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다시 동네 여기 저기에 널린 가입 권유 광고지의 전화번호를 눌러 항의를 했지만 그들은 예전에 필자가 가입할 당시에 업무를 했던 그 사업자들이 아니었고, 끝내 예전의 업자들을 찾아내지는 못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필자는 매달 사용료만을 지불하고 있고 무료로 받기로 돼있었던 초기 비용은 지불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업체 측에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이제까지 체험한 네트워크 품질이 예상보다 꽤 좋았고 접속 상의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뿐더러, 고객지원 센터에서도 해결을 못했지만 친절하게 대응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직껏 해결이 안 된 것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며 조만간 해결되겠지라는 기대 때문에 지금껏 버텨온 것이었다.

이런 류의 문제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업체의 규모가 작건 크건 상관없이 문제는 항상 볼 수 있다.

한 번은 야후코리아의 쇼핑 서비스를 통해 아들의 게임 CD-ROM을 구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물건이 배달되지 않아 전화로 확인을 해봤더니 실제 공급 업체 측에서는 그 구매 정보가 컴퓨터로 관리되지도 않고 전담하는 담당자도 없어서 일일이 물어가면서 문제 해결을 했던 적도 있었다.

‘Mail Box Etc.’라는 미국 브랜드의 사무 지원 업체를 제일제당에서 운영하는데 그곳에서는 한국 내의 소비자가 미국에서 온라인 구매한 것을 미국 내 주소로 배달되게 하면 다시 그것을 한국 내로 재 배송되게 하는 서비스를 GMBE라는 명칭으로 제공하고 있다.

필자도 미국 외로 배달되지 않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할 때 그 서비스를 이용하곤 했다. 서비스가 시작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미국 내 배달 주소를 몇 번 바꾸더니 이젠 아예 Wizwid 라는 서비스 업체를 새로 만들어 그쪽에 모든 서비스를 넘겨버렸다.

이에 따라 미국내 주소가 또 바뀌는 것은 물론 그 새로운 업체에 또 다시 가입해야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필자는 그만 짜증이 나서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 말았다.

물론 해외 사이트를 이용하면서도 적지 않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어느 업체에서 노트북 메모리 업그레이드 킷을 구입했더니 전혀 아무런 서류도 없이 물건만 덜렁 배달돼 관세 및 비용 처리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어떤 유료 서비스에서는 전혀 탈퇴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 적도 있었다.

워낙 인터넷을 액티브하게 사용해 그런지 몰라도 필자에게는 이런 식의 지겨운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물리적인 네트워크 설치에서부터 인터넷 쇼핑까지. 편리함을 향유하는 만큼 그 반대 급부도 비례해 생기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좀더 체계적이고 치밀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이런 식으로 대충 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나 또 이용하는 사람들이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을 완전히 타파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별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온라인 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인터넷 사회는 아직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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