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정신과 나눔의 정신

By | 2001-02-18

필자가 한때 근무했던 휴렛팩커드(HP)가 설립된 것은 1939년, 캘리포니아 주의 팔로 알토 어느 허름한 차고에서, 윌리엄 휴렛과 데이빗 팩커드라는 두 사람의 엔지니어에 의해서였다. 역사적으로는 그 해가 실리콘 밸리의 기원이 됐고 벤처기업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 최초의 현장이 됐다.


그 이후로 HP는 끝없는 성장을 이루면서 오늘날에는 매출 규모 약 500억 달러에, 8만 8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게 됐다. 그 오랜 세월을 HP를 세우고 이끌고, 또 은퇴한 뒤로도 지켜봐온 두 공동 창업자 중에 데이빗 팩커드는 이미 지난 96년에 사망했고 지난 1월 12일에 마침내 윌리엄 휴렛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이 짤막한 뉴스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실리콘 밸리의 창시자라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그렇게 성공하면서 벌어들인 많은 돈을 어떻게 썼는가에 대해서이다.


윌리엄 휴렛은 1966년에 휴렛 재단을 세우면서 체계적으로 자신의 돈을 사회에 환원해 왔는데, 지금까지 그를 통해 출원된 돈은 무려 35억 달러에 이르며, 모교인 스탠포드에 데이빗 팩커드와 함께 기부해 온 돈도 총 3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재단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로의 재산 환원은 계속될 것이다. 실로 벤처기업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벤처기업의 열풍이 불었고 그를 통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산을 보유하게 된 젊은 기업가들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 그룹들에서도 2세 혹은 3 세에게 부의 세습을 하게 되면서 젊은 재벌 총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도 했다.


이런 소식들을 매스컴에서 접하다 보면 그 재산 규모에 적지 않게 놀라곤 한다. 어느 벤처 사장은 한때나마 조 단위의 액수를 가진 지분을 가지기도 했고, 어느 재벌 2세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거대한 기업 집단의 실질적인 총수로 등극하기 일보직전에 있기도 하다.


그들은 어쩌면 부의 형성에 있어 원대한 목표 내지는 그 롤모델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세계 1위의 부자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그것이다.


HP보다는 훨씬 최근에 세워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거의 1조 달러에 달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많을테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훨씬 적을 것이다.


그가 부인과 함께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현재까지 기부한 돈은 모두 200억 달러가 넘는다. 게다가 그는 최근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부시의 상속세 폐지 법안을 반대하는 120명의 억만장자 연합의 선두에 서서 그런 법안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현재도 자식들에게 1000만 불의 재산만 남겨주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니, 어차피 내 자신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일도 없을테니까 그냥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래, 그냥 좋은 일 좀 하지’라고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이해가 가지도 않고, 또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내노라하는 우리의 재벌들은 대개는 한푼이라도 더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싶어하면서도 세금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바로 그들은 이해가 돼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빌 게이츠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빌 게이츠만큼 성공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재벌기업은 그렇다치고, 우리의 벤처기업인들은 어떤 상황일까?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그런 인물을 가끔씩이나마 볼 수 있는 것이 위안이 되긴 한다.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의 경우,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재산도 종국에는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벤처기업의 경우는 어떠한지 살펴봤더니 비교적 조용하다. 물론 아직은 그들이 충분히 젊기 때문에 2세에 경영권 세습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필요없기는 하다. 그렇다면 기부금 등을 통한 사회 환원은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라고 찾아보면 그다지 특이할 만한 미담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지분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보지만 그래도 결론은 항상 한 가지로 마무리된다. 그래, 나눔의 문화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인가 보다…


앞서 잠시 얘기한 정문술 회장의 경우와 비교해 흔히 거론되는 삼성그룹의 경우는 현재의 회장 아들이 국가에 낸 세금은 고작 16억원에 불과한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거의 4조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결과가 돼버렸다는 뉴스도 이젠 질릴만큼 들어왔다.


다른 재벌들도 액수와 2세들의 숫자에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른 점이 없다. 그것도 남들은 못하는 재주니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우리는 그냥 살아가고 있다. 부의 세습까진 그렇다 쳐도 그 재산 중에 얼마나 사회에 환원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라고 생각을 해 보면 그렇게 밝은 전망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시선은 성공한 벤처들 쪽으로 향한다. 그대들은 어찌할 것인가? 바빠서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자신의 인생철학과 기업철학은 항상 서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인생철학은 누구와 비슷한 방향이 될 것인가? 윌리엄 휴렛과 빌 게이츠, 그리고 이 땅의 재벌들 가운데 그대들은 누구의 그림자를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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